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주에 위치한 공업 도시이자 항구 도시. 영국에서는 5번째로 큰 도시이다. 사실 외국인들에겐 그런 것보다 비틀즈와 축구의 도시로 더 유명할 것이다.
역사
산업혁명의 발생지인 맨체스터가 기계, 식품, 화학, 전자 등 전세계 상공업의 중심도시로 성장할때에 바다를 둔 인접도시 리버풀이 그 외항으로 사용되면서 같이 성장하였다 19세기에는 세계 물동량의 절반이 리버풀 항구를 거쳤을 만큼 세계적인 무역항이 있었다 물론 21세기 지금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19세기 당시 리버풀은 런던보다 부유한 도시여서 "대영제국은 리버풀 덕에 가능했다" 라는 말까지 돌정도로 찬란한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물론 흑인 노예무역의 메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국제 노예 박물관' 이 위치하고 있다)
지역감정
산업혁명 때부터 영국 공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지만 2차세계대전 독일 공군의 폭격을 맞고 시설이 많이 파괴된것에 이어 전후 복구도 더뎠으며 석탄에서 석유로 옮겨가는 20세기 중반부터 급속히 쇠퇴하였다. 그 당시 공업물자의 수송을 담당하던 것은 리버풀-맨체스터 를 잇는 리버풀-맨체스터 철도였는데 운송비용을 줄이기 위해 맨체스터가 직접 바다로 운하를 판 이후로는 운송이 중단되었고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리버풀-맨체스터 간의 지역감정은 꽤나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맨체스터를 연고로 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FC와 리버풀을 연고로하는 리버풀FC가 잉글랜드 내 최고의 라이벌로 꼽히는것도 이런 지역감정에 기반한 점이 있다는것이다.(지역감정도 있고 빅클럽인 두 팀이 리그 타이틀을 놓고 경쟁한 경험 또한 라이벌 의식에 한몫하였다)
정치
위에 설명했듯 주요 산업이 쇠퇴하면서 20세기 후반엔 리버풀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 중 하나일 만큼 처량한 암흑기를 보냈는데 당시 이런 상황을 주도한 것이 대처 정부였고 많은 리버풀 사람들은 지금도 대처 하면 치를떤다 지금도 리버풀의 시 의회가 대부분 노동당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영국에서 맨체스터와 셰필드 등과 함께하는 좌파 도시중 하나로 유럽에서 가장 좌파 성향이 강한 도시중 하나이다 이 지역에서는 영국 보수당이 15%만 넘겨도 대단히 선전했다는 평을 듣는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중 하나로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시절 보수당이 밀어붙인 신자유주의 정책이 리버풀을 거의 몰락 직전까지 몰아붙였던것에 대한 원한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 힐즈브러 참사 당시 총리의 적반하장식 대처는 리버풀 사람들로 하여금 증오심을 키워 현재는 리버풀 내에서 우파가 전멸해버리는 원인이 되었다
다만 시의회에서는 2000년대 자민당이 득세하기도 했다. 이는 토니 블레어 내각 시기가 노동당의 중도 우클릭 행보로 진보 언론인 더 가디언까지 자민당을 지지하던 시절이라, 상당수 리버풀 시민들도 토니 블레어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리버풀은 자유주의 좌파가 아닌 정통(?) 사회주의 좌파에 가까운 정치 성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2007년 고든 브라운이 총리가 되고 다시 노동당이 좌경화하고, 자민당이 보수당과 연정을 맺는 리버풀 시민들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판단 착오를 하면서 현재는 다시 노동당이 시의회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보이고 있다.
관광
주요 관광지로는 알버트 독에 있는 '테이트 리버풀', '비틀즈 스토리' '리버풀 박물관'과 성공회 리버풀교구의 주교좌인 '리버풀 대성당', 그리고 가톨릭에 속한 '리버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이 있다.
축구팬이라면 리버풀 FC의 홈구장 안필드와 에버튼 FC의 홈구장 구디슨 파크도 방문해볼만 하다. 두 구장이 상당히 붙어있기도 하고.
이곳을 본거지로 하는 관현악단인 왕립 리버풀 필하모니 관현악단 또한 유명하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도자기 제조업이 성행해 다소 무겁고 불투명한 연질자기를 생산하기도 했다.
리버풀 출신 유명인
비틀즈 멤버들이 가장 유명하다. 비틀즈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도 여기 출신.
리버풀 FC의 로컬 보이인 스티븐 제라드와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도 당연히 리버풀 출신.
콥추
리버풀추
뭐야 정성추
정보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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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YNWA
아..이게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