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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도둑, 도척 이야기

신라민국 책략가

盜跖 / 盜蹠

춘추전국시대에 살았던 전설적인 도적으로 노나라의 현인인 유하혜(柳下惠)의 동생이다.

본래 성은 전이고 이름은 획. 자는 금 또는 막내를 가리키는 계. 형 유하혜는 유하 지방에 살았고 혜라는 시호를 받아 유하혜라고 불렸는데 노나라의 대부로 형벌을 관리하는 직책에 있었다. 참고로 도척은 공자보다 100년 가량 윗대 사람이다.


도적으로 활동할 때 태산에 웅거하여 무려 9천명의 부하를 이끌면서 제후를 공격하고 약탈할 정도로 기세가 당당하고 막강했다. 사람 간을 썰어 먹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 토벌당했다는 기록도 없어서 사마천은 사기 백이열전을 통해 "인육먹는 도척 같은 놈이 집에서 편안하게 죽고 백이숙제 같은 선인은 굶어 죽었다" 며 악인이 천수를 누리고 선인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현실에 화두를 던진다.

9천명이 되는 부하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나름대로 카리스마가 있었는지, 도적에게도 도적의 도(道)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도둑질 하러 남의 집에 들어갈 때, 무엇이 있는지 바로 알아맞히는 것이 성(聖), 남보다 앞장 서서 들어가는 것이 용(勇), 남보다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義), 도둑질을 해도 차질이 없는 곳을 터는 곳이 지(智), 훔친 것을 정당하게 나누는 것이 인(仁) 이라고 하며, 이 다섯가지를 갖추지 못하고 큰 도적이 된 자는 없다.


다만 애초부터 그 수단이 불법적인 산도적질인 시점에서 인의는 이미 없고,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시키는 궤변이다. 그만큼 자신의 행동에 당당하고 거침없었다는 의미다.

공자가 그를 감화시키려고 했지만 오히려 나름대로의 논리로 공자를 조롱하고 협박해서 쫓아냈다는 야사가 있다. 문제는 이 야사의 출처가 장자 외편 거협(胠篋)이다. 장자는 공자와 같은 유가 계통의 인물을 멋대로 인용해서 조롱하는 것이 하나의 패턴인 책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은 전혀 아니다. 심지어 유하혜나 도척은 공자보다 훨씬 이전 시대의 사람이라 창작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야사에 따르면 이런 도척도 집에 들어오면 촛불을 켜고 잠을 자는 자기 자식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장차 이놈은 나 같은 도적이 안되었음하기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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