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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규의 활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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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영

 

 

  양규는 2차침입당시 패망해가던 고려를 구한 영웅이다. 2차 여요전쟁당시 양규의 활약상을 간략하게 정리해보겠다.

 

거란의 재침공

 

  1차침입 당시 서희의 담판으로 오히려 강동 6주를 내줬던 거란은 호시탐탐 재침공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고려에서는 강조의 정변이 일어났고 강조가 목종을 시해하고 어린 현종을 옹립하여 실권을 장악하였다. 거란은 이것을 빌미로 왕권을 실추시킨 강조를 심판한다는 명분으로 거란 황제 야율융서가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한다. 당시 거란은 동아시아의 최강국이라 할 수 있는 나라였다. 기동력을 앞세운 기마병을 중심으로 초원을 휩쓸고 다녔고 그 대단했던 송나라조차도 거란에게 크고 작은 침공을 받으며 나라가 기울고 있는 상태였다. 

 

흥화진 전투

 

  거란 황제가 이끄는 40만대군이 첫 공격을 시작한 곳은 흥화진 성이었다. 흥화진을 지키던 장수가 양규였다. 흥화진성에는 약 7000명의 군사가 있었는데  7천명의 군사로 40만대군을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보였다. 하지만 그 불가능을 양규군이 가능으로 만들었다. 양규는 7일간의 처절한 전투끝에 성문을 굳게 지키며 성을 사수했고 이에 질린 거란군은 결국 10만의 군사를 놔두고 개경으로 진격하기로 결심한다.

 

통주전투와 개경함락, 그리고 양규의 게릴라전

  

  거란 주력군은 30만의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진격한다. 하지만 양규가 시간을 충분히 벌어준 덕분에 고려의 주력군 역시 이미 통주에 와 있었다. 고려의 주력군은 강조가 이끄는 30만대군으로 거란과 동일한 수의 군사였다. 하지만 강조의 고려군은 거란군에게 대패하고 여기서 전세가 기울게 된다. 주력군을 대파한 거란군은 곽주, 통주성을 차례로 함락하며 서경까지 진격하고 개경함락도 코앞에 둔 상황이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고려 현종은 나주로 피난을 결정하게 된다. 거란군은 강민첨이 지키는 서경성을 함락하진 못했으나 결국 현종이 떠난 개경을 불태우고 현종을 추격하게 된다.

 

  이 때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흥화진 전투의 영웅 양규가 700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통주를 급습하여 포로들을 구출한 것이다. 포로들까지 1700명정도의 군사를 이룬 양규는 거란군 4000명이 지키던 곽주성을 함락시킨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이다. 성을 함락시키려면 일반적으로 상대 군사의 5배 정도의 군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양규는 오히려 3분의1정도 적은 군사규모로 곽주성을 함락시켰다. 그야말로 한국사에서 유례없는 일이었다.

 

  양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다시 결사대 1700명을 이끌고 김숙흥 등과 합류하여 계속해서 거란군의 보급로를 끊고 포로를 구출하며 동에번쩍 서에번쩍했다. 당시 거란군은 양규군이 나타났다는 얘기만 들으면 공포감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거란군의 철수, 그리고 양규의 최후

 

  상황이 장기화되고 현종이 피난을 떠나자 거란군도 피로를 느껴 결국 더 전쟁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거란군은 후일을 기약하며 철수를 결정한다. 하지만 양규는 그런 거란군을 편하게 가도록 놔두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거란군을 급습해 포로들을 구출하였고, 결국 거란황제의 본대를 직접 공격할 계획까지 세운다. 마지막 전투가 다가온 것이다. 양규가 이끄는 결사대는 기껏해야 1700명, 거란군은 적어도 20~30만이었다. 이 전투에서 양규는 수많은 포로를 구출하고 장렬히 전사한다. 고려사, 고려사 절요 등 기록에 따르면 하루종일 싸우다가 화살과 무기가 떨어졌고 결국 양규 김숙흥 등이 수백발의 화살을 맞고 장렬히 전사했다고 되어있다. 최고의 장군다운, 그에 어울리는 죽음이었다.

 

양규에 대한 평가

 

  개인적으로 나는 양규장군을 고려의 이순신장군이라고 과감하게 평가할 수 있다. 7000명으로 40만대군을 방어한 것은 안시성전투를 연상시켰고 1700명의 병사로 4000명이 지키는 성을 함락시킨것은 한국사에 유례없는 일이다. 또 700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성밖으로 나와 포로들을 구출하고 다닌 것도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할 수 없는 판단이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였듯이 양규 역시 거란 본대를 공격하여 포로를 구출하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양규 장군이 없었다면 고려의 역사는 이미 이 때 끝났을것이다.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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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이 없습니다.
  • 홍준숙
    2021.12.11

    이런글은 좋다

  • 홍준숙
    유가영
    작성자
    2021.12.11
    @홍준숙 님에게 보내는 답글

    감사감사

  • 길태미
    2021.12.11

    크 강한 나라에는 역시 뛰어난 인물이!!

    근대 정작 우리나라는 다 내치거나 잡아 넣고 있네??

  • 길태미
    유가영
    작성자
    2021.12.11
    @길태미 님에게 보내는 답글

    좀 본받아라!

  • 유가영
    작성자
    2021.12.11
    @ 님에게 보내는 답글

    오 그건 몰랐네 찾아봐야겠으요

  • 킬로렌츠
    2021.12.11

    요나라는 유목국가의 특성 덕분에 인구 수백만인데도 불과하고 인구 1억인 북송을 몰아붙인 것을 보면 확실히 유목국가들이 군사력이 매우 강하긴 합니다. 요나라의 공세를 고려가 막아주었기에 동북아시아가 요-송-고려-서하 체제로 가서 평화를 이룩할 수 있었죠.

  • 킬로렌츠
    유가영
    작성자
    2021.12.11
    @킬로렌츠 님에게 보내는 답글

    맞는 말씀이십니다. 귀주대첩이후 거란이 고려정벌을 포기함으로써 몽골이 패권을 잡기 전까지 동북아시아에 평화가 찾아왔죠

  • 유가영
    킬로렌츠
    2021.12.11
    @유가영 님에게 보내는 답글

    몽골이 전 유라시아를 쓸어버릴때까지의 평화가 보장되었죠. 고려가 요나라와 송나라 사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었기때문에 평화가 보장되었는데, 이게 강대한 군사력에 기반하였으므로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한 군사력이 필수라는 것이 증명되는 사례 중 하나죠.

  • 킬로렌츠
    유가영
    작성자
    2021.12.11
    @킬로렌츠 님에게 보내는 답글

    맞습니다. 강한 군사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지향해야할 가치라도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고려같은 나라를 보고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 유가영
    킬로렌츠
    2021.12.11
    @유가영 님에게 보내는 답글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호나
    2021.12.28

    유목민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성공했다는것만 봐도

    대단한 장수임은 분명한데

    정말 거란2차침입때 전사한게 아쉽네

    살아있으면 저공으로 평생을 명예롭게 살수도 있을텐데

     

  • 호나
    유가영
    작성자
    2021.12.28
    @호나 님에게 보내는 답글

    영화에서나 볼법한 말도 안돼는 장수지요. 마지막 전투때 전사한것이 이순신장군님을 연상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