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대 태조
1392년 7월12일, 공양왕은 이성계의 집을 찾아가서 술자리를 가졌다. 왕이 신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왕이 신하의 집을 찾아 가는 모습에서 많은 사람은 고려의 실질적인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술자리를 갖던 도중 시중 배극렴이 왕대비에게 공양왕을 폐하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배극렴은 공양왕이 임금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국정을 혼란케 하는 등 왕의 자격이 없다고 했다.
아무런 힘이 없던 왕대비는 고려의 국운이 다했음을 받아들이고 공양왕을 폐하는 데 동의했다. 왕대비로부터 공양왕르 폐위한다는 교지를 받은 남은과 정희계가 공양왕이 거처하는 시좌궁에 들어서자, 공양왕은 "내가 본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가 나를 강제로 왕으로 세웠습니다. 내가 어리석고 둔해 일이 돌아가는 것을 알지 못하니 어찌 신하의 심정을 거스른 일이 없겠습니까?"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성계에게 고려의 왕위를 물려준 뒤 원주로 향했다.
다음 날인 13일, 왕대비는 나랏일을 감독하고 인사권을 총괄하는 감록국사에 이성계를 임명했다. 16일에는 배극렴과 조준이 옥새를 바치기 위해 이성계의 집을 찾았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몰려들었을 때, 대사헌 민개만이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성계는 민개를 죽이려는 남은을 말리고, 모인들에게 옥새를 가지고 돌아가라고 타일렀다. 배극렴과 조준은 이성계가 돌아가라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집 안으로 들어와 옥새를 바쳤다.
옥새를 보고 놀란 이성계가 이천우를 붙잡고 겨우 침실 밖으로 나오자, 백관이 절을 올리며 만세를 외쳤다. 배극렴의 주도아래 모든 문무백관이 한 목소리로 이성계에게 공양왕이 임금의 도리를 잃고 스스로 물러났으니 군정과 국정의 사무를 통솔하는 왕이 되어달라고 외쳤다.
이성계는 왕의 자리를 감당할 수 없다고 고사했으나, 문무백관이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이들의 뜻을 허락한 이성계는 수창궁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하들의 하례를 받은 이성계는 육조판서 이상의 관원을 불러 자신을 잘 보좌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로써 34대 474년을 끝으로 고려는 망하고, 새로운 국가인 조선이 창업했다.
나라의 국운은 참으로 슬프오!
칼춤의 꽃 놀이 도화전에 노래 가락 시리게 흥경운데
오백년 공들여 애써온 대업 모두 허사로다~
고려는 끝났으나 아직도 COREA ->KOREA 역사의 흔적은 남이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