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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료 라이라이! 손권을 물리쳤다!”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 담은 담론

‘7천으로 10만 격파’ 가능케 한 원동력은

 

장료(張遼‧생몰연도 서기 169~222)‧악진(樂進‧?~218)‧이전(李典‧174~209)은 후한(後漢) 말~위(魏)나라 초기 조조(曹操) 휘하에서 활약한 무장들이다.

 

악진‧이전은 반동탁연합군(反董卓聯合軍) 거병 시절부터 오랜 기간 조조를 따른 개국공신이다. 악진은 체격이 작았으나 담력 있기로 소문났다. 이전은 문무겸비(文武兼備)의 인물로 이름 떨쳤다.

 

반면 장료는 원래 병주자사(幷州刺史) 정원(丁原)을 따른 항장(降將) 출신이었다. 장료는 자의반타의반 정원→동탁→여포(呂布) 순으로 주인을 바꾸다가 조조를 섬겼다. 그러나 일부 소수 사례를 빼고 기본적으로 능력본위(能力本位)를 중시한 조조는 장료를 악진‧이전보다 더 높게 쳤다.

 

실제로도 장료는 조조 진영의 사실상의 원톱 장수였다. 그는 대오(對吳) 및 기타 전선 모두에서 지형을 가리지 않고 싸워 이긴 조조 측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인품도 뛰어났던 듯 관우(關羽)를 벗으로 두기도 했다. 근골(筋骨)로 뭉친 두 팔 외에 춘추(春秋)의 의기로도 무장했던 관우는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을 증오하면서 아무하고나 교류하지 않았다.

 

조조는 그러한 장료를 대오 최전선인 합비(合肥) 주둔군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그리고 악진‧이전을 부장으로 붙여줬다. 장료의 능력이 아무리 신출귀몰하다고 한들 ‘친조계(친 조조) 핵심’임을 자부했던 악진‧이전으로서는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자신들보다 더 주인에게 총애 받거나 때로는 조조에게 직언도 서슴지 않는 장료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결국 사달은 터지고 말았다. 215년 동오(東吳)의 맹주 손권(孫權)은 여몽(呂蒙)‧감녕(甘寧) 등 쟁쟁한 명장들 및 10만 대군을 이끌고 합비를 들이쳤다. 이 때 합비 주둔군은 여기저기 차출돼 남은 병력이 불과 ‘7천’이었다.

 

합비를 빼앗기면 중원도 속절없이 무너질 터였다. 중앙은 장료를 급히 비상대책위원장 격에 임명하고 계책을 내렸다. “장료‧이전은 나가 싸우고 악진은 성을 지켜라”는 게 지침의 내용이었다. 이는 동오의 병마(兵馬)가 한 곳에 집결하기 전에 쳐서 깨뜨려 그 기세를 꺾으라는 뜻이었다.

 

장료는 당의 명령을 받들어 말(馬) 등에 앉아 “나를 따르라” 외쳤으나 심사가 꼬인 악진‧이전은 크게 반발했다. 악진 등은 “적이 저렇게 많은데 나가 싸우는 건 죽으라는 뜻이다”는 걸 구실로 의자에 엉덩이 딱 붙인 채 꿈쩍도 안 했다. 자연히 악진‧이전의 지휘를 받는 군사들도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적군이 몰려와 압살당하기 직전임에도 제 권세만 챙기는 악진‧이전에게 장료는 울화통이 터져버렸다. 장료는 “오냐, 알았다. 이 장료 혼자 나가 손권과 결판을 내겠다!” 일갈하며 정말로 달려 나가려 했다.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악진‧이전은 마음을 고쳐먹고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자세로 나왔다. 둘은 “우리가 어찌 사사로운 감정으로 대사(大事)를 그르치겠소. 마땅히 장군을 따르겠소” 다짐했다.

 

모두가 힘을 합치자 병력의 압도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실로 어마어마한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가 발생했다. 장료는 8백 결사대를 뽑아 고기와 술‧밥을 배불리 먹인 뒤 새벽 동 틀 무렵 천지가 울리는 함성과 함께 성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장료와 그 동료들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손수 적장 두 명과 수십 적병을 베어 죽인 장료는 손권의 대장기(大將旗) 아래까지 밀고 들어갔다.

 

장료가 손권의 얼굴 생김새를 몰랐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그 때 벌써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는 붕괴되고 소설 삼국지(三國志)는 등장하지 못할 뻔했다. 한 싸움에서 크게 이기고 적을 물리친 장료는 항복한 동오의 장수들에게 “아까 보니 내 근처에 자줏빛 수염을 가진 자가 있던데 누구냐?” 물었다. 항장들은 “그건 손회계(孫會稽‧손권)였습니다” 답했다.

 

이후 동오에서는 “료래료래(遼来遼来‧장료가 온다)” 또는 “료라이라이(遼来来‧이하동문‧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기준 표현)”라는 말만 들리면 울던 젖먹이도 울음을 뚝 그쳤다. 비록 유명세 떨친 건 장료 하나였으나 악진‧이전 모두 선당후사의 공을 인정받아 후하게 큰 상을 받았다. 악진은 위후(威侯)의 시호를, 이전은 민후(愍侯)의 시호를 얻었다.

 

정치권에서 위성정당 비례순번을 두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모 정당 인사는 대놓고 “당대표가 월권(越權)을 한다” 비방‧주장하기도 했다.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제 밥그릇만 챙기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에서 일주일 사이에 지지율이 15%p나 폭락하는 등 정당 명운이 여리박빙(如履薄氷)‧누란지위(累卵之危)인데도 말이다.

 

해당 인사와 혹 있을지 모를 배후에게 애당심(愛黨心)이 개미 소변만큼이라도 있다면 당장 공멸(共滅)의 굿판을 걷어치워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무너지기 일보직전의 집부터 바로 세워 식구들 모두를 살리고 보는 악진‧이전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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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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