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보고 넓게 보고 멀리 보는’ 글로벌 통찰력의 전략가 이승만! 워싱턴 공항에서 홍보자문역 올리버(R. Oliver)가 검토해준 도착 성명문도 무시하고 자기 말로 ‘미국 겁쟁이들’을 15분간이나 닦달했다. ‘중국본토 수복’을 요구한 미국 의회연설문은 올리버가 그렇게 졸랐어도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라디오 방송이 읽어주는 [뉴욕타임스](NYT) 사설을 듣자 이승만은 의미 있는 미소를 짓는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레닌의 소련 혁명후 세계를 휩쓴 ‘공산화 물결’은 미국의 최고 지성언론이라는 NYT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독립운동 때부터 잘 아는 이승만이다. NYT는 사설로 이렇게 공격했다.
「이승만 한국대통령이 미 의회에서 자유세계를 놀라게 하고,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선전의 빌미를 제공하는 불행한 연설을 했다. 그는 중공에 대한 예방전쟁과—필요하다면—소련에 대한 핵전쟁을 개시해야 한다고 촉구하였다.이대통령은 그러한 전쟁을 한국과 대만 군대, 그리고 미 해군과 공군이 연합작전을 통해서 성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유럽이나 아시아의 다른 우방국들의 지원 없이, 유엔의 도덕적인 제재를 받지 않고도 분명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한국 문제에 관한 제네바회의가 실패하였으므로 이는 정당하며, 시간이 촉박하다고도 경고했다.이대통령은 마치 한국 국민에게 감투정신을 고취하는 애국자처럼 미국인들에게 연설하였다.그는 중공이 한반도의 항구적인 분단에 책임이 있다며, 통일을 위해서는 무력 이외에 다른 방법 없더눈 확고한 신념을 피력했다. 아울러 그는 서울에서 40마일 이내의 참호에 적군이 가득차 있는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이 대통령이 말한 한반도 상황을 모두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그가 압록강까지 진격한다는 몽상적인 요구를 넘어서, 실제적으로는 핵전쟁을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연설은 불가피하게 소련이 우리를 ’전쟁광들‘이라고 비난할 빌미를 제공할 뿐 아니라, 우리 우방국들 사이에서 미국의 정책에 대한 새로운 의혹과 불확실성을 야기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평화와 ’평화적 공존’을 표방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모든 리더는 비록 유화적인 노력이 통하지 않고, 원칙이 훼손되더라도 언제나 평화를 한목소리로 말한다. 분명히 미국은 독일의 통일, 혹은 오스트리아의 자유화에 반대한다. 마찬가지로 한반도 통일을 위한 그 어떤 전쟁에도 참여하지 앓을 것이다. (중략)결국 세계대전은 미국을 고립무원의 처지로 만들고, 세계를 폐허로 만들 수 밖에 없는 전쟁에서 홀로 공산주의자들의 핵공격에 맞서게 할 것이다. 우리는 이대통령이 그러한 결과를 원하지 앓을 것으로 생각하며, 동시에 미국은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뉴욕타임스]1954.7.29.)
전형적인 좌파적 평화주의를 앞세운 미국중심주의를 대변하는 사설이었다. 이승만은 미국의 언론사들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예상대로 [뉴욕타임스]도 마나자고 했다. 7월31일 세계 최고급 호텔 월돌프 아스토리아에서 만난 NYT 기자가 이승만을 단독 인터뷰한 다음, 보도한 요지는 아래와 같다.
◆이대통령, 미국을 근시안적이라고 공격한반도 분단은 미국이 배짱이 없어서 초래되었다고 비판NYT 1954.8.1. Michael James 기자
「이승만대통령은 어제 미국의 정책이 근시안적이었기 때문에 한국군이 무력으로 통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그는 한반도 통일이야말로 한국과 아시아, 그리고 자유세계의 미래를 위해서 필수적인데도 미국인들이 이러한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하려는 배짱이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한 제네바 회의가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통일을 위한 더 이상의 외교적인 협상은 아무런 희망도 없다고 단언했다.79세의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이 남한을 침공했을 때, 한국군은 사지가 절단된 사람처럼 사실상 무력한 상태였다고 회고했다.“그때 미국은 우리가 휘발유 통과 탄약고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잠가 놓고 있었소”이 대통령은 한국군이 힘으로 통일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서, 이는 한국인이 싸울 의자가 확고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한국인들은 남쪽이든 북쪽이든 분단된 채 생존할 수 없소이다.둘중의 어느 쪽이든 한쪽이 다른 한쪽을 차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단이 초래하는 비명횡사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 한국인 중에는 그러한 상태가 계속되기를 기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6.25전쟁 중에 우리는 압록강까지 차지할 수 있었는데 허용되지 않았소이다.그 대신 무기가 아닌 협상으로 미래의 통일에 대한 약속을 받았소. 그러나 만약 미국과 유엔이 생각하는 그럴싸안 계획이 있다면 우리에게 알려주시오. 나는 그러한 계획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이승만은 미국정부가 ’항상 근시안적‘이고 미국의 제도를 파괴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인 세계공산주의의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당신네는 그러한 경고를 들었고, 당신네 아버지들도 들었으나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의 전직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공산주의자들을 모셔다가 미국 정부, 특히 국무부에 활용하도록 했소이다. 오늘날 아시아 분쟁의 중요한 원인중 하나는 루즈벨트의 이런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오”
“미국인들은 공산주의의 위협리라는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할 배짱이 없소이다. 미국은 공산주의자들에게 경고해도 너무 유순하게 합니다. 이는 당신네가 그듥에게 진심으로 경고할 마음이 없이 때문이오. 그러니 공산주의자들도 여러분의 경고가 진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겁니다.”」 (이현표 [워싱턴의 겁쟁이들] 기파랑, 2022)
▶오늘의 우리 한국독자들은 이 기사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새삼 놀라게 된다.이승만의 고발 - 6.25가 터졌을 때 미국은 한국군의 유류창고와 탄약고를 잠가놓고 있었다는 무서운 사실이다. 이승만의 반대를 뿌리치고 철군한 미국은 북한의 남침보다 한국군의 군사행동만을 일방적으로 막았다는 것, 그러고서도 “탄약을 달라, 무기를 달라”고 부르짖는 이승만의 SOS를 트루먼 대통령은 무시했다는 말이다. 한국을 모르는 미군이 황급히 달려왔지만 패배를 거듭했고, 낙동강까지 밀려가서야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한국을 살리는 돌파구를 열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이승만 대통령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을 NYT에 노골적으로 비난한 말이다.소련의 한국침략 등 아시아 전쟁의 원인 중 루즈벨트의 잘못이 가장 크다는 말, 국빈방문한 대통령이 초청국의 과거 대통령을 공식적으로 언론에게 비판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상상 못할 결례이며 도전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승만의 방미 목적중 하나인 것을 어찌하랴. 얄타밀약에서 ’한국을 소련에 팔아먹었다‘고 폭로했던 이승만은 미국이 38선을 긋고 소련을 끌어들인 행위를 역사적 배신으로 규정, 이미 작년 로버트슨에게 들이대며 한미동맹 조약을 이끌어낸 바 있다. 그런데도 이승만은 이번에 또 미국의 양심을 찌르는 무기로 쓰고 있다. 역사연구가 이승만의 학문적 양심과 정치적 원칙은 거짓을 모른다.
◆이승만 “미국은 공산주의자들에게 항복하지 말라”
이승만의 언론 플레이 중에 가장 눈에 뜨는 것은 미국 최대 시사주간지 가운데 하나인 [US News & World Report]와의 회견이다. USNWR은 이승만의 미의회 연설이 끝나자 단독 인터뷰를 요청했다. 다음날 29일 행한 이승만대통령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기사의 주요 대목을 소개한다. (소제목은 필자)
★“지유세계가 공산침략을 막는 방법을 듣기 위해 인터뷰“「자유세계가 공산주의자들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공산주의자들이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차지하고 있으니, 나머지 국가들 역시 그렇게 될 것인가?그동안 자유세계는 한반도와 인도차이나(베트남, 캄보다이, 라오스) 분쟁에 관한 협상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큰 몫을 챙겨주었다. 즉, 공산주의자들은 전쟁을 도발하고도 협상을 통해서 자기네가 선택한 땅을 차지해버렸다. 이제 남은 문제는 자유세계가 이런 방식으로 빨갱이들의 침략 야욕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이에 대한 답변을 최고의 반공 지도자에게 듣기 위해서 대한민국 이승만 대통령을 워싱턴 소재 우리 신문사 회의실로 초대하여 인터뷰를 가졌다.79세의 이승만 대통령은 남북으로 분단된 나라의 반공 지도자이며, 공산주의자들과 투쟁중이다. 그는 아시아의 반공국가 중, 병력숫자가 가장 많고 전력이 막강한 군대를 지휘하고 있다.미국의 군비지원으로 무장한 65만명의 한국군은 무력전쟁에서 실력을 검증 받았다.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조지워싱턴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각각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미국에 망명해서 33년동안 한국이 일제의 통치에서 벗어나 자유를 쟁취할 수 있도록 각국에 지원을 호소했으며, 이제는 공산통치로부터 북한을 해방시키기위해서 노력중이다, 그는 한때 감리교 선교활동을 했으며, 1948년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 되었다.
★“우방이 두려워하여 우리의 공산군 격퇴를 막고 있다“*기자 질문=대통령님, 현재 한반도 상황은 어떻습니까? 한국은 중공 북한과 전쟁 중인가요?◉이승만 대답=예, 우리는 전쟁 중입니다. 동시에 휴전 상태이기도 하지요.*문=국제법적으로 전쟁 중이라는 겁니까?◉답=예, 우리의 적이 휴전협정을 위반하며 온갖 짓을 자행하고 있습니다.*문=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지나요? 한국이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인가요?◉답=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우리 우방들이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전쟁이 자기네를 파괴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모든 문명과 인류를 파괴할까봐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전쟁을 피하려고 노력중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날 적(敵)은 우리 우방들의 그러한 약점을 알기 때문에 우리를 밀어붙이고 있으며 우리는 퇴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호하게 저항하고 싶지만, 우방들은 우리에게 말합니다.“그러지 말아요, 그러면 온 세계에 끔찍한 상황이 초래될 겁니다”이것이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방들에게 호소합니다. 확고한 태도를 견지하고, 결정적인 계획을 마련해서 최소한 3-4개월 동안 실행에 옮기자고 말입니다.이처럼 우리가 철저하게 준비하면 이를 알아차린 적은 자칫 얻어터지겠다는 두려움을 갖기 시작할 것이고, 결국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할 것입니다.*문=6.25전쟁으로 귀국의 인적 소실은?◉답=대략 200만 명은 넘을 것입니다.
★“미국이 항복하지 안할 줄 믿었는데 계속 양보만...”*문=그런데 전쟁이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란 말입니까?◉답=우리는 전쟁의 종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100만 이상의 중공군이 수도 서울에서 고작 몇십 마일 거리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북한군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우리에게 적을 물리치는 것이 허용된다면, 우리는 그들을 모두 몰아낼 수 있습니다.*문=적이 그렇게 가까이 있는데 두렵지 않습니까? 우리 미국인들은 수천마일 떨어져 있는데도 대부분 두려워합니다.◉답=우리가 두려워했다면 오래전에 항복했을 것이고, 통일되어 평화롭게 살고 있겠지요. 목숨을 빼앗기지는 않았겠지만 노예로 살고 있을 거란 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그 이유는 민주주의 원칙과 체제를 수호하는 표상이며 세계최강국인 미국이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아직 항복하지는 않았으나 계속 양보하고 퇴각만 거듭하고 있습니다.현재 중국대륙은 공산화 되었고 북한도 마찬가지죠. 중국과 북한주민들이 모두 공산화된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에게 점령당한 것입니다. 인도차이나도 현재 공산화가 진행 중입니다.
★“휴전이 적에게만 유리...그래서 현명치 못한 것”*문=귀하는 미의회 연설에서 ’현명하지 못한 휴전‘이라고 언급했는데 무슨 의미죠?◉답=휴전이 오로지 적에게만 유리하고, 우리에게는 불리하므로 ’현명치 못한 것‘입니다. 나는 조금 전에 덜레스 국무장관, 스트라센 해외작전국장, 래드포드 해군제독(합참의장)과 얘기를 나누고 왔습니다 조금 전 내가 한말을 다 했지요.휴전은 우리에게 큰 부담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큰 비용과 희생을 감당해야 할지 모릅니다. 예를 들면, 38선 남쪽에 있는 개성(開城)은 아름다운 한국의 명승지입니다. 여러분, 1,000년 전애 고려(高麗) 왕조가 그곳에 수도를 건설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이 유서깊은 도시의 북쪽에서는 송악산(松嶽山)이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이 산꼭대기로 올라와서 우리 영토인 개성 거리 행인들에게 박격포르 발사하고 총기를 난사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개성 시민들은 도시를 빠져나갔습니다.
★“우리 왕도 개성을 빼앗겼다. 그 잘난 평화 때문에...”*문=그것은 1950년 6월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얘기입니까?◉답=예, 그 때문에 개성은 사실상 텅 빈 도시가 되었지만, 공산주의자들이 그 도시에 들어오지는 못했지요. 우리 장병들이 맞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1951년 휴전 협상이 성사되자 공산주의자들은 협상장소를 물색하였는데, 우리와 유엔 대표들이 38선 이북으로 넘어가는 것을 허용치 않으려고 38선 이남의 개성이 좋겠다고 제안하였지요. 유엔 대표들은 동의했습니다.개성에서 회의를 개시한지 2,3일 후 공산주의자들은 그 도시를 점령하여 군부대 병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유엔 대표들은 매우 불안하고 위험하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미국 대표가 “개성이 실용적이지 못하다”고 하자, 공산 측은 ’판문점‘에서 회담하자고 대꾸했죠. 이후 개성보다 더 남쪽인 판문점에서 회담이 열렸습니다. 우리가 유엔 대표들에게 “군대를 동원해서 공산당을 개성 밖으로 쫓아버리겠다”고 말하면 돌아오는 답변을 항상 같았습니다. “휴전을 논의중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 그래서 우리는 꼼짝도 못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38선 이남으로 내려오는데 유엔대표들은 38선 이북으로 들어가 못했습니다.1950년 공산주의자들이 남침하여 우리를 바닷속으로 밀어넣으려 했을 때, 우리 군대는 그들에 맞서 개성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휴전회담 때문에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개성 탈환을 위한 전투를 하지 못합니다. 그 ’잘난 평화‘ 때문입니다.*문=그후에 공산주의자들이 철수 하지 않았나요?◉답=철수요? 아무도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나는 판문점의 우리 감독관으로부터 전보를 받았는데, 중립국 감시위원단을 추방할 예정이라는 내용입니다. 중립국이라지만 2명을 제외하고는 5~6명이 공산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추방하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덜레스 장관에게 우리 입장을 설명했습니다. 공산국가의 중립국감시위원들을 38선 남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입니다. 우리만 공산주의자들을 우리쪽으로 넘어올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당신네가 두려워하니 휴전은 자동종료! 내가 선포할 것“*문=우리측에서도 38선 이복의 3개 도시에는 들어갈수 있는 줄 알았는데요?◉답=그러나 들어간다고 해도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감시할 수 없단 말입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어떻게 통합 혹은 공동조치를 일사분란하게 취할 수 있겠습니까?당신네가 공산주의자들을 쫓아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으니, 우리는 휴전이 자동으로 종료되었다고 선언하려는 것입니다.*문=언제 그런 선언을 하겠다는 것인가요?◉답=바로 지금이 시작할 때입니다. 우리는 휴전을 철회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방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합니다. 보세요. 우리는 힘을 쳐서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제발 미국은 우리 국민들을 두렵게 하지 말고, 적을 두려움에 떨도록 만드는 일을 해주기 바랍니다.*문=좀 별난 착상이군요. 안 그렇습니까?◉답=나는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사례를 인류역사에서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공산주의자들이 우리를 파괴하러 오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온갖 유리한 것들을 제공해주고 있잖아요? 적들의 감정이 상할까 봐 입도 뻥긋하지 못한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문=그러면 휴전철회로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한반도 전쟁이 더 커지겠지요?◉답=내게 말들을 합니다. ”우방들이 바라는 대로 평화적으로 해결하시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 단 한 가지뿐입니다. 바로 공산주의자들에게 항복하는 것입니다.
★”영국은 소련과 협력...중립국감시단은 스파이“*문=인도차이나에서 그랬지요?◉답=맞습니다. 그리고 북한도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들에게 항복했습니다. 우리는 그러나 북한의 공산화가 무한하게 지속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문=한국과 미국의 정책이 우방들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습니까? 유럽의 우방들은 아시아의 상황변화를 바라지 않는 것 아닙니까?◉답=그들은 모두 무의식중에 소련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소련을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만일 소련이 화가 나면 언제든지 보복 당할까봐 무서워하는 것입니다.영국은 당연히 공산주의자들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이 홍콩과 싱카포르(당시 영국식민지: 필자 주)레 들이닥쳐 영국을 쫓아낼까 그러지요. 소련과 친구가 되어야한다고 느끼는 영국은 우리에게 ’목소리를 높이지 말라, 소련을 건드리지 말라‘고 합니다. 영국을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는 미국을 이해하기 힙듭니다. 도대체 왜 정전위원회 공산국 대표들이 사진을 찍고 온갖 간첩질을 하며 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두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공산당의 이런 행동을 차단하고 관리해야만 되겠습니다.그리고 휴전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1953년 7월27일 서명된 휴전협정은 효력 발행후 90일 이내에 정치회의를 열도록 규정했는데 다 지나서야 1954년 4월부터 6월까지 제네바에서 개최되었으나 결렬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모든 것이 끝났고, 휴전도 자동으로 종료되어야만 합니다.
★”미국에 충고한다. 공산주의에 항복 말라“
*문=귀하가 자동 휴전을 선언하면 미국도 종료되었다고 선언할까요?◉모르지요. 그러나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공산주의자들을 내버려두면 도대체 누가 그들을 쫓아내겠습니까? 그 때문에 우리가 그일을 하려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지 않으려면 우리에게 말해주시오, 입을 다물고 있지만 말고...*문=한국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물론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할 작정입니다. 그들을 몰아낼 힘이 충분치는 않지만, 우리는 공산당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당신네는 계속 기다리라고만 하는데, 당신네 말대로 기다리기만 하면 결과는 뻔합니다.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당신과 나, 그리고 모두 살해되고 파괴될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그들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당신네는 ”그들을 기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렇게 소심하니 이 문제가 해결될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오. 당신네 방식대로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당신네 가정, 자녀들, 가족 모두가 소련에게 항복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당신네들을 당장 죽이지는 않을 것이며 전쟁도 없겠지요. 왜냐 하면 공산주의자들은 자기네 재산이 된 것을 파괴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우리에게 말 좀 해주시오! 우리는 당신네가 어찌하려는지 알고 싶단 말이오. 만약 당신네가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싸우려 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끝납니다. 우리는 중국, 인도차이나 등등이 공산화된 후에도 미국과 영국이 자유를 누릴수 있으리라고 믿을만큼 바보가 아닙니다!우리는 홀로서라도 민주, 통일, 독립 국가 되기를 소원합니다.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이 파멸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선두에 서서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미국에게 진심으로 충고합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항복하지 마시오, 우리 한국이 항복하지 않는 것처럼!(중략)
★”미국은 핵무기를 쌓아놓고도 벌벌..”*문=새로운 전쟁에서 핵무기가 유용하다고 보십니까?◉답=나는 미국 국민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네는 핵무기를 산처럼 쌓아놓고도 감히 사용할 엄두를 못 낼 것‘이라고요.*문=왜 그렇습니까?◉답=무서워서 그렇지요.*문=귀국의 군대는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나요?◉답=우리는 핵무기를 무척 갖고 싶어 합니다.*문=귀하가 휴전종식을 선언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답=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휴전은 자기들은 총질을 할 테니 우리는 휴전조항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요구에 굴복하라는 의미입니다.*문=하지만 한국이 휴전을 끝낸다고 말해도 우방들은 휴전을 존중할 테데...◉답=그것이 바로 항복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중략)
★”유엔은 곧 미국...평화적 해결은 없다”*문=그것이 미국과 유엔의 태도로 보이나요?◉답=유엔은 미국을 의미합니다.*문=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태도는 알아보셨습니까? 그는 군인출신이니까...◉답=아이젠하워 대통령도 많은 노력을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미국 장교들은 이제 전쟁 재개를 거부한다고 말합니다. *문=그에 대한 귀하의 대답은?◉답=나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하느냐? 내가 아는 한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 우리가 힘으로 적을 쫓아내야하며 한국이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그러나 미군 장교들의 의견도 나뉘어있습니다. 일부는 우리의 생각과 같습니다. (중략)*문=당장 대만(자유중국 장제스:필자 주)이 행동을 취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으시죠?◉답=대만은 미국이 허용하면 시도를 할 겁니다. 그러나 중국본토를 공격하면 더 큰 전쟁이 날 것이라며 미국이 대만의 공격을 막고 있잖습니까.*문=그건 내전인데, 대만이 자기네 땅에서 전투할 권리도 갖지 못한다는 겁니까?◉내말이 그 말입니다.
★“나는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다”*문=그것을 막는 것이 평화공존 정책입니까?◉답=영국인은 공산주의자들과 비공산주의자들이 함께 살도록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공산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시오. 당신은 콜레라, 천연두 등 전염병과 사이좋게 살수 있다고 생각합니까?*문=귀하는 공산군이 언제 군사도발을 하리라고 예상하십니까?◉답=공산주의자들은 항상 도발합니다. 바로 며칠 전에도 미국 비행장을 폭격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그들이 내려오면 언제든 즉시 몰아낼 것입니다. 기억하실 겁니다.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유엔이 우리와 협력하지 않으면 행동을 개시해서 적을 몰아낼 것이라고 경고했었지요.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내가 그저 허세를 부리거나 안달이 난 것이라 말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전투준비를 강행하자 그들은 휘발유 통들을 모두 잠가버렸습니다.*문=누가 잠가놓았나요?◉답=통제할 권한을 가진 사람들입니다.*문=유엔입니까?◉답=미국인들이겠지요. 누구든 간에 그 후부터 그들은 우리에게 고작 3일치 탄약만 할당해 주기 시작했습니다.(중략)*문=북한 인구는 얼마나 됩니까?◉답=설명을 들어보시오. 1945년 해방 직후 북한 총인구는 약 3,00만이었습니다. 남한에는 2,000만명, 북한엔 1,000만 정도지요. 그런데 6.25전쟁 발발 전후에 북한 동포 400만명쯤이 넘어왔으니 지금 북한엔 700만명쯤 될 겁니다. 그러나 휴전회담중에도 북한에서 많이 내려왔고, 북한동포들이 “빨리 와서 구해주시오, 그러지 않으면 우린 다 살해 당한다”고 간청했습니다. 휴전이후 더 이상 그런 호소조차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문=그들이 학살되었다고 생각합니까?◉답=학살은 물론, 많은 동포가 중국으로 끌려갔을 겁니다.*문=그렇다면 북한은 지금 사실상 중공에 합병되었군요. 그렇지 않습니까?◉답=그렇습니다. 중국은 자기네 공산주의자들을 북한에 보내 정착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에는 한국여성과 중국남성의 결혼을 강제로 종용하는 일종의 법령도 있다고 합니다.
★“공산당 격퇴는 나의 의무, 그때까지 은퇴 않겠다”*문=귀하는 올해 79세입니다. 은퇴할 생각은 없습니까? ◉답=공산주의자들과의 전투가 종식되기 전에는 은퇴할 생각을 안하고 있습니다. 좋든 싫든 나는 공산주의자들과의 투쟁을 나의 의무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문=그렇군요. 귀하의 최고 희망은 한반도 통일을 보는 것인가요?◉답=그렇습니다. 통일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고, 그리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안전하게 되는 것도 보고 싶습니다. 미국인들이 민주주의를 구출하는 아주 훌륭한 방안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솔직히 걱정이 앞섭니다.내가 미국에 와서 읽어보고 체험해 보니, 현상태의 미국인들 사고방식으로는 민주주의를 구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시도때도 없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침투활동이며 그들은 항상 승리자가 되고 있습니다.*문=공산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말이지요?◉답=그렇습니다.(중략)
★“미국 국민들은 겁쟁이 정부와 다르다”*문=그렇게 보는 증거가 무엇인가요?◉답=나는 미국인들이 미몽에서 깨어나야만 한다고 믿습니다.*문=귀하는 이번에 워싱턴 당국의 경각심을 일깨웠다고 생각합니까?◉답=자, 당신에게 한마디 합니다. 이번에 미국에 와보니 미국의 남녀노소가 나를 보기위해 곳곳에서 기다렸습니다. 가는 곳마다 많은 미국인들이 악수를 나누고 싶어 하더군됴. 링컨기념관에 들렀을 때는 거기 모여있던 여성들이 서로 내 손을 쥐고 눈물을 흘리더군요. 나는 그것이 미국인들의 마음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말했지요. “여러분이 미국에 공산주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는군요.” 나는 공산주의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기를 기원합니다.*문=귀하는 미국정부보다 미국 국민들이 더욱 귀하에게 동조할 것으로 생각합니까?◉답=나는 미국 국민들이 스스로 정신을 차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너무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겁먹지 말고 계속 공산당과 싸워야하는 이유”
*문=오늘 신문에 이런 이야기가 실렸더군요. 프랑스 국민이 인도차이나 문제가 해결된데 대하여 만족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그렇지만은 않다는 겁니다.◉답=물론이지요. 대다수의 프랑스 국민은 그런 식으로 인지(印支)전쟁이 끝난 것에 불만일 것입니다. 그것을 밀어붙인 것은 극소수의 공산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입을 다물고 동조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겁쟁이들이 문제였습니다.*문=공산주의자들이 그처럼 강력하다고 생각합니까?◉답=중국의 예를 들어봅시다. 당신은 6억명의 중국인들이 모두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합니까? 아니지요. 중국인들을 괴롭히고 처형하는 공산주의자들은 그 인구에 비해 극소수입니다. 러시아도 전체 인구가 공산주의자는 아닙니다. 다수의 러시아인들은 관망하고 있으며 공산주의를 증오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공산당의 철저한 감시에 아무 말조차 하지 못합니다. 러시아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철의 장막 밖의 반공국가들이 공산국가들 맞서 싸우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지켜보며 혼자 중얼거립니다. ‘저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 지금 궐기하고 있나, 이기고는 있을까?...’ 우리가 공산주의와 맞서고 싸워야 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면 공산국 국민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고 자유를 찾기 위해 봉기할 힘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호한 태도로 철의 장막 안의 고통스런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을 하지않으면 안됩니다. 만일 그들이 분발하여 공산주의자들과 싸운다면 외부 자유국가들이 그들을 도울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행동 말입니다....」 (후략) ([President SYNGMAN RHEE’S Journey to America], 대한민국 공보처, 1955. 이현표 [워싱턴의 겁쟁이들] 기파랑, 2022)
이날 약속보다 훨씬 길게 진행된 이승만의 인터뷰는 [유에스 뉴스 & 월드 리포트]지가 8월13일자에 게재하여 이승만이 미국을 떠나던 날 공개되었다. 이 시사 주간지는 당시 진보성향 [TIME]이나 [NEWS WEEK]에 버금가는 보수성향의 중심매체로서, 반공지도자 이승만의 주장에 깊은 애정을 보이며 많은 시간을 할애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휴전협정의 백지화 문제와 미국의 역할, 아시아의 미래 및 한국군의 증강 문제 등을 다룬 인터뷰는 다음 문답으로 마무리 지어졌다.*문=이번 미국 방문에 만족하십니까?◉답=어떤 면에서는 만족합니다. 반공이라는 현안을 분명히 인식하고, 반공을 위한 올바른 행동을 지지하는 미국 친구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입니다. 한편, 우리는 불행하게도 아시아와 그밖의 지역에서 손해를 보고 있으므로 공산주의 물결을 저지할 마음의 결단을 해야만 하고, 미국과 미국 국민은 이 일을 앞장서 추진해야만 할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언론인 이승만‘의 미국 국민을 향한 ’반공‘ 계몽운동
“이승만 대통령은 마치 한국 국민에게 감투정신을 고취하는 애국자처럼 미국인에게 연설했다”이것은 [뉴욕타임스]가 사설에서 꼬집은 말이다. 역시 정확한 발견이다. 미국 정부를 비롯하여 미국회의원들은 물론, 방송을 듣는 미국국민들은 이승만에게 있어서 누구인가. 공산주의에 무지한 집단, 그 전체를 향하여 이승만은 반공교육을 행한 것이었다.구한말 종로네거리에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모아 연설로 깨우치듯이, 유학시절 한국을 모르는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듯이,영문 저서 ’JAPAN INSIDE-OUT’으로 평화론에 잠든 미국을 매질하여 참전시켰듯이, 그리고 해방후 귀국하여 삼남지방을 순회하며 남로당의 포로가 된 한국인들을 계몽하여 일거에 자유민주주의로 눈뜨게 해놓았듯이, 이승만은 역사의 고비마다 연설로 새 역사를 만들어낸다.무엇보다 그는 22세 학생 때부터 타고난 언론인이다. 일간지-주간지-월간지 들을 창간하고 제작하며 장장 50년 이상이나 말과 글로 독립운동에 몰두했던 원로언론인, 망명시절 미국 언론을 이용한 예는 확인된 것만 4천 건도 넘는다.
그가 미양원합동의회에서 중국본토 회복과 휴전 무효를 부르짖을 때, NYT를 비롯한 미국 언론에 미국과 미국민의 책임을 주장할 때, 그는 누구인가?한국대통령도 아니고 미국 대통령도 아니고 자유세계를 구원해야할 글로벌 리더를 자처한 ‘반공과 자유수호’의 선봉장, 바로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려는 십자군이다. 이것은 그가 한성감옥에서 ‘성령’ 받은 순간부터 그의 사명이 되어있음을 미국 언론인들 알 턱이 있겠는가. 앞에서 살폈듯이 미국이 볼 때 이승만은 안하무인격 ‘고집장이’ ‘독립 미치광이’ ‘통일 미치광이’란 별명을 붙인 까닭이다. 이번에도 그러한 그의 행각은 미국 방문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이승만에게 열광하는 미국인들은 구름처럼 많았다. 독실한 기독교문화인들은 그동안 중국대륙울 빼앗기고 북한을 내주고 인도차이나 공산침략을 보면서도 미국대통령으로부터 들을수 없었던 ‘기쁜 소리’를 동양의 약소국 대통령 이승만이 시원하게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마운트 버논에 한국단풍 식수...롤모델 워싱턴-링컨을 찾다
국회연설을 끝낸 그날 저녁, 이승만은 아이젠하워를 위한 만찬을 베풀었다. 국빈으로서 답례격인 만찬은 워싱턴 최고급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열렸다. 백악관 인근의 화려한 호텔은 뒷날 케네디 대통령의 불륜과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을 일으킨 곳이다. (이현표, 앞의 책)“누추해도 우리 대사관서 대접해야 마땅한데 너무 협소해서요. 오늘 하룻밤은 이 호텔이 우리 대사관입니다.” 노대통령의 능청스런 유머로 진행된 만찬은 한국 소프라노 김자경과 국악인 황재경의 공연, 전통무용이 이어지며 덕담만 만발했다.
이튿날 7월29일 아침, 이승만은 청년시절 각인된 자유독립운동의 우상이자 미국건국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을 찾아간다. 워싱턴 남쪽 24㎞ 광광지로 유명한 그의 고향 마운트 버넌(Mount Vernon)에서 묘지를 참배하고서 이승만은 감회를 털어놓는다. “내가 이곳을 처음 방문한 때는 1905년, 조지워싱턴 대학 학생이었죠. 저 포토맥 강을 지나는 배에 달빛이 비추는 것을 보면서 한국생각이 절실했습니다.”이어 기념식수로 정원에 붉은 단풍나무를 심은 이승만이 관리책임자에게 농담 아닌 농담을 던진다. “이 나무에 ‘일본 단풍’이란 푯말은 세우지 마시오. 이 단풍은 난쟁이 같은 일본종과 다는 한국단풍이라오” (이현표, 앞의 책)이 말은 아픈 기억에서 나온 말이다. 해방전 1943년 4월8일 이승만은 뉴욕의 아메리칸 대학 정원에 제주도 원산 왕벚꽃나무 4그루를 심은 적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24주년을 맞아 이승만이 조직한 한국기독교친우회, 한미협회 등 300여명이 이 대학서 기념식을 거행하고 기념식수를 했던 것, 총장 폴 더글라스(Paul Douglass)는 한미협회 멤버로 이승만과 절친이 되어 고문까지 맡았던 인물이다. 지금도 표지석이 남아있는 벚꽃나무를 심은 이유는 일본이 일찌감치 워싱턴 포트맥 강변에 일본 벚나무를 즐비하게 심어 인기를 끌었던 까닭이다. 그후 아메리칸 대학은 2010년 한국대사관(대사 한덕수)에 지원을 요청하여 그곳에 ‘한국정원’을 만들고 똑같은 제주산 왕벚꽃나무 200여 그루를 더 심어 뉴욕의 ‘벚꽃명소’로 변하였다.
29일 이날은 오후에 아이젠하워와 2차 한미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그 틈을 이용하여 이승만은 ‘만나보고 싶은 옛 친구’들을 찾아나선 길이다. 마운트 버넌을 떠난 일행은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아 헌화하고서 6.25참전 무명용사 묘지 앞에서도 묵념을 올렸다. 그리고 역시 한국산 단풍나무를 심어 영원한 추모의 기념물로 남겼다.
이승만은 청년시절 또 한명의 롤 모델이던 링컨을 만나야 한다. 공식 스케줄을 떠나 일행을 재촉하여 링컨 기념관을 찾았다. “링컨의 노예해방 자유정신은 현재 남북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며 헌화한 뒤,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어느 새 미국인들이 몰려와 박수를 쳤고, 어느 백인여인은 “당신을 위해 기도 합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당신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인들과 악수를 나누고 함께 사진도 찍고 인기스타처럼 어린이들에게 서명도 해준다. 국내외 어디 가서나 국민들과 어울림을 즐기는 이승만은 서민기질을 타고 난 정치인이다.
◆이승만 특별기고문 ‘WHY I STOOD ALONE!’
정상회담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이승만은 또 차를 세웠다. 영빈관으로 가던 길에 [워싱턴 스타] 신문사를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승만은 낯익은 사무실로 불쑥 들어선다. 독립운동시절의 동지 사무엘 카프먼 회장을 찾았으나 외출중이어서 대신 편집인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쟁중 [이브닝 스타]신문이 한국에 대해서 호의를 보내 준 격려에 진심으로 감사 합니다” 이승만이 감사를 표한 [이브닝 스타]는 [워싱턴 스타]의 석간판,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지원해주었던 동지 카프먼 회장은 한국전쟁만이 아니라 이승만의 휴전반대에도 뜨거운 지지를 보냈고, 특히 1년 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긴 논문을 특별히 실어주었다. 그것은 휴전협정 체결 3주일, 한미동맹 체결 8일후인 1953년 8월16일자 일요판 표지특별기사,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의 특별 기고문을 7면, 21면, 22면 3면에 걸쳐 독점 게재한 스카프 회장의 그 보도결정은 아무나 할 일이 아니다. 자유의 이념과 철학을 함께하는 동지애의 투지만이 가능한 일이다. 특별 기고문 내용은 한마디로 이승만이 ‘휴전을 거부한 이유’- ‘WHY I STOOD AONE!’최근 그 전문을 발굴한 송재윤 교수(캐나다 맥매스터 대학)의 번역으로 읽어보자.
Why I Stood Alone! 왜 나는 홀로 섰는가!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 서울에서--
「내 삶의 퇴조기에 나는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침략에 맞서 계속 싸워야만 했다. 그 때문에 나는 많은 비판에 휩싸였다. 휴전 협상 과정에서 최근 한국이 취한 태도와 행동을 윈스턴 처칠과 같은 저명한 정치가는 ‘반역적(treacherous)’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단호한 태도가 공산 제국주의 폭정에 맞서도록 역사의 조류를 돌리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 확신한다. 히틀러에 맞서 홀로 계속 싸우겠다는 1940년 처칠 자신의 결정이 나치즘과 검은 폭정의 종식에 이르는 출발점이 되었음과 같다.
위대한 웅변가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은 왜 한 나라가 일시적 파괴의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는 편이 투쟁을 포기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인지 전 세계를 설득할 수 있었다. 그 처칠을 두고 “자멸적(自滅的, suicidal)”이라거나 “무모하다(reckless)”고 하는 말이 나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내가 한국에서 발휘한 리더십을 두고는 이런 말들이 즐겨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내 나라 한국은 [1938년 9월 뮌헨협정을 체결하여 히틀러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서도 불과 1년 만에 침략을 당해서 항전에 나섰던] 1940년의 영국이 그러했듯, 우리 스스로 자살행위라고 확신하는 유화적 정전 협정을 수용하기보다는 계속 싸우는 편이 최선이라 믿는다. 우리의 지속적인 저항이 시간을 벌어줄 것이고, 여러 사태의 압력 아래서 붉은 세력의 망동이 벌어지게 되면, 자유 진영의 다른 국가들은 공산 중국의 괴물들을 국경 밖 그들 땅으로 몰아내는 것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공산 중국이라는 괴물이 또 다른 점령지를 뜯어 먹으면서 아시아 전체를 향한 힘과 먹성만을 키울 것이다.
“나는 결코 확신을 잃지 않았다(I Never Lost Confidence).”
나는 긴 세월 기독교 윤리와 유교 윤리를 모두 연구해 온 학자다. 이 두 철학에 뿌리박힌 격률은 미국인의 문구로 이렇게 표현된다: “옳음이 승리한다(right will prevail).” 결국 내 생애 58년 가까이 걸려서야 비로소 조선 국왕들과 일본인들의 반동적 지배로부터 남한만의 해방이라도 성취할 수 있었다. 나는 옳음이 결국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결코 잃지 않았다.종신형을 선고받고 내가 옹호하며 싸웠던 원칙들이 내가 죽은 뒤에야 실현될 듯 보이던 그 암울한 시절에도 늘 그렇게 믿었다.
우리 시대의 극동판 뮌헨협정처럼 보이는 휴전 협정을 거부한 우리 한국인의 동기에 대해 서방 세계에 너무나 심각한 오해가 있는 듯 하여 참으로 유감이다.
정전 협정 원안의 구체적 쟁점을 따져보자. 수백만 중공군이 무력으로 점령한 북한 땅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고, 우리나라 안에서 붉은 적군(敵軍)의 지속적인 불법 주둔이 종료되어야 할 시한도 전혀 휴전 협정에 명시되지 않았는데, 그 누가 진지하게 공산 침략이 격퇴되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1950년 당시 우리나라는 50만 가량의 북한 적병에 직면하고 있었다. 1953년 현재 우리가 대치하고 있는 중국과 북한의 연합 병력은 수적으로 최초 침략자들의 3배에 달한다. 새로운 공산 군대는 아시아 최초로 제트기를 가진 공군을 비롯하여 1급의 최신식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우리나라 수도 서울은 전선에서 최단 거리로 20마일 이내에 놓여 있다. 우리는 이 험악한 현실에 너무나 가까이 처해 있어서 붉은 세력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이를 진보라 부를 수가 없다. 침략자가 다시 쳐들어올 경우 미국의 자동 지원을 보장해달라는 우리의 요구가 정말 그토록 터무니없는가?
다수의 유엔군 고위 장교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38선 인근에 배치된 강력한 공산군 조직의 위협을 우려하고 있음을 나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공산 세력이 통제하는 북한 내 비행장은 남한뿐만 아니라 일본, 오키나와 등지의 미국 진지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투쟁(The Struggle)
넓은 의미에서 한국과 우방국 사이의 유감스러운 의견 차이는 공산주의 폭정과 팽창주의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최선인지에 관한 서로 다른 진단에 근거하고 있다. 현재 한국이 처해 있는 곤경은 압제에 맞서 투쟁하는 일개인으로서 직접 겪은 나의 초창기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1896년의 일이었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의회를 갖춘 입헌정부의 수립을 요구하고 조선 국왕과 일본 고문관들의 독재적 방식에 항의하고 있었다. 조선 국왕이 우리 독립운동의 지도자 17명을 체포해 간 후, 나는 계속 대중 집회를 열었다. 집회는 여러 날에 걸쳐 계속되었고, 때로는 수십만 군중이 운집하기도 했다. 독립투사들이 석방된 후에도 우리는 대중 시위를 이어갔다. 만약 우리가 해산하면 경찰이 절대로 우리의 재결집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마라톤 집회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경찰이 무력으로 집회를 해산시키려 한다는 경고를 들었다. 주변에서는 내게 집회를 그만 단념하고 몸을 숨기라고 충고했다. 그런데 정작 경찰이 나타났을 때 우리 집회의 대중은 똘똘 뭉쳐서 완강하게 저항했고, 경찰은 감히 군중을 공격할 수 없었다. 경찰은 민중의 결기를 보건대 진압을 행동에 옮기는 순간 전국적 봉기가 촉발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의 저항에 그들은 겁을 먹었다. 만약 그때 내가 흔들렸다면 나는 길을 잃고 헤매었을 것이다.
한결같은 원칙(Same Principle)
내가 늘 그렇게 운이 좋았던 건 아니다. 무자비한 통치자에 맞서는 모든 애국자가 그러하듯 나도 투옥되어 고문당하는 내 몫의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원칙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승리를 위해 위험을 무릅쓸 각오가 그대의 적만큼 충분히 되어 있지 않다면 싸움을 시작도 하지 말라. 그대는 흔들려선 안 된다. 그 어떤 종류의 편의주의도 적에게 그대의 한계점을 노출하여 더 악랄하게 나오도록 적을 부추길 뿐이다.
이것은 어떤 괴상한 오리엔탈 심리학이 아니다. 역사적 유례들을 고찰하면 국가적 태세를 명확히 정립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의 사례를 생각해 보자. 1940년 프랑스 총리 페탱(Philippe Pétain, 1856-1951) 원수(元帥)는 “빈손보다는 반쪽이라도 얻는 편이 낫다”는 판단으로 프랑스 절반을 독일 점령지로 내어주는 휴전 협정에 합의했다. 나치가 법적 재가를 얻게 되자 프랑스인의 저항 의지는 약해졌고, 무도해진 독일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 나머지 영토도 접수하고 말았다. 페탱은 이후 자기 국민에 의해 반역자로 낙인찍혔다.
한 국가를 ‘반은 노예, 반은 자유 상태(half slave, half free)’로 남겨둠으로써 빚어지는 비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기에도 여러 사례를 통해 거듭 입증되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붉은 진영과 자유 진영으로 분단하는 조치는 결국 분란만 낳았다. 왜 한국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해야 하는가? 우리는 분명히 안다. 공산주의자들의 철권통치를 맛보고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북한 주민은 오직 압제의 공포와 모욕을 몸소 맛본 자들만이 품게 되는 강렬한 열망으로 자유를 희구한다는 사실을.
최대한의 힘(Maximum Power)
한국은 3차 대전을 원하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는 공산 침략자를 국경 밖의 자기네 땅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유일한 길은 그들이 국제연합이 실제로 작동함을 깨닫게 하는 데에 있다고 확신한다. 만약 유엔이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최대한의 힘을 발휘할 각오가 되어 있음을 명백하게 한다면, 중국의 붉은 무리가 6개월 안에 코리아에서 물러갈 것이라 믿는다. 끝없는 망설임과 흔들림은 나약함의 징후이며, 붉은 세력은 결코 이를 놓치지 않고 이용해 먹을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적화 침략을 부추기고 공산 세력에 유리하게 이 세계의 세력 균형을 교란하여 3차 대전의 발발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현장에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자기 기만은 언제나 더 쉬워진다. 지난 1945년, 이미 나는 많은 욕설을 들었다. 미국이 러시아와 합의하여 38선 이북에서는 소련이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할 목적으로 코리아를 점령하기로 한 결정에 대하여 내가 강력하게 항의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정부의 관리들은 그것이 일시적인 편의상의 조치일 뿐이고 러시아가 해당 지역을 계속 장악하도록 용납할 의도는 전혀 없다고 장담하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미국의 의도는 분명 훌륭했다. 하지만 붉은 세력의 북한 장악이 “일시적으로” 허용되고 나자 미국은 그 어떤 평화적 수단으로도 그 세력을 흔들 수 없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정치적 협의를 통해 중국을 설득해서 북한에서 물러가게 할 수 있으리라고 진심으로 기대했다는 점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강성해진 오늘의 중국이 대체 왜 갑자기 북한을 떠나려 하겠는가?
물론 나 역시 나만의 이기적 야심을 채우려고 홀로 버티는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에 맞서기가 고통스러웠다. 내가 편의와 안락과 권력을 원한다면, 절반만 얻는 편이 더 간단하지 않겠는가? 내 세상이 끝난 다음에 공산주의의 홍수가 덮치기를 희망하며 더 싸우지 않고서 여생을 살다 가도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일평생을 대의에 바친 사람이 막바지에 이르러 세속적 안락을 바라고 단념할 수는 없다.
협박은 안 통한다(Threats Don’t Work)
우리에게 원조와 지지를 끊겠다고 암시하는 등 갖은 협박으로 우리를 좌우하고자 했던 서방 정치가들은 우리를 완전히 잘못 이해했음에 틀림없다. 그러한 협박은 한 국가가 자유를 지키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원대한 신념보다 일시적 유불리만 따지는 나라들에만 통할 뿐이다. 한국에 대한 유엔의 지원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우리가 치르는 비용이 붉은 세력에게 그런 우위를 점하게 하여 그들이 원할 때면 언제든지 우리를 압도할 수 있다면?
상황이 더 악화되어 한국이 혼자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면, 우리의 운명이 마침내는 선의를 가진 모든 나라들을 규합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고서 우리는 고독하게 싸워나갈 것이다. 우리는 특히 미국이 독재정권들과 공화국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 지구적 내전(global civil war)에서 우리가 아는 자유의 존속 여부가 바로 지금 여기에서 붉은 세력의 침략을 막는 데에 달려 있음을 잘 알리라고 믿는다.」 (번역: 송재윤-이동민. [조선일보]에 연재중인 송재윤의 ‘슬픈 중국-22’에서 전재)
휴전 71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냉철한 세계사적 인식론과 불굴의 자유독립정신이 온몸을 저미는 명문, 미국을 향한 칼날이다. 이승만은 홀로 섰다! ‘극동판 뮌헨협정’ 휴전협정을 깨야만 한반도 자유와 세계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음을 오직 혼자 알기 때문에 전세계를 상대로 우뚝 서서 칼을 뽑았다. 그래서 미국에 왔고, 그래서 휴전무효를 부르짖고, 그래서 중국본토 수복을 공개 요구했던 것이다. “I NEVER LOST CONFIDENCE!” 20대 청년의 자유혼은 79세 지금까지 결코 흔들린 적이 없다. 노련한 글로벌 전략가의 불굴의 신념과 용기와 종교와 같은 자유화 승리의 확신, 그 큰 그릇을 따라줄 인물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한국에 있는가? 미국에 있는가? 세계에 있는가?강대국 미국 지도층과 미국 언론을 이처럼 자유자재로 요리한 한국 대통령은 아무도 없다.
[워싱턴 스타] 신문사를 나온 이승만은 또 약속도 없는 곳을 무작정 찾아간다. 파격적인 그의 행동은 젊을 때나 대통령이 되어서나 여전하다. 프로야구단 ‘워싱턴 세네터스’(Washington Senators)의 구단주 클라크 그리피스(Clark Griffith)의 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리피스는 없고 부인만 만날 수 있었다. 망명시절 만든 한미친선단체에서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해주었던 또 한명의 동지를 이승만은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워싱턴 세네터스’는 ‘워싱턴 내셔널’과는 무관한 구단, 60년대 이후 미네소타로 텍사스로 연고지를 옮겨간다.
시간이 촉박해진 이승만은 백악관 옆 숙소 영빈관으로 차를 재촉하였다. 곧 열릴 아이크와의 2차 회담을 위한 준비에 임하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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