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는 명량해전의 승전보를 받았지만, 기뻐하면서도 달가워 하지 않았습니다.
수군을 폐하고 육군과 힘을 합쳐 싸우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본인이였고
오로지 이순신만이 수군을 포기해서 안된다는 말을 증명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어내어 백성들 사이에서의 이순신의 위상이 크게 올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조와 조정의 대신들은 이순신을 질투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한창이던 임진왜란 말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했고
전쟁의 끝이 점차 보였습니다.
11월 8일 이순신은 조정으로부터 순천의 적이 철군하니 길을 끊어 막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순천왜성 앞바다에 나타난 이순신 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워매 ㅅㅂ? 이게 뭔일이래 ? "
위기감을 느낀 고니시는 진린을 매수했습니다.
" 진린형 진린형! "
" 뭐야 이거 고니시 아님? 왜 불러 임마 ㅡㅡ 니 때매 여기서 내가 무슨 개고생이냐? "
" 아니 님아... 내 이야기 좀 들어보셈... 우리 본토로 조용히 돌아가겠다는데
이렇게 길을 틀어막으면은 어쩌라는 거임 ? 우리 그냥 조용히 갈게 길좀 열어줘.. "
" 안됨 ㅇㅇ 내 옆에 분 보임? 나는 이분 말 들을거라서 안됨
꼬우면 이순신한테 가서 말하셈 ㅇㅇ "
" 하.... ㅅㅂ 일단 가서 말해봄 ㄱㄷ "
" 똑똑똑... 계십니까 ? 나 고니ㅅ... "
" ㅈ까 길 안염 ㅅㄱ "
" 아니.. 사람 말은 끝 ㄲ... "
" 히데요시 개새끼 해봐 ㅇㅇ "
" 히데요시 개새끼! "
" 고생했음 근데 길은 안 엶 ㅇㅇ ㅅㄱㅂ"
이러한 이순신의 완강한 태도에 고니시는 다시 진린을 찾아가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배 한척만 통과 시켜 달라고 매달린다.
" 아... 배한척정도면 괜찮지 않나..? 갈땐 가더라도 배한척 정도야... "
사실 진린은 남의 나라에 와 싸우는 입장이어서 전쟁이 빨리 끝나기만
바랄 뿐 일본군과 싸울 동기가 부족 했습니다.
11월 14일 고니시가 진린에게 돼지 두 마리와 술 두 통을 보내면서
배 한 척이 포위망을 통과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자 마음이 약해진
진린이 이를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이 배 한 척은 사천에 주둔 하고 있던 시마즈 요시히로와 남해
의 소 요시토시에게 구원을 요청 했고 이들은
오백여 척의 함선을
이끌고 순천으로 향했습니다.
적의 통신선이 빠져나갔다는 보고 를 전달받은 이순신은 곧 구원군이 도착할 거라고 예견하고 고니시와 구원군 사이에서 포위 공격을
당하기보다는 먼저 적을 선제공격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이순신은 부하들을 모아두고 출전 선언을 함과 동시에 연설을 하기 시작합니다.
"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지난 7년간 저 바다에 수 많은 전우를 묻었다.
우리 손으로 이 전란을 끝내지 못한다면, 이 나라 조선 백성의 한을 싣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죄인의 굴레를 벗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1만 6천 조선수군 모두는.. 죄인의 얼굴로 전장에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내일! 우리는 모두 승리자의 얼굴로 개선할 것이다!!
단 한척의 배도.. 단 하나의 적도 살려 보내지 마라!!! "
그리고 11월 19일 새벽 이순신이 이끄는 60척의 판옥선은 노량에서
적과 마주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임진록 조선의 반격 마렵네
드디어 올라왔네!!
한줌 토론 끝나고 읽어봐야겠다 ㅋㅋ
개추추추추추
하 한국식 엔딩....... 그래도 잼난다 진린은 나중에 통영에 정착함 이순신을 좋아해서 우리나라 진씨는 시조가 진린임
굳이 왜그러지? 라는 의문이 들수도있지만
적의 재침략의지를 완전히 꺾어두기 위함이지
완결편도 올렸으니 '봐줘'
정답! 고려시대 거란의 2차, 3차 침공때 고려군이 굳이 후퇴하는 거란군을 공격한 것과 매우 흡사하지.
완결은 이따볼게
그치 ㅋㅋ 고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