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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소련의 전략

신라민국 책략가
6.25 1년전 1949년 스탈린에게 김일성은

남침 허락을 받으러간다. 근데 스탈린은

모택동의 동의를 먼저 받으면 허락 한다고 이야기 한다. 모택동은 동의한다.

스탈린은 1945년 6월 28일 미 유엔 소재 

소련 대사에게 안보리 회의에 불참할 것을

지시한다. 기권 하라는 지시다. 미국은 자국 

참전 및 유엔 창설 후 첫 연합국 16개국 참전을

한다. 다부동 까지 밀리자.미국은 포기하고

망명정부를 수립할지 고민한다.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을  계기로 서울 수복,적의

후방을 차단해 고립화 시킨다. 당시 38도

선까지 수복후 전쟁 중단을 계획했던 미국은

의기양양한 한국군과 맥아더의 보고로 프리패스,즉 북진 통일을 암묵적으로 승인한다.

미국은 의아했지만, 맥아더는 중공은 참전

하지 않을 것이라,트루먼에게 보고한다.

근데, 김일성은 스탈린을 찾아간다.참전요청이다.근데 3차대전을 우려한다며 중공군 국기를 단 공군기로 폭격만 지원한다고 한다.

압록강 까지 북진한 상태로 당시 만주 강변에

주둔하던 중공 20만 군대는 꽹과리와 징을 치며 남하한다.맥아더는 트루먼에게 만주 핵폭격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하고 장진호 전투

패배후 흥남에시 철수 한다. 그뒤 2년간의

지루한 고지전을 38도선에서 진행한다.

결국 휴전을 하고 72년동안 분단상태로 고착화 한다. 당시 소련 서기장 스탈린 원수의

전략은 다음과 같다. 미국과 중국을 한반도에서  피를 흘리게 해서 소련의 유럽 공산화 작전에 미국이 개입 못하도록 발을 묶어둔다.

그리고 머리가 커진 모택동을 전쟁의 한복판에

끌어들여 소련이 계속 조종하고 부하로 부린다. 결국 소련은 미국,중국이 국력소모 해서

다 망하도록 뒷짐지고 구경하는 양수겸장

전략을 구사했다.소련의 한국의 공산화에

관심이 없었고,오로지 남,북 영구분단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6.25로 남북통일은 실패했지만 남한 적화와, 공산주의 소련해체,동구권 붕괴로 자기 실패로 돌아갔다. 한국 전쟁의

덕을 많이 본 나라는 대만,일본,독일,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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