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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백선엽

신라민국 책략가


다부동 전투는 1950.7.15~8.25 약 1달간 대구 근교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 유학산 일대에서 벌어진 국군 1사단 과 미 2사단, 인민군 간 벌어진 고지 전투 입니다. 한국은 대전에서 대구로 임시수도 이전 후 다시 부산으로 수도 이전.마지막 방어선이 대구 근교 왜관읍,가산면 일대를 한국군 1사단 백선엽 장군이 지휘를 했습니다.


당시 미군은 국군이 싸우지 않고 철수만 한다고 미 육군에 보고하여, 당시 미 육군 조사단이

현장에 도착하여 확인 결과 사단장 백선엽

장군이 직접 선봉에서 작전 지휘 하는 모습을

보고 허위보고를 한 장교를 처벌 하고 한국군에게 사과를 합니다. 9월 인천 상륙 작전 까지

최고 수위의 백병전을 치룬 후 전투에서 승리

후 전쟁의 양상은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후 다부동 전장는 한국군 주요 전승 기념지가 되어 현재 다부동기념관, 칠곡호국평화공원 등이 건립되어 있습니다.


백선엽 장군도 생전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한다면 다부동에 묻히고 싶다는 의사도 있었다고

합니다. 전공으로 봤을 때 당연히 국립 서울현충원에 안장 되야하지만,문재인 정부의 비협조로 대전 현충원 사병묘지에 6.25 당시 전투복을 수의로 입고 입관하여 영면에 드셨습니다.


전쟁 1년 전 육군정보국장 시절 백선엽 장군은

숙군 수사 후 사형 판결이 예상되었던 박정희를 살릴려고 합니다. 결국 박정희는 특무대장

김창룡,백선엽(만주군관학교,일본육사 동기)

배려로 이승만 대통령에 건의 후 전역 후 문관으로 육군정보국에 민간인 신분으로 일하게 

배려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당시

왜 박정희를 구명했느냐는 언론 인터뷰에

"글쎄요. 제가 그 분을 본 순간,아 ~ 그분의 

아무 말씀도 없는 모습이 저의 마음을 움직인것 같습니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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