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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일하는 척’ 안 하게 만드는 방법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 담은 담론

숫사자가 끝내 일하게 하는 암사자들 비법

 

지난해 경남 김해의 한 동물원에서 열악한 환경 속에 8년 동안 혼자 살던 ‘갈비사자’가 발견된 바 있다. 다행히 이 숫사자는 청주동물원에 이송돼 목숨을 건지고 짝도 만났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사자란 동물이 한 때 장안의 화제가 됐다.

 

사자 특히 숫사자는 흔히 ‘백수의 왕(百獸之王)’으로 꼽힌다. 숫사자는 꼬리 포함해 전체 길이가 2.5~3.0m가량이며 체중은 최대 250㎏ 안팎에 달한다. 반면 암사자는 2.3~2.6m가량에 170㎏ 정도다. 숫사자의 끓어오르는 포효는 수㎞ 밖에서도 들릴 정도이며 근골(筋骨)로 뭉친 앞발은 일격에 상대를 쓰러뜨린다. 위엄 넘치는 숫사자의 갈기는 고래(古來)로 제왕(帝王)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숫사자의 삶은 시작부터 시련이다. 숫사자는 청소년기가 되면 예외 없이 친부(親父)에 의해 프라이드(pride‧사자무리)에서 쫓겨난다. 아버지 숫사자는 아들들에게서 2차 성징(性徵)이 시작되면 그 때부터 자식이 아닌 경쟁자로 간주한다. 프라이드에는 우두머리 숫사자 하나와 암사자들만 남는다.

 

젊은 숫사자들은 각자 홀로 사바나(savanna)를 배회하면서 때로는 배 굶고 때로는 이종(異種) 맹수들에게 쫓기며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단독사냥 성공률은 10~20%에 불과하다. 이종 사냥꾼 중 최대 위협은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이다.

 

동아프리카 케냐‧탄자니아 초원지대에 분포해 사는 마사이족(maasai)은 ‘라이언 킬러’로 유명하다. 이들이 다가오면 사자들은 먹던 먹이도 포기한 채 달아난다. 2005년에는 마사이족 일부가 사자 무리를 덮쳐 30여 마리를 학살하거나 중경상 입히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케냐 정부가 동물보호를 이유로 원주민 강제이주에 착수하자 분노한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무튼 마침내 새로운 프라이드를 발견하면 떠돌이 숫사자는 우두머리 숫사자에게 도전장 던진다. 이들의 싸움은 말 그대로 사생결단(死生決斷)이다. 패자(敗者)는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은 채 떠돌다 쓰러져 하이에나 등의 먹잇감이 된다. 야생에서의 중상은 곧 죽음으로 직결된다. 승자는 프라이드의 새로운 패왕(霸王)으로 군림한다. 기존 우두머리 숫사자의 핏줄을 이어받은 어린 숫사자들은 모두 죽임 당한다.

 

그런데 충격. 무리를 차지한 숫사자의 하루 일과는 대부분 ‘안방 지키기’다. 체중 최대 1t의 물소 등에 매달리고 흉악스런 창뿔의 가젤 떼를 뒤쫓는 목숨 건 사냥은 오로지 암사자들의 몫이다. 그런 주제에 힘들게 잡아 끌고 온 사냥물에는 숫사자가 제일 먼저 입 댄다. 그 사이에 암사자들은 입맛만 다시고 있어야 한다. ‘백수의 왕’과는 전혀 거리가 먼, 속된 말로 기둥서방도 이런 기둥서방이 없는 게 숫사자의 행태다.

 

그렇다면 숫사자는 겉으로 보이는 대로 정말로 “내가 이렇게 ‘일하는 척’ 하고 있으니 내 말 잘 듣고 나를 지지하라” 힘없는 암사자들 그루밍(grooming)해서 등이나 쳐 먹는 존재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2010년 8월 서울동물원 관계자의 국민일보 기고 칼럼에 의하면 규방(閨房)에서 뒹굴거리며 편히 쉬는 것 같은 숫사자는 실은 제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

 

야생에는 무수한 위협이 존재한다. 연약한 아기사자들을 한 끼 식사로 여기고서 침 흘리는 치타‧하이에나 등은 물론 사자 떼에 자식을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거대 초식동물들도 사자 둥지를 유심히 지켜본다.

 

상술한 아프리카물소처럼 거대 초식동물들의 체구는 상상 초월이다. 외견상 순둥이도 그런 순둥이가 없는 기린마저도 키가 수m에 체중은 1t을 훌쩍 넘는다. 2015년 11월 ‘애니멀 TV’란 해외 유튜브 채널에 오른 영상에는 새끼를 사자에게 잃고 눈 돌아간 기린 하나가 암사자 떼를 덮쳐 미처 못 달아난 한 마리를 말 그대로 납작하게 압사(壓死)시켜버리는 장면이 담겨 있다. 치타 등의 치악력(齒握力)도 암사자로서는 감당하기 어렵다.

 

숫사자의 근력‧치악력이 있어야 사자 떼는 그나마 이들 침략자에게 맞설 수 있다. 숫사자의 갈기도 이러한 위험천만한 싸움에서 최대 급소인 목덜미를 보호하기 위한 갑옷 개념으로 진화‧탄생했다고 한다.

 

숫사자는 무리의 안전뿐만 아니라 대(代)도 책임져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숫사자 없이는 번식도 불가능하다. 숫사자는 교미 시기가 되면 무려 수십 마리에 달하는 암사자를 혼자 상대해야 한다. 자연히 숫사자는 초주검이 되지만 암사자들은 기어이 ‘일하게’ 만든다. 2020년 7월 X(옛 트위터) 등 SNS 해외계정들에는 민망하게도 암사자 하나가 울상 지으며 달아나는 숫사자의 음낭을 물고 늘어지는 사진이 오르기도 했다. 아마도 해당 숫사자는 정신이 번쩍 들어 ‘열일’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숫사자가 정말로 제 의무를 다하지 않고 ‘일하는 척’만 한다면 그 개체는 그 날로 무리에서 열외된다. 강력한 숫사자가 새롭게 도전해오더라도 암사자들은 방관만 한다. 심지어 암사자들이 직무태만 숫사자를 엄벌(嚴罰)하는 사례도 보고된다. 2018년 10월 영국 BBC뉴스 코리아 보도에 의하면 미국 인디애나주(州) 인디애나폴리스 동물원에서는 암사자 하나가 8년 동안 동거하며 2세까지 낳은 숫사자를 물어 죽이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습한 뒤 숫사자의 목을 문 암사자는 짝의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송곳니를 뽑지 않았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책임 있는 인사’가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자신의 출마지에서 거리인사를 마친 뒤 차량에 올라 “일하는 척 했네. 아이고 허리야. 허리 너무 아파”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하는 척 했네’가 자기 스스로를 낮추기 위한 해당 인사의 습관적 말버릇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일하는 척’ 한 점을 자인(自認)한 것일 수도 있다.

 

만약 후자(後者)가 맞다면 해당 인사가 책임 있는 지위에 있고 향후 이 나라를 이끌어가려 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보통 문제가 아니다. 현명한 우리 국민이 문제의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지, 암사자에 버금가는 어떤 충격요법으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하고 철퇴를 가할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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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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