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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일이 지나면 영원히 묻힐지도 모르는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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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제목 : 어머니

 

1996년 봄 어느 날. 

 

울산 어느 병원에서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초라한 행색의 노인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자식 이름을 밝히지 않았답니다. 

 

승용차 한 대가 병원에 도착했고 한 사람이 내렸습니다. 

 

그해 봄 총선에 당선한 홍준표였습니다. 

 

아들은 어머니 시신 앞에서 오열했습니다. 

 

눈 감으신 지는 오래 됐고 말문 닫으신 지도 오래 됐다 했습니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아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빌린 돈 못 갚아 머리채 잡히고 셋방살이 쫓겨나 서럽게 울면서도 어린 자식들 배곯을까 공부 못 시킬까 마음 졸이며 평생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어머니는 학교 한번 못 다닌 무학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한글을 못깨친 까막눈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종대왕, 이순신보다, 김구보다 위대한 인생 멘토였습니다.

 

다시 봄입니다.

 

동네 시장 지나다 봄나물 파시는 할머니를 만날 때면 서문시장 좌판에서 쑥, 미나리 나물 팔고 도시로 시골로 달비(머리카락) 장사, 양은그릇 장사하러 다니

시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아...어머니!

 

오늘은 제 어머니 기일입니다.

 

초저녁에 큰아들과 같이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 어머니는 문맹이셨습니다. 

 

대구에서 자취하던 중학교 때시골에서 올라 오시곤 했는데 시내에 나가실 때는 꼭 버스 번호를 일러드려야 했습니다.

 

이제 어머니 돌아가신 지 21년이 되었습니다. 

 

아들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 하실테지만 저는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 만날 날이 가까워지니 더욱 더 옛날 기억이 새롭습니다. 

 

검사는 시골에 벼 등급 검사하던 사람으로 알았고 면서기가 최고 벼슬인줄 아시던 어머니 기억이 오늘 밤에는 더욱 납니다. 

 

오늘 밤에는 꿈에서 어머니를 뵐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2017년 4월 3일 홍준표-

 

 

제목 : 아버지


아버지는 일당 800원의 조선소 야간경비원이었습니다.

 

사법시험 떨어지고 울적하던 1974년 어느 겨울밤 아버지가 일하고 계신 울산에 내려갔습니다.

 

어두운 바닷가 모래밭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구부정히 앉아 계신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아버지!” 부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왜 이리 고생만 하셔야 하나!

 

가난한 아버지의 한을 못 풀어드리는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학비, 취직 걱정 안 해도 되는 육군사관학교에 가면 어떻겠노?”

 

아버지 권유로 육사 특차시험에 합격하고 입교를 기다리던 1971년 겨울 인생을 바꾼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농협에서 비료 두 포대를 탔는데 훔친 비료를 샀다는 누명을 쓴 겁니다.

 

장물취득 혐의로 지소에 끌려간 아버지는 이틀 동안 조사를 받고 풀려났습니다.

 

비료포대를 횡령한 농협조합장이 장부를 조작해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운 거였습니다.

 

아버지는 육사 합격한 아들의 신원조회를 걱정해 억울함을 속에 눌러 담았지만 이 일은 아들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가 되었습니다.

 

“법대 가서 검사가 되겠심더.”

 

힘없고 빽 없어 설움 받는 약자들 편에 서는 정의로운 검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야들아. 짐 싸라!”

 

리어카에 이삿짐 싣고 이틀을 걸었고 국민학교 6년 동안 전학만 다섯 번.

 

평생 가족 고생만 시키다 가신 무능한 가장이었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곧은 성격을 물려주신 아버지.

 

한겨울 복판 같은 추운 인생을 깡소주로 달래던 아버지는 큰 병원에 가 보지도 못한 채 울산 복산동 단칸 월셋방에서 돌아가셨고 가난한 아버지의 마지막

꿈이었던 아들은 ‘모래시계 검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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