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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6명 배웅한 염장이 “내 사무실 번호 뒤가 4444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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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맹이 청꿈직원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2/02/26/JMH2C2RTQJDI7HIWMXVEVA2NRU/

 

 

 

 

 

[Why] 대통령 3명 염한 '무념무상'의 손유재철씨가 사무실에서 마네킹을 대상으로 염습을 해보이고 있다. 그는 “죽음은 당하는 게 아니라 맞이하는 것”이라며 “삶을 돌아보면서 죽으면 유산은 어떻게 할지, 의료 행위는 어디까지 허용할지, 화장할지 매장할지 등을 적어놓는 ‘엔딩 노트’ 작성을 권한다”고 했다. 뒤에 보이는 액자는 생사를 뛰어넘으라는 교훈을 담은 금강경. /오종찬 기자

 

 

 

유재철(63)씨는 산 사람과는 약속을 잘 잡지 않는다. 직업이 장례지도사다. 별명은 ‘대통령 염장이’.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 6명의 마지막 길을 그가 배웅했다. 최규하(2006년), 노무현(2009년), 김영삼(2015년), 노태우(2021년), 전두환(2021년) 전 대통령의 장례를 직접 모셨고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國葬) 진행을 맡았다. 2010년 법정 스님, 2020년 삼성 이건희 회장도 이 염장이 손을 거쳤다.

사람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다. 산파가 산도를 열어 이 세상으로 잘 이끌어주는 사람이듯 유재철씨는 세상 인연 매듭지어 저세상으로 잘 보내드리는 일을 한다. 대한민국 전통장례명장 1호인 그는 사람이 죽으면 언제든 어디든 달려간다. 생명이 없는 육체에 마지막 목욕을 해드리고 수의를 입히고 관에 눕힌다. 30여년 세월 동안 수많은 죽음을 만난 유재철씨가 최근 ‘대통령의 염장이’(김영사)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그동안 수천 분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내일 무너져도 이상할 것 없어 보이는 허름한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부터 규모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대궐 같은 집에서 사는 재벌까지, 차별과 소외를 당하며 살아온 이주노동자부터 전 국민에게 선망과 질시를 동시에 받아가며 나라를 이끈 대통령까지 숱한 죽음과 마주했다. 평범한 사람이건 유명한 사람이건 염습에는 차이가 없다. 염(殮)은 ‘묶는다’, 습(襲)은 ‘목욕시키고 갈아 입힌다’는 뜻인데 시간은 약 40~45분쯤 걸린다.

유재철씨 사무실은 전화번호 뒷자리가 ‘4444′였다. 남들은 한사코 피할 죽을 ‘사(死)’를 그는 붙잡고 있다. 사람은 모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최고 권력자도 매한가지다. 유재철씨는 “고인을 고이 보내드릴 때마다 아이러니하게도 참된 삶이란 무엇인지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 염장이가 펴낸 책과 인터뷰를 통해 전직 대통령들의 마지막 모습을 정리했다.

 

 

 

 

 

[Why] 대통령 3명 염한 '무념무상'의 손유재철씨와 스님들이 2010년 서울 길상사에서 입적한 법정 스님을 운구하고 있다. 다비식에서 스님들은 외친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육신을 벗어나소서!"

 

 

 

◇최규하 전 대통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입관실에서 처음 본 최규하 전 대통령은 여느 할아버지처럼 인자한 얼굴로 누워 계셨다. 대통령을 염한다고 잔뜩 긴장했던 우리 직원들 표정이 자연스럽게 풀어졌다. 왕실의 장례 절차에 맞게 몸을 띄워서 준비한 수의를 입혀 드렸다. 가족들과 비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입관해드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먼저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는 국민장으로 진행해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됐지만, 2004년에 돌아가신 최 전 대통령의 부인 홍기 여사는 원주 선산에 묻혀 계셨다. 그 산소를 개장해 향나무 관에 모시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있는 최 전 대통령 관 옆으로 안치했다.

대통령 묘가 대전 현충원에 들어오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묏자리를 직접 확인하러 갔다. 파다 보니 다섯 가지 빛깔이 섞인 오색토가 나왔다. 풍수지리에 능한 이홍경 선생이 “흔치 않은 명당”이라고 했다. 청색 흙과 홍색 흙의 경계를 중심으로 왼쪽에 최 전 대통령, 오른쪽에 홍기 여사를 모셨다. 유재철씨는 “돈을 많이 들여서라도 명당을 찾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애쓰지 않아도 얻는 사람이 있다”며 “욕심부리지 않고 순리대로 얻은 복은 그것을 보는 다른 사람에게까지 깊은 감동과 성찰을 남긴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2009년 5월 22일 배우 여운계씨가 세상을 떠났다. 이튿날 오전 입관이 끝나갈 무렵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고 문자가 쉴새 없이 들어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소식이었다. 부산대병원 장례식장 안치실에서 고인을 뵈었다. 피투성이였다. 정맥에서 피를 빼고 동맥으로 특수약품을 집어넣어 부패를 막았다. 고인을 관에 모셔 봉하마을로 향했다. 지금껏 치른 어떤 장례보다 조문객이 많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징인 노란색 리본에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적게 했다. 5월 2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노제를 지냈다.

유재철씨는 대통령 장례 중에 기억에 남는 일화로 노무현 전 대통령 만장(輓章) 사건을 꼽았다. “사나흘 안에 2000개를 만들어야 하는데 글은 누가 쓰며 대나무는 어디서 구합니까. 서예 하는 분들 수소문하고 담양군청에 대나무 요청하고 동대문시장엔 비상을 걸었어요. 간신히 만들었더니 행안부에서 대나무를 PVC로 바꾸라는 겁니다. 죽창으로 바뀔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겠지요.”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남긴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 남겨라”라는 유지를 받들어 시신을 화장했다. 묏자리는 부엉이바위와 마주하는 곳에 썼다. 유재철씨는 “염을 하고 장례 기획 일을 맡아 하면서 나는 장례식의 관점을 고인에게 맞추려고 한다”며 “꽃을 바치더라도 꽃송이가 고인을 향하도록 놓고, 유족보다는 고인의 종교나 신념을 존중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전했다.

 

 

 

 

[Why] 대통령 3명 염한 '무념무상'의 손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운구병 행렬 오른편에 유재철 대표가 서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2009년 8월 18일, 동국대에서 전직 대통령 장례 절차에 대한 세미나를 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었다. 유재철씨는 사회를 후배 교수에게 부탁하고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때 만난 행안부 직원들이 장례 자문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장례협회와 상조회사 등 다섯 군데가 맡았는데 모두 저한테 연락해 왔어요. 경험 있는 사람이 끼어야 한다는 겁니다. 염은 천주교 교인들이 하고 저는 국회의사당에 고인 모실 곳과 조문받을 곳, 영결식장을 만들어드렸습니다.”

 

김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박지원 의원이 사전에 연세대 측에 염습을 맡긴 터였다. 유재철씨는 국회의사당 빈소와 시신 안치, 분향소 운영·관리, 영결식 후 운구 행렬 등 실무적 절차를 진행했다. 김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우리나라 ‘국가장법’을 제정하게 된 계기가 됐다. 2011년에 국장과 국민장이 국가장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된 것이다. “또 한 분의 대통령을 보내며 하나씩 배우고 얻는 게 있어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그는 술회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흔들어 잠에서 깼더니 새벽 1시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이었다. 2015년 11월 22일. 유재철씨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국가장법이 제정되고 나서 처음 치러지는 국가장이었다. 고인은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고 아주 평온해 보였다. TV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거인이었는데 대통령도 시상판 위에 누워 계시니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유재철씨는 “국가장은 TV로 방송되기 때문에 그릇된 풍토를 바꿀 좋은 기회”라고 회고했다. 아들 김현철씨 설득해 상주가 왼팔에 완장을 차는 대신 베로 만든 상장을 왼쪽 가슴에 달아주었다. 군사문화 중 하나로 운구병들이 쓰던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게 했다.

“완장은 일제(日帝)의 잔재입니다. 시위로 번질까 봐 조선총독부가 강요했지요. 출토 복식을 공부해 보니 색동저고리, 비단도 나와요. 삼베는 죄인들이나 입던 건데 일본이 비단·명주 약탈해가면서 문화를 바꿨습니다. 이맹희 전 CJ 명예회장 모실 때는 그분이 원해서 평소 좋아했던 양복을 입혔어요. 예법에 어긋나는 게 아닙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2021년 10월 26일 정오 무렵, 노 전 대통령이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울대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프로레슬링 선수 김일이 별세한 날이기도 했다. 유재철씨는 “생일보다 망일을 더 잘 기억하게 만든 직업 탓에 헛헛한 속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가장으로 결정됐다. 이름만 적어 넣었던 고인의 명패를 ‘대한민국 13대 대통령 노태우’로 바꾸는 것을 시작으로 서둘러 격식을 수정했다.

그는 고인을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오랜 병상 생활로 체구가 상당히 왜소해지셨고 얼굴도 수척해지셔서 기억에 남아 있는 모습과는 차이가 컸다. “아드님과 따님, 마지막으로 아버님 손을 닦아주시겠어요?” 노소영씨와 노재헌씨가 고인 앞으로 나와 아버지의 손을 담담히 닦아드렸다. 대통령 염장이는 유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인의 옷을 벗겨 몸을 닦아드리고 수의를 고이 입혀드렸다. “서툴더라도 유족이 염습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고인을 위해서나 유족을 위해서나 의미 있다”고 유재철씨는 말한다.

“우리 아버지 잘 모셔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장례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몰랐어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노소영씨는 이렇게 말하며 그와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다. 관을 앞에 두고 유족과 사진을 찍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슬픔에 매몰되지 않는 모습이 싫지 않았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거하시고 나서 28일 후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별세하셨다. 전 전 대통령의 유족들은 국민 여론을 고려한 탓인지 국가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5일간의 가족장으로 치러드렸다. 그 후 약 10일 뒤에 노 전 대통령의 안장식까지 진행해야 했으니, 한 달 보름간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한다.

유재철씨는 실제로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나서 며칠 동안 앓아 누웠다. 노 전 대통령의 안장식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서 오랜만에 술 한 잔 마시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책에 썼다. ‘만약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별세 시기가 뒤바뀌었다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을 원만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을까?’

 

 

 

 

 

 

유재철씨가 펴낸 책 '대통령의 염장이'

 

유재철씨가 펴낸 책 '대통령의 염장이'
 

 

◇대통령 염장이가 수습한 지혜

유재철씨는 “태어날 때 자신은 울지만 주위 사람은 웃고 죽을 때 주위 사람은 울지만 자신은 웃는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태어날 때 걱정하는 아이가 없듯 세상을 떠날 것을 걱정하는 이가 없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2017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을 공부해야 삶이 깊어져요. 사람들은 마치 자신은 안 죽을 것처럼 살지요. 그런데 스티브 잡스를 보세요. ‘오늘이 마지막날이라면 뭘 할 것인가‘를 매일 자문했습니다. 기자도 원고 마감시간이 있지요? 끝이 있다는 것은 그래서 축복일 수 있습니다. 죽는다는 걸 의식하면 하루하루가 소중해져요.”

대통령 염장이가 쓴 책에서 가장 공감한 대목은 157쪽에 등장한다. 가능한 한 온전한 형태로 옮겨 적어본다. “살아 있음에도 죽은 것처럼 사는 사람이 많다. 생기(生氣)는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을 때 생기가 돌고 ‘살아 있는’ 사람이 된다. 대통령 염장이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을 자랑으로 삼진 않는다. 다만 고인이 어떤 사람이든 죽음을 맞이한 자를 편안하게 보내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듯하다.”

 

대통령 염장이가 들려주는 지혜다. 죽은 사람처럼 살지 말고 산 사람처럼, 생기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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