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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임금에 대해 알아보자

신라민국 책략가

도(陶) 지방에서 태어나 당(唐) 지방에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출신지와 성장 배경을 따서 '도당씨'라고 부르기도 하고 '당요'라고 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출신지 이름(질그릇 도陶)과 요(堯)[4]라는 이름을 종합해 볼 때, 정교한 토기 제작 기술을 보유한 집단의 지도자로 추정하기도 한다. 《사기》에는 20세에 왕위에 올라 7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기록되었다.

요는 성군의 자질을 고루 갖추었다. 임금인데도 매우 검소하여 겨울에는 가죽 옷을, 여름에는 삼베 옷을 입었으며 띠집에서 채소국으로 끼니를 채웠다고 한다. 워커홀릭이라 자신을 돌보지 않아 악전이라는 신선이 요를 보고 "저게 임금의 얼굴인가." 하고 동정하여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신령스러운 잣을 나누어줬다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그것을 받고도 먹을 새도 없이 다시 일했다고 한다. 덕분에 천하는 평화로워져 시골 노인이 평상복 차림을 한 요 임금 앞에서 태평성대에 취해 막대기로 땅을 치며[擊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으니,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이 일화로부터 태평성대를 뜻하는 <격양가>(擊壤歌)가 유래했다.


그 뒤를 이은 사람이 바로 순 임금이다. 요 임금에게는 친아들 단주가 있었지만 아버지만한 덕과 재능이 없었다. 요는 아들 대신 현명한 이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허유를 찾아갔지만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다음 후계자로 찾은 사람이 이었다. 요는 가난한 순의 살림을 돌봐주고 자신의 두 딸 아황과 여영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순이 덕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에서도 통과하자 요는 순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는 중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선양사례로 꼽히며, 후대 왕조를 교체할 때 훌륭한 프로파간다로 악용되었다. 유가를 싫어했던 한고제 유방의 경우 조금 더 시니컬하게 평가했는데, 혜제에게 '소 한 마리도 주기가 아까운데 요왕 그 양반이라고 좋아서 천하를 순한테 넘겼겠냐, 그냥 자기 자식이 못 미더워서 그랬던 거지.' 하고 일축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는 본인의 폐태자 시도에 대한 변명이었던 것 같다.


신화적 성격이 강한 삼황오제 중에서도 요는 그 고결함이 독보적인 수준이다. 심지어는 흔히 세트로 묶이는 순 임금과 비교해도 미세한 차이가 있다. 순은 형벌을 제정하고 악인들을 귀양보내며, 후계자인 우에게 명령하여 복종하지 않는 묘족을 정벌하였다. 또한 순은 임금이 되기 전에 가족 때문에 시련과 고뇌를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의 삶에서는 그런 고난도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하늘과 땅이 요에게 그런 질서를 주었을 뿐이다.

아무튼 이러한 고결함 때문에 동북아시아에서는 군주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으며, 태평성대를 이룩한 시기를 요순시대라고 불렀다. 다만 자뻑이 심한 들이 스스로 자칭하거나, 아부에 능숙한 신하들이 자주 사용하는 상투적인 표현이었다. 그리고 고대 중국 신화(예 신화)에 따르면, 이 시기에 각종 자연 재해가 일어나[5] 요 임금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했을 정도라고 하니, 어떤 면에서는 유토피아와 같이 다소 풍자하는 의미도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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