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황제 거란군, 귀주에 배수진을 치다.
고려군과 거란군이 맞닥뜨린 귀주평야에는 여러 갈래의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거란군은 하나의 강을 뒤로 하고 배수진을 쳤다. 우리에게 배수진은 일반적으로 임진왜란때의 대패 때문에 안좋은 전술로 인식되어 있지만 이때 거란군이 선택한 배수진은 꽤나 좋은 선택이었다. 거란 입장에서 이곳은 적국 고려의 땅이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사방에서 적의 지원군들이 기습을 해 올 염려가 있었는데 뒤에 하천을 둠으로써 이런 걱정을 불식시킬 수 있었고 초원에서의 지상전은 그들에게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정면의 전투에만 집중하면 되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소배압이 영리한 판단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소배압의 판단은 적절했다. 거란군은 두달간 굶주렸음에도 자신들의 주요 무대인 평야에서는 역시나 강력했다. 거기다 하늘까지 거란의 편인 듯 했다. 당시 강감찬의 고려군이 북쪽, 소배압의 거란군이 남쪽에 자연스레 위치해 있었는데 강한 북풍이 불고 있었다. 전투에서 바람의 방향은 상당히 중요하다. 바람이 상대쪽으로 불면 화살을 통한 공격이 용이하기 때문에 거란군은 화살을 통해 고려군을 집중 공격할 수 있었다. 강감찬에게는 패배의 기운이 드리고 있었다.
영화같은 타이밍에 등장한 지원군, 고려군의 총공세
적의 화살과 기마병에 의해 패배의 기운이 짙었을 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다. 김종현은 1만의 기마병을 이끌고 적의 뒤를 급습했다. 강을 건너 거란군의 뒤를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 배수진을 치고 전방에만 화력을 집중하던 거란군은 혼란에 빠졌다. 전방의 고려군은 지원군 소식에 더욱 힘을 냈고 거란은 큰 혼란에 빠져 당황했다. 또 기적같은 일이 하나 더 발생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고려사>에서는 이 바람을 평범한 바람이 아닌 '비바람'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늘까지 고려의 편으로 돌아선 것이다.
거란군은 결국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동북아 최고의 명장 소배압이 패배한 것이다. 소배압의 거란군에게 이제 전쟁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목표는 이제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강감찬은 이를 두고 보지 않았다.
고려군의 끝없는 추격! 거란군의 궤멸, 유례없는 대첩!
거란군은 배수진을 쳐둔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 제대로 도망갈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들은 진형을 잃어버리고 무작정 도망갔고 고려군은 강민첨의 별동대를 위주로 거란군을 끝없이 추격하여 계속해서 거란군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말 그대로 거란군은 전멸했다. 10만의 군사 중 4천명 정도만이 살아 돌아간 것이다. 거란 입장에서 총사령관 소배압은 간신히 목숨을 구했으나 최고위급 지휘관이 4명이나 죽었을 정도로 고위 장수의 손실이 정말 큰 전투였다. <고려사>에서는 이 전투를 "이날 죽은 거란군의 시체가 들판을 뒤덮었으며 포로와 전리품은 산더미였는데, 우리가 거란과 싸운 이후 거란이 이렇게 패한 적이 없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사에서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과 함께 3대 대첩으로 불리는 '귀주 대첩'이다.
귀주대첩의 의의
전쟁이 끝나자 현종은 친히 영파역까지 나와 강감찬을 맞이하고 강감찬을 극진히 대접해 주었다고 한다. 강감찬은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이 된 것이다. 강감찬뿐만 아니라 전쟁에 큰 공을 세운 강민첨, 김종현 역시 공을 인정받아 왕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반면 소배압은 고국으로 돌아간 뒤 분노한 요나라 황제 야율융서에게 큰 핀잔을 받았다. <요서>에 따르면 야율융서가 소배압에게 "네놈의 머릿가죽을 벗겨버리겠다!" 라고 말하였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파직하는 선에서 그쳤다고 한다. 그렇게 동북아 최고의 명장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뻔했던 소배압은 고려정벌 실패로 인해 한순간에 최악의 패장이 되었다.
귀주대첩 이후 동북아시아의 최강자 거란은 국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10만의 군사중 수천의 군사만 살아 돌아왔고 최고위급 지휘관이 4명이나 죽었다. 결국 이 전투 이후 거란은 다시는 고려는 물론 다른 나라를 넘보지 못했고 동북아시아에는 몽골이 등장할 때까지 평화가 찾아온다. 이 전투는 단순히 고려와 거란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전체의 평화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1부 https://theyouthdream.com/board_qhWD16/6054116?category=406498
전쟁은 머리 수 빨이 아니라는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휼륭한 지휘 아래 단합력과 사기빨이 중요한 것 같음
백날 지휘 하면 뭐해 알아 쳐듣지 못하고 이리저리 어리버리 하다가
다 끝남!! 정말 대단한 전쟁의 역사의 일부분 인 귀주대첩!!
사실 귀주대첩은 가만보면 특별한 전술이랄거도 없이 평범한 포위전술공격이었는데도
그 강하다는 거란기병을 다 궤멸시켜놓음
저시기 고려는 진짜 말도 안돼는 초강대국
ㅊㅊ
고려가 고구려보다 강했다는 말이 있으니
갠적으로 무신정변 이전은 동급이라고 봄
나는 직접비교가 어렵긴한데
발해가 거란에 멸망했고 해동성국이라고 불릴정도로 강했던 나라였으니🤔 고려도 그만큼 엄청 났다고 생각함
ㄹㅇ 발해도 결국 거란 공세 못막아냈는데 고려는 2번이나 크게붙어서 다 이겼고 귀주대첩때는 아예 박살을 내놨으니... 어마어마한 나라라고 봐야됨
몽골이 거란의 기마병 전술을 보고 배웠다고 할 정도로 거란은 어마어마한 나라였음
유목민들 자체가 일단 기병에 특화될수밖에 없지
고려는 아마 정복 의지만 있었으면 고구려땅 회복하고도 남았지싶다
맞음, 심지어 3차전쟁때 고려 기병 100명이 거란 기병 300을 박살내는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으니 정복전쟁했으면 영토 엄청 넓혔을듯...
다만 고려는 항상 정치가 불안정해서 내정이 편안한 시기가 거의 없었지.. 굉장히 아쉬운 부분
심지어 고려가 쭈욱 갔다면
우리나라도 개방정책 적절히 펼쳐서 근대화도 더 빨리 이뤄졌다봄
맞말. 나는 그래서 공민왕의 개혁실패가 한국사에 있어서 큰 비극중 하나라고 생각
고구려, 고려 한국사중에 제일 좋아하는 나라 투톱이다
ㅇㅈㅇㅈ 나는 그중에서도 고려가 더 좋음. 이유는 없음 그냥 멋있음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