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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조선사> 030 제3대 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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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제3대 태종

 

이름:방원

출생-사망: 1367~1422년

재위기간: 1400년 11월~1418년(17년 10개월)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로 태어난 이방원은 문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7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의 자랑이자 조선 건국에 있어 가장 큰 조력자였다. 특히 이방원이 조선 건국에서 가장 걸림돌이었던 정몽주와 나눈 <하여가>와<단심가>는 이 방원의 학문 수준이 높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조선이 건국되자 이방원은 정도전에 의해 정치에서 배제되며 위기에 처해졌다. 정안군으로 봉해지기는 했으나 태조 이성계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공신이 되지 못한 이방원은 세자를 책봉하는 과정에서도 배극렴 등 여러 관료의 추천을 받았으나 끝내 배제되었다.

 

어린 이복동생 방석이 세자가 되고, 정도전의 사병 혁파로 위기감을 느낀 이방원은 1398년(태조7년), 태조가 병으로 눕자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방석과 정도전을 죽이며 난에 성공한 이방원은 왕위를 둘째 형 방과에게 넘겨주고 왕실의 실권을 잡았다. 

 

그 후로는 허수아비로 정종을 내세워 사병을 혁파하고 관제 개혁 등을 통해 왕권을 강화했다. 1400년(정종2년), 이방원은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박포와 넷째 형 방간이 난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고 정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 이를 제2차 왕자의 난이라 불렀다. 

 

왕이 된 태종 이방원은 처남 민무구 / 민무희 4형제를 시작으로 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태종은 일찌감치 장남 양녕대군을 세자로 삼았으나 그가 여러 문제를 일으키자, 셋째 아들 충녕대군을 왕으로 즉위시켰다. 

 

이후 군사권과 인사권을 가진 상왕으로 세종을 뒷받침하다가 1422년(세종4년)에 죽었다.

 

태종의 업적은 다양하다. 태종은 의정부와 6조 중심의 행정체계를 완성하고, 8도 체제를 정비했다. 또 의금부를 설치해 왕권을 강화하면서도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신문고를 설치했다. 

 

억불숭유 정책으로는 많은 사찰을 폐쇄하고 노비와 토지를 몰수했다. 그리고 서얼의 관직 진출을 억제하는 서얼차대법을 제정했으며, 호패법을 실시해 정부가 백성들을 직접 관리 / 통제할 수 있게 했다. 

 

태종의 능호는 헌릉으로, 그 능은 서울 서초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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