회원가입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ID/PW 찾기
아직 회원이 아니신가요? 회원가입 하기

20대가 바라본 518 여러분들의 생각은?

profile
두세의힘

작년에 정치공부하다가 역사 경제쪽으로도 빠져서 재밌게 공부했는데

518 의아한 점이 너무 많음

나오는 여러 의견들 보면

 

1. 518이 북한군 소행이다

단시간 만에 무기고 털어서 광주시민에게 무기 나눠주고 북한군이 섞여서 무장했다.

총을 들고 있는 자세가 북한군 자세 (총구아래로)

북한에서 518 기념하고 탈북자 사이에서 518 북한 개입설이 나온다 등등

 

그렇다고 치면 518은 북한이 제일 나쁜 것 아닌가?

 

근데 이와같은 실질적인 증거가 못 된다고 나온다

그러면

 

2.아니다 518은 독재정권의 소행이다

 

역대 대통령 목록 보면 518이 일어난 시기에 대통령은 최규하고

12.12 군사반란때 부터 실권을 잡았다 해도 (이때도 이학봉이라는 육군 보안사 대공처장이 제안)

그때 전두환은 계엄사령부 본부장으로 나오고 이희성이라는 계엄사령관이 있었다.

전두환은 8.20 최규하가 그만두고 대통령 후보로 혼자나와서 당선된다.

이 기간에 전두환을 알게 된 사람이 많다고 했다.

???

 

그럼 결국 전두환은 박정희 시해 사건 범인 잡으러 뛰어다니던 군인이었는데

떠밀리듯 대통령하고 518때도 계엄사령부에 있었고 독재한건 사실이니까

518때 광주시민의 분노를 받아들인것 같은데

88년 610 민주항쟁때 518처럼 군으로 제압하고 독재 할 수 있는데 

독재인거 인정하고 물러난 것도 의아하고

이런거 보면 통치자보다는 군인으로서 할 역할만 한 것 같은데

 

518 때는 광주만 시위를 했는지? 다같이 했다면 왜 광주만 진압한건지

610 때는 왜 다같이 시위를 했는지도 모르겠고

사실 민주주의를 이룬건 610항쟁 때문인거 아님?

그냥 518에는 인명피해가 있었기에 더 조명되어서 역사적으로 회자되는거고

 

다들 전두환이 518 다 일으킨걸로 알아서 너무 혼란스러움

그 시절에는 통신도 별로일거고 정황상 오해나 잘모르는 일들도 많을텐데

그냥 518 겪었던 광주사람이 안타까울 뿐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역겹고

 

역사의 산 증인 있으면 댓 ㄱㄱ

 

 

댓글
34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 박창진
    2021.11.18

    1+2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봄

  • 박정희(朴正熙)

    전두환 대통령되전에 518 일어나지 않앗음 ?

  • 박정희(朴正熙)
    두세의힘
    작성자
    2021.11.18
    @박정희(朴正熙) 님에게 보내는 답글

    맞음 그때 최규하 대통령임

  • 두세의힘
    두세의힘
    작성자
    2021.11.18
    @두세의힘 님에게 보내는 답글

    근데 518때 대통령 누구냐라고 말하면 전두환이라고 말하는 사람 진짜 많음

  • 두세의힘
    박정희(朴正熙)
    @두세의힘 님에게 보내는 답글

    내말이 그말임 ㅋㅋ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세뇌당해서 518은 전두환이햇다 이러는디 ㅋㅋ 전두환은 봐봐 끝까지 인정한적없잖아

    정말 억울하긴 하겟다

  • 박정희(朴正熙)
    두세의힘
    작성자
    2021.11.18
    @박정희(朴正熙) 님에게 보내는 답글

    ㄹㅇ이학봉 이희성이라는 상관이 둘다 있었는데

  • 두세의힘
    박정희(朴正熙)
    @두세의힘 님에게 보내는 답글

    그러니까 애초에 전두환이 518을 일으켯다는게 말이안대잔슴 ㅋㅋ 내가봣을땐 북한소행맞는거같음 팩트로 전라도쪽에 빨갱이가 많은게 625터졋을때 북으로 못도망갓던 간첩들이

    지리산에 숨어들어서 다 전라도에

    내려갓다는거는 팩트임 ㅋㅋ

  • 박정희(朴正熙)
    빨간색매트리스
    @박정희(朴正熙) 님에게 보내는 답글

    그리고 지리산이 생각보다 작아서 아마 625전쟁때 대부분 소탕되었고, 살아남았더라도 이승만-박정희 정권 사이에 지리산에서 다 소탕되었을 듯

  • 박정희(朴正熙)
    빨간색매트리스
    @박정희(朴正熙) 님에게 보내는 답글

    근데 1979년 12월 12일에 군사반란을 일으켰고, 그때부터 군권을 장악했기에 당시 최규하 대통령도 함부로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고, 5월 초까지 서서히 군대를 모으고 각종 민주화시위를 강경진압을 하려고 했고, 5월 17일 기점으로 군인을 국무회의장에서 배치하는 등 협박을 통해 국무회의라는 방법으로 계엄령을 선포함.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헷갈리는 사람이 많은 듯

  • 빨간색매트리스

    2번 같음... 적어도 80년은 그게 가능했고, 88년에는 못한 이유는 일단, 79년 당시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 위기, 그리고 독재로 인한 정치적 위기로 파국에 치달었고, 부마항쟁이 발생했음... 근데 박정희가 사망하고 나서 붕떠버렸음. 더욱 안타까운 건 미국이 당시 개입할 여력이 없었고, 서울의 경우도, 그 때 시위가 벌여질려고 하다가 무산된걸로 알고 있음

    아무튼 87년에 성공한 이유는 올림픽을 1년 앞두고 지켜보는 눈이 많았고, 이게 전국적으로 퍼졌으며, 미국도 여기에 개입할 여력이 되어서 직접적으로 전두환 측에 견제도 했기에 순순히 물러난듯

  • 빨간색매트리스
    두세의힘
    작성자
    2021.11.18
    @빨간색매트리스 님에게 보내는 답글

    미국차이가 있었네 그럼 민주당이 미국 싫어하는 사람이 유독 많은건 왜지ㅋㅋㅋ

  • 두세의힘
    빨간색매트리스
    @두세의힘 님에게 보내는 답글

    반미물 잘못 먹어서 그렇지 ㅋㅋㅋ 그놈의 주체사상 에휴...

  • 빨간색매트리스
    두세의힘
    작성자
    2021.11.18
    @빨간색매트리스 님에게 보내는 답글

    주체사상 진짜 했다는것도 소름임ㅋㅋㅋㅋㅋ

    당시 미디어도 발달 안되고 북한이 잘사는 줄 알았던 사람 많았던 것 같은데

  • 두세의힘
    빨간색매트리스
    @두세의힘 님에게 보내는 답글

    그리고 대충 학생운동사 훑어보면... 반미운동이 가장 심했을 시기가 80년 초중반대가 아니라, 80년대 후반, 90년대라는 것도 좀 웃기긴함 ㅋㅋ

    이를 다시 뒤집어 보면 반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양반들 중에는 은근 80년대 후반, 90년대에 대학 다닌 사람들이 많을 듯 ㅋㅋ
    그리고 국민이 함께 이룬 민주화를 혼자서 다했다고 포장하고 있고 ㅋㅋㅋ

  • 빨간색매트리스
    두세의힘
    작성자
    2021.11.18
    @빨간색매트리스 님에게 보내는 답글

    아하 그때 완전 민주주의 된 줄알고 어르신들도 학생때 한번 저러고 말겠지하고 좀 신경을 껐는데

    알고보니까 주체사상이였던ㅋㅋㅋㅋ

  • 빨간색매트리스
    응ㅇ애
    2021.11.18
    @빨간색매트리스 님에게 보내는 답글

    ㅇㅇ 그냥 그때 시대 상황이 시위가 벌어질 수 밖에 없었음. 노동권 때문에 시위하면 빨갱이로 몰리던 시대니까.

    12.12쿠데타가 지방에는 굉장히 늦게 알려져서 3월쯤 알게 되고 4월부터 시위를 시작한 걸로 알고 있음. 살기 힘든데 독재가 계속 된다니까.

    그리고 전두환이 518 지시한건 명백한 사실임. 미 국무부 자료가 시간이 흘러 민간에 공개 됐는데 지휘관를 전두환으로 지칭했음.

    https://news.v.daum.net/v/20180514210314266

  • 응ㅇ애
    두세의힘
    작성자
    2021.11.18
    @응ㅇ애 님에게 보내는 답글

    군사작전이 필요하다는 말은 지시가 아니라 그렇게 결론이 계엄사령관에서 난 걸 전달한거 아님? 흠... 난 우리나라 언론 잘 안믿어서 모르겠음

    시위가 계속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 이거 518 전부터 말하는거? 그럼 518때도 전국적으로 시위를 했었네?

  • 두세의힘
    빨간색매트리스
    @두세의힘 님에게 보내는 답글

    ㅇㅇ 그래서 서울에서도 시위를 할 뻔했는데... 그 때 당시 서울대 학생회장이었던 심재철을 필두로 몇몇 사람들이 시위를 그만하자 회의했고, 결국 물려남... 그리고 그 때 전국 대학의 학생회장들이 몰려와서 이와 같은 지침을 벌어지자 당연히 멈추었고...

    근데 이미 이전부터 전두환을 위시한 쿠데타 세력이 전국에 군대를 배치했기에 다시 시위가 열리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그중 유일하게 전남 광주에서만 시위가 진행중이었음.

  • 고1홍붕이
    2021.11.18

    민주화운동+폭동

  • 고1홍붕이
    두세의힘
    작성자
    2021.11.18
    @고1홍붕이 님에게 보내는 답글

    이게 맞는듯 직접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피해의식도 엄청 쎌거라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갑자기 계엄령터지고 총알 날라다니면 진짜 끔찍하긴 할듯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총들고 다닌 사람들도 있을 것 같고

    지금 우리세대 남자애들이 페미에 너무 당해서 여자한테 피해의식 생기는 애 있는 것처럼

    페미 반대 목소리 내는 건 좋은데 반페미에 목숨걸고 좌절감에 빠져서 자기자신 안돌보는것처럼

     

  • 두세의힘
    작성자
    2021.11.18

    비추 누른사람들 와서 화라도 내보시지 좀 말도 안하고 튀네

  • Nicky
    2021.11.18

    기본적으로 당시 실권은 계엄사령부에 있었고, 쿠데타로 형성된 정부였으며 시위에 무력으로 대응했으니 시민들의 행동은 저항권으로 봐도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쿠데타 이후 최규하는 실권은 없었고(있는 게 더 어려운 일…), 쿠데타 일으킨 하나회 장성들이 실권을 가지고 국내 문제에 대응했습니다. 하나회 내에서 전두환이 상당한 권력을 가졌던 것도 팩트. 시위대가 간첩 의심자들을 자발적으로 경찰이나 군에 인계하기도 했고, 반공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던 것에서(‘북괴는 오판 말라’ 현수막 등) 북측 주도의 운동으로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뭐 쿠데타 대항 시위가 열리고, 무력 진압이 교전으로 이어지는 게 딱히 이쪽에서만 있었던 일도 아니고.

     

    북한에서 5•18을 기념하는 건 한국 사회 분열의 목적도 있을 거고, 흔하게 하는 왜곡 선전, 특히 한국 군사정권에 반기를 든 것이라 선전에 잘 써먹을 수 있을 거라 그런 걸 겁니다. 얘네가 한국 사회 일들을 지들 마음대로 왜곡해서 해석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니까요.

     

    이게 진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였다면 보수정권에서까지 기리진 않았을 거라 봅니다. 애초에 그랬다면 전두환 정권 시절에 잘 우려먹지 않았을까요? 정권을 연장하기에 매우 좋은 구실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 Nicky
    Nicky
    2021.11.18
    @Nicky 님에게 보내는 답글

    덧붙여서 신군부 쿠데타 자체는 전두환-노태우 등이 주도했었고, 쿠데타를 주도한 사람이 곧바로 수장으로 전면에 나서기는 어려워서 내세운 사람이 계엄사령관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도 딱히 당시 한국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고, 찾아보기 어렵지는 않은 일…

  • Nicky
    두세의힘
    작성자
    2021.11.18
    @Nicky 님에게 보내는 답글

    시위대가 간첩 의심자들을 자발적으로 경찰이나 군에 인계하기도 했고, 반공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던 것에서(‘북괴는 오판 말라’ 현수막 등) 북측 주도의 운동으로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이거 그러니까 주도운동이 아니라 광주시민 선동해서 섞인거 아니냐라는 말입니다.

     

    이게 진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였다면 보수정권에서까지 기리진 않았을 거라 봅니다.

    > 보수정권 정치인들은 말을 사려서 그렇지 보수쪽 사람들은 폭동이다 이러면서 기리진 않았다고 보는데 이건 그냥 지역감정인가요?

     

    곧바로 수장으로 전면에 나서기는 어려워서 내세운 사람이 계엄사령관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위키 유튜브 등으로 정보 찾았는데 그것도 믿기 힘드니까 이렇다고 치면 계엄사령관 이희성은 꼭두각시 였단 말이네요

    방금 찾아보고 왔는데 이희성 진술이 다 전두환 뜻대로 하겠다 이런거보면 전두환이랑 이희성 둘다 책임회피하고 있는 것 같긴하네요ㅋㅋㅋ

  • 두세의힘
    두세의힘
    작성자
    2021.11.18
    @두세의힘 님에게 보내는 답글

    전 518이 어떻든 간에 국내말고 국제적으로 봤을 때 '민주화를 실현시킨 나라다' 라는 이점을 내세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홍콩도 우리를 본받자 이러는 거 보면 국제적 이미지로 큰 이득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저 시대를 겪지 않았던 사람들이 아픈 역사로 싸우기보다 미래를 위해서 가는게 좋다고 생각해서

    518이 지역감정을 만드는 트리거보다 우리세대는 이만큼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나라고 생각 되었으면 하네요.

  • 두세의힘
    Nicky
    2021.11.18
    @두세의힘 님에게 보내는 답글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에는 상당히 동의합니다. 결과적으로는 한국인들이 민주화를 위해 이렇게 투쟁했다, 라고 생각합니다.

  • 두세의힘
    빨간색매트리스
    @두세의힘 님에게 보내는 답글

    ㄹㅇ 솔직히 정치적 논쟁거리 대신 민주주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했고, 꿈꿨는지 다들 생각했으면 좋겠음.

  • 두세의힘
    Nicky
    2021.11.18
    @두세의힘 님에게 보내는 답글

    선동하려는 시도가 있었을 수도 있긴 하겠지요. 다만 근본적으로 쿠데타에 대응한 시위가 일어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 아닙니다. 운동의 방향은 상당히 반북, 반공주의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선동의 시도가 있었는가 없었는가는 5•18 자체에 큰 영향은 주지 못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보수 쪽 인사는 보수 쪽 인사 나름일 거라고 봅니다. 지역감정보다는 이념에 지나치게 매몰되고, 보수에 과오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려운 분들이 그렇게 주장을 하시는 거 아닌가, 주관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지역주의적인 주장을 하시는 분들도 있기는 한 걸로 압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견을 내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명확한 사실까지 왜곡하고 그 방향으로 단정해서 의견을 내는 분들이 있다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책임은… 미루는 게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ㅋㅋㅋㅋ 이희성씨는 전두환과 사전에 쿠데타 관해서 말을 맞췄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권은 전두환이 가지고 있었던 게 맞습니다. 하나회 출신도 딱히 아니었어서 ㅋㅋ

  • Nicky
    두세의힘
    작성자
    2021.11.18
    @Nicky 님에게 보내는 답글

    뭔가 진짜 증거가 딱딱 나오는 확실한 정보들이 하나 없네요. 하긴 그때 사건들을 다 기록하고 전하기도 어려운 시기였으니까 이해는 합니다만

    1번이든 2번이든 광주시민이 피해자인건데 그때 있지도 않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개거품 무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세대가 518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윗 댓글에서도 말했듯이 민주주의 DNA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국제적 이미로 쓰는건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두세의힘
    빨간색매트리스
    @두세의힘 님에게 보내는 답글

    섞였다고 말하기에는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북한에 우호적인 플랜카드나 시위가 있었어야 하는데 그런게 거의 없어서 의미가 없었을 듯, 그리고 더군다나 광주의 지리 자체가 바다와 꽤 떨어져 있고, 산지도 은근 멀어서 딱히 투입할 만한 장소가 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공장이 적었음. 오히려, 간첩이 투입할 만한 장소는 공장과 사람이 꽤 있고, 주변에 숨을 만한 산지가 있는 부산을 비롯한 경남쪽이 더 현실성 있음.

     

    두번째에 대해서 반공의식과 지역감정이 합쳐져서 그런듯...

     

    마지막으로 둘 다 책임회피하는게 맞는 것 같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전두환 측의 권력이 강했다고 생각하는게, 우선 전두환의 직책 중에 군내 정보를 담당하는 보안사령관이 있어서

    그리고 하나회 인맥과 보안을 통제하면 ㄹㅇ 무소불위의 권력도 가능했을 듯

  • 빨간색매트리스
    두세의힘
    작성자
    2021.11.18
    @빨간색매트리스 님에게 보내는 답글

    섞였다고 말하기에는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북한에 우호적인 플랜카드나 시위가 있었어야 하는데

    > 북한에 딱히 옹호적이지 않아도 독재라는 아젠다 하나 만으로 무력항쟁을 일으킬 명분은 충분히 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회 보면 전두환이 실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추측은 가능하겠네요ㅋㅋㅋㅋ 진짜 물질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으니 원

    518가지고 왈가왈부하는게 40년이나 지난 지금 증거찾기나 싸움에 혈안이 되는건 진짜 의미없다고 생각합니다.

  • 호호야
    2021.11.18

    광주시민 학살한건 큰 대역죄 그러나 과거만 너무 집중해서 미래에 대한 생각은 없는..ㅎ

  • 사쿠라마나
    2021.11.18

    내가 추천 눌러줬어

  • 즐풍목우0
    2021.11.22

    이성계의 고려말 위화도 회군 : 1388년 ( 고려 우왕 14년)

    이성계의 조선건국 : 1392년

     

    즉 위화도 회군을 하여 실질적 권력은 이성계가 가지고 있었지만

    권력을 바꾸는것이 그렇게 단순한것이 아니기에... 바지사장을 두면서 내부의 권력구조를 개편해야합니다

    정도전과 이성계는 이러한 작업을 하는데 4년의 시간이 걸린것입니다

     

    전두환 역시.. 박정희 사망사건을 수사하는 합수부를 하면서 실질적인 권력을 쥐게 됩니다

    그 당시 권력은 청와대와 보안사(국정원)와 기무사(군관련) 의 권력으로 분할되어 있는데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청와대는 무너지고 당시 기무사령관인 전두환과 보안사령관인 김재규가 남았는데

    김재규는 박정희 시해혐의로 체포되면서... 남은 한 권력도 무너지면서

    전두환 일당 권력이 완성됩니다

     

    그때 이성계의 정도전과 같은 인물들이 바로 3허 (허삼수/허화평/허문도) 에 의하여 집권의 그림이 그려지는것입니다

    이들은 동일하게.. 당시 대통령직무대행 ( 대통령이 사망으로 갑자기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됨)인 최규하를 바지사장으로

    정국을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이끌어가죠..

     

    바로 이런 내용을 알고있기에.. 그 당시.. 시위자들은 아직 대통령도 아니지만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물러가라고 시위를 한것이죠

    물론 이러한 시위는 광주만이 아닌 전국에서 진행된것이고...

     

    이때 전국적인 저항에 놀라면서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다가... 찾아낸 묘수가 바로

    지역감정을 이용한 광주학살이었죠

     

    그 당시는 지금과 달리 SNS도 인터넷도 없는 세상이라서

    한곳을 봉쇄하고 폭력진압을 하게되면.. 당연히.. 시만들의 반항이 더 심해질것이고.. 그렇게 심해진 시위를 핑계로 학살이 시작된 셈이죠

     

    이러한 사실은 다른 지역에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https://namu.wiki/w/택시운전사 영화에도 나왔듯이

    전화도 모든 교통도 통제되었으니.. 다른곳에서는 알수가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