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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조선사> 013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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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제1대 태조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새로운 수도로 삼으려 하자 하륜을 제외한 많은 신하가 반대했다. 이성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1394년(태조3년) 8월 13일, 한양으로의 천도를 결정했다. 천도를 향한 이성계의 뜻이 변하지 않을 것을 눈치챈 신하들은 더는 천도에 반대하지 않았다. 

 

태조가 당시 최고 정무 기관이었던 도평의사사에 한양천도에 대한 의견을 묻자 도평의사사는 "앞뒤 산하의 형세가 빼어나고 사방의 도리가 고르고 배와 수레가 통하니, 이곳에 도읍을 정해 후세에 영구토록 전승하면 하늘과 백성의 뜻에 맞을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도평의사사가 태조의 뜻을 받들어 천도를 국가 방침으로 결정하자, 태조는 다음 달인 9월에 임시 관아인 신도궁궐조성도감을 설치하고 천도 준비에 들어갔다. 정도전은 종묘 / 사직 / 관청 / 시가지 / 도로의 터를 지도로 작성하고, 심덕부와 김주 등은 한양에 머물며 수도 건설을 관리 / 감독했다. 수도를 옮기는 일이 중차대한 일이었던 만큼 궁궐과 관청 등을 짓는 데 여러 해가 필요했으나, 마음이 급한 태조는 10월 28일 한양부의 객사를 이궁으로 삼아 거처를 곧바로 옮겼다. 

 

태조가 수도를 옮기고 싶은 마음을 이토록 강하게 표출하다 보니, 공사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듬해인 1395년(태조4년) 9월, 종묘사직과 궁궐이 완공되자 정도전이 법궁의 이름을 '경북궁'으로 제안했다.

 

그해 12월 태조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수도, 한양의 경북궁으로 입궁했다. 그리고 다시 이듬해에 수도를 방비하는 도성과 사대문, 그리고 사소문이 완공되면서 경북궁은 법궁의 지위를 완벽하게 갖추게 되었다. 

 

서울시는 1994년부터 태조가 한양부 객사로 거처를 옮기고 정무를 본 10월 28일을 '서울 시민의 날'로 제정했다. 이날은 사물놀이나 조선시대 과거시험 재현 등 서울시 곳곳에서 서울 천도를 기념하는 거리 축제가 벌어진다. 

 

013 숭례문.png.jpg

 

사대문 : 숭례문(남), 숙청문(북), 홍인문(동), 돈의문(서)

사소문 : 홍화문 -> 혜화문(동북), 광희문(동남), 

소덕문->소의문(서남), 창의문(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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