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ID/PW 찾기
아직 회원이 아니신가요? 회원가입 하기

[개담] 유비‧조조에 대입해본 여야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의 담론

역대 무수한 왕조가 촉한을 떠받든 까닭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후한(後漢) 말~삼국시대~진(晋)나라 초를 다룬 소설이다.

 

나관중(羅貫中‧생몰연도 서기 1330?~1400)의 연의 집필 훨씬 이전부터 삼국을 배경으로 한 창작물들은 쏟아져 나왔다. 최소 960년 건국된 송(宋)나라 때부터 많은 만담가(漫談家)들이 유비(劉備)‧조조(曹操)‧손권(孫權)‧관우(關羽) 등의 영웅담을 각색‧노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게 관우의 봉호(封號)다. 1102년 송휘종(宋徽宗)은 관우를 충혜공(忠惠公)에 봉했다.

 

관우의 작위는 시간이 갈수록 높아졌다. 첫 삼국지 화본(話本)인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가 발간된 원(元)나라 조정은 1331년 안영제왕(安英濟王)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1578년 명신종(明神宗)은 관우를 협천호국충의대제(協天護國忠義大帝) 즉 ‘황제’로 임명했다. 1857년 청문종(淸文宗)은 관우를 관성제군(關聖帝君) 즉 ‘신(神)’으로 떠받들었다.

 

최소 1천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동아시아인들을 사로잡은 삼국의 전설. 그 중에서도 유독 많은 사랑을 받은 나라는 관우의 사례에서 보듯 촉한(蜀漢)이다. 가장 큰 이유는 구성원들의 연의 기준 뚜렷한 ‘캐릭터’와 ‘동질감’이었다.

 

유비를 보자. 그는 우선 ‘돗자리꾼’ 출신이다. 관우는 코흘리개 학동(學童)들 가르치는 훈장(訓長), 장비(張飛)는 백정 출신이다. 동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이웃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 같이 개성적이고 비범한 색채를 갖추고 있다.

 

유비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임에도 황족(皇族)임을 잊지 않고 피폐한 나라를 재건할 웅지(雄志)를 품는다. 또 도적‧역적에 맞서 힘없는 백성을 지키고 백성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것을 의무로 여긴다. 관우는 아이‧여성 등 약자(弱子)를 어여삐 여기지만 가렴주구(苛斂誅求)의 강자(強者)에겐 가차 없다. 장비는 말 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스타일이지만 유비‧관우처럼 신용을 생명처럼 여기고서 장판파(長坂坡)를 막아선다.

 

나머지 촉한 식구들도 마찬가지다. 제갈량(諸葛亮)은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인재였으나 융중(隆中)에서 밭 갈며 은거한다. 그러다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에 이끌려 세상으로 나아가자 자신을 알아준 이의 뜻을 승계해 고군분투하다 오장원(五丈原)의 별로 진다. 미남의 대명사 격인 조자룡(趙子龍)도 주군의 은혜를 갚기 위해 적진 백만대군 속에 뛰어들어 젖먹이 아두(阿斗)를 구해낸다.

 

한마디로 촉한은 친근감과 통쾌함이 들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고, 멋있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촉한을 지지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촉한의 안티테제 격인 조위(曹魏)를 연의 기준으로 보자. 우두머리 조조(曹操)는 천만금을 가진 환관 집안 출신이다. 청년 시절 유비가 돗자리 짜서 노모(老母)를 봉양할 때 조조는 원소(袁紹)‧원술(袁術) 등 부잣집 도련님들과 어울리며 방탕하게 놀았다. 심지어 시집가는 처녀를 겁탈하자고 모의했다가 실패하기도 한다.

 

조조는 서주(徐州)에선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해 피로 하천이 흐르게 만들고 불쌍한 청년황제에게 기군망상(欺君罔上)하기 일쑤다. 제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는 것을 대수롭잖게 여기는 등 신용도도 ‘제로’다. 겸손이라곤 쌈 싸먹고 제 욕심만 챙기며 백성을 벌레 여기듯 한다. 간혹 백성을 챙겨도 철저히 계산적이고 위선적이다.

 

조조의 오른팔이자 행동대장인 하후돈(夏侯惇)은 조조를 위해 갖은 악행을 저지르는 거구(巨軀)의 애꾸눈 악당이다. 경호실장 허저(許褚)‧전위(典韋)는 가진 건 힘밖에 없는 ‘근육돼지’ ‘조폭 1‧2’이다. 대장 서황(徐晃)은 거대한 외날도끼나 휘두르는 도끼살인마다.

 

곽가(郭嘉)‧정욱(程昱)‧화흠(華歆) 등 조조의 브레인들도 주인의 악행에 제동 거는 대신 권력에 야합(野合)한다. 기껏 하나 있는 올바른 정신머리의 순욱(荀彧)은 뒤늦게 “조조가 저런 인간인 줄 몰랐다!” 따위의 소리나 하다가 앙심 품은 조조로부터 빈 찬합 받고 자결이나 하는 한심한 위인이다.

 

한마디로 조위는 친근함도 정의도 신뢰도 멋있음도 감동도 드라마도 뭣도 없는,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하고 증오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악(惡)의 축이다. 실제로 송대에는 삼국지 연극에서 조조 역할을 하던 배우가 실감나는 메소드연기 끝에 성난 관중들에게 다구리 맞아 죽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자, 이제 2024년 대한민국 여야에 촉한‧조위를 대입해보자. 답은 나올 것이다.

 

22대 총선에서 낙선한 한 수도권 후보의 얘기가 필자 뇌리를 맴돈다. “우리 당 찍는 건 멋없어 보인다는 (유권자들) 말에 가슴 아팠다” 삼국시대 이래 역대 왕조(王朝)들이 할 일 없어서 관우를 제왕‧신으로 떠받듦으로써 민심(民心)을 도모한 게 아니다. 역대 왕조들이 심심풀이로 유관장(劉關張)‧제갈량 사당을 지극정성 관리한 게 아니다. 위기의 정당은 이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20000.png.jpg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댓글
0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