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베이스 연광철(58)이 첫 한국 가곡 음반 '고향의 봄'을 내고 12월 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독창회를 연다. 음반은 지난 3일 온·오프라인을 통해 전 세계 동시 발매됐으며, 내년 초에는 LP로도 만날 수 있다.
연광철은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예술학교, 베를린 국립음악대학을 거쳐 1993년 오페랄리아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주목을 받았다. 1994~2004년 독일 베를린 국립오페라 극장 전속가수로 활동했으며, 베를린·밀라노·런던·파리·뉴욕 등 세계 주요 무대에서 꾸준히 활약했다. 2018년에는 독일어권 성악가 최고 영예인 '카머젱거(Kammersanger·궁정가수)' 칭호를 받았다.
"30년 동안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그들의 문화와 음악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감동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오페라에서는 주로 왕이나 대신을 연기해야 하지만, 한국 가곡을 부를 때만큼은 나 자신이 된다. 온전히 저희 것을 부르는 마음이었다. 편안하고 즐거웠고, 그만큼 의미가 있었다. 기회가 되면 더 자주 부르고 싶다."
음반에는 '비목', '청산에 살리라', '그대 있음에', '달밤', '별' 등 1920~1970년대 16곡, 올해 김택수(43)에 위촉해 만든 '산속에서', '산복도로' 신작 2곡 등 18곡이 담겼다. 녹음은 지난 7월 톤마이스터 최진 감독과 함께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진행했으며, '신박 듀오'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신미정(40)이 반주를 맡았다.
특히, 마지막에 수록된 홍난파 작곡의 '고향의 봄'(1926)은 무반주로 성악적인 발성이 아니라 힘을 빼고 담담하게 읊조리듯 불렀다. 연광철 특유의 낮은 목소리가 주는 묵직함이 잔잔하게 피어오르며 깊은 울림이 줬고, 모든 음이 사라진 후에는 애틋하고 아련한 여운이 남았다.
연광철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 살았던 13살 어린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누구나 흥얼거릴 정도로 모두 알고 있는 '고향의 봄'은 충주 산골을 다니던, 있는 그대로의 내 이야기다. 제가 자랐던 공간들, 시골, 냇가, 거기에 있던 버드나무를 생각하면 목이 메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음반에서는 소리와 발성 등 음악적인 부분보다 시를 낭송하는 자세로 임했다. 세계 언어 중에서 우리나라 말처럼 노래하기 좋고 편안한 언어가 없다"며 "작곡가들이 음성학에 대해 더 공부하면 예술적인 가곡이 지금보다 많이 나올 것 같다. 앞으로 무한히 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책 형태로 제작된 음반의 표지는 지난 달 14일 작고한 박서보 화백의 단색화 '묘법 No.980308'으로, 박서보재단의 후원을 받아 디자인에 활용했다. 가사는 번역 전문가 정새벽·요시카와 나기·박술이 참여해 영어·일어·독일어 3개 국어로 함께 실었다.
'고향의 봄'은 2003년 클래식 전문 음반 매장으로 출발한 풍월당의 20주년 기념 음반이기도 하다.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위치한 풍월당은 연간 약 300회의 클래식 전문강좌를 운영하고 50여권의 전문도서를 출간하는 문화예술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박종호(63) 풍월당 대표는 "감개무량하다. 당시 레코드 가게가 하나, 둘 사라질 때 '종이책이 없어지면 독서가 없어지는 것처럼 음반이 없어지면 음악도 없어진다'는 모토로 풍월당을 만들었다. 20년 동안 문을 닫지 않고 이 공간을 지켜온 것이 가장 감동적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도 듣지 않으니까 한국 가곡 음반을 내지 않는다고 하는데, 공급이 없기 때문에 수요가 없는 것이다. 한국적 정체성이 담긴 가곡을 누군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음반을 기획했다. 한국 가곡은 독일의 리트에 비해서도 수준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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