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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조선사> 056 세종의 능력을 이어받은 왕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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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제4대 세종

 

안평대군(1418~1453년)은 세종의 셋째 아들로 1438년(세종 20년)에 다른 왕자들과 야인을 토벌했으며 김송서 / 황보인과 함께 수양대군을 견제했다.

 

안평대군은 수양대군에 맞서 황표정사 회복에 노력했으나 계유정난으로 실패했다. 계유정난 이후 강화도로 귀양을 갔다가 교동에서 36세에 사사되었다. 

 

시 / 서 / 화에 모두 뛰어나 삼절이라 불렸으며, 당대 제일의 서예가로 이름을 날렸다. 

 

안평대군의 꿈 얘기를 듣고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에 안평대군이 적은 발문이 유명하다.

 

임영대군(1419~1469년)은 세종의 넷째 아들로, 1430년(세종12년)에 안평대군과 성균관에 입학했다. 세종의 명을 받아 총통 제작을 감독했고, 문종의 명을 받아 화차를 제작했다. 이후 세조를 보좌하며 신임을 얻었다.

 

광평대군(1425~1444년)은 세종의 다섯째 아들로, 태조와 신덕왕후 강씨의 첫째 아들인 방번의 봉사손으로 입양되었다. 

 

성균관에서 학문을 익혔던 광평대군은 <효경> <사서삼경>등에 능통했으며 국어와 음률, 그리고 산수에 밝았다. 6진 중에서 종성의 정재소를 맡아 국방 강화 및 풍속 교화에 힘썼으나, 20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었다.

 

금성대군(1426~1457년)은 세종의 여섯째 아들로, 태조와 신덕왕후 강씨의 두 번째 아들인 방석의 봉사손으로 입양되었다. 

 

단종이 즉위하자 사정전에서 수양대군과 함께 단종의 보필을 약속했다. 금성대군은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른 것에 반발하다 삭녕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자, 유배지에서 순흥부사 이보흠과 단종 복위를 위한 정변을 계획했다. 그러나 관노의 고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반역죄로 죽었다.

 

평원대군(1427~1445년)은 세종의 일곱째 아들로, 학문에 재능을 보였으나 천연두로 죽었다. 세종은 평원대군의 죽음을 불교로 극복하려 했는데, 이는 숭불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영응대군(1434~1467년)은 세종의 여덟째 아들로, 세종이 영응대군의 집인 동별궁에서 죽을 정도로 아버지 세종에 큰 사랑을 받았다. 영응대군은 <명항계감>의 가사를 한글로 번역했으며 글과 그림, 그리고 음악에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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