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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들은 왜, 100만 영화 <건국전쟁>에 평을 하지 않는가

뉴데일리

[편집자 주]김덕영 감독의 다큐영화 <건국전쟁>이 100만 관객을 돌파, 영화계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감독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노무현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기록한 185만명 관람기록을 넘어 200만 고지를 돌파하고 싶다고 했습니다.그러나 좌파가 장악한 영화판, 그 중에서도 영화평론가 집단은 영화평을 아예 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듯, [침묵과 외면] 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김덕영 감독이 이런 현상을 강하게 비판한 글입니다.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그대로 가져와 전재합니다.본문 외에 모든 제목들은 편집자가 추가했습니다.≈==============================

● <건국전쟁>, 건강한 토론 문화의 정착을 기원하며···

2016년 광화문에서 살았다. 다큐멘터리 영화계에 은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겠지만, 수십 년 동안 쉼 없이 달려왔던 제작 현장에서 벗어나 조용히 책을 쓰고 사람들과 토론을 하면서 인생을 즐기려고 마음 먹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반드시 마음 먹은 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닌 법이다. 그 시기는 공교롭게도 광화문에서 촛불시위가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했다. 창문을 닫고 있어도 매일같이 커다란 확성기를 통해 귀를 찢는 듯한 선동적인 구호가 들려왔다. 그렇게 촛불 시위는 나라를 온통 뒤집어 놓았다. 대통령을 누군가 조종하고 있고, 여성 대통령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는 괴담들이 연일 쏟아져 나왔다.

​돌이켜 보면 테블릿 피시 하나 때문에 나라가 뒤집힌 꼴이다. 실제로는 2014년에 일어났던 세월호 사고에 정부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국민들을 저주의 굿판으로 몰고갔다. 차분하게 지금 시점에서 그 시기를 돌이켜 보면 모든 사람이 무엇이 홀린 듯이 세상을 살았던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는 곳이 광화문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출퇴근길, 촛불로 뒤덮인 광장을 지나쳐야 했다. 기억에도 생생한 일이지만, 그때 내가 본 것은 국민의 눈을 속이고 분노로 선동하는 세력들의 존재였다. 그들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땅에 살면서 대통령의 형상을 만들어 효수를 하는 장면은 그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촛불 현장의 구호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세월호 사고가 났는데 대통령이 머리를 했다'는 소리부터 시작해서 '청와대에서 굿을 하고 있었다', '정모라는 남자와 모처에서 밀회를 즐기느라 구조가 늦어졌다'느니 하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소문들이 광장 곳곳에 울려퍼졌다.

​■ 조작선동은 순간, 뒤집는 데는 6년

그때였다. 다시 다큐멘터리 영화계로 컴백을 결심한 순간이. 마치 풀린 신발끈을 두 손으로 다시 질끈 동여메는 심정으로 카메라 가방을 꺼내고 영화계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큐멘터리 영화계로 돌아와 만든 것이 <김일성의 아이들>이었고, 지금 <건국전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적어도 모든 활동의 시작은 거짓에 맞서 진실을 알려야 된다는 작은 사명감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나에겐 진실을 알리는 투쟁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100만 명 이상이 보는 영화 <건국전쟁>으로 이어진 셈이다.

​누군가를 근거 없는 이야기로 모함하고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나치의 선전상으로 자부했던 괴벨스조차 인정했지만, 거짓을 뒤집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몇 십 배, 몇 백 배의 힘이 든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 누군가와 밀회를 즐기다 세월호 사고 대처가 늦어졌다' 는 거짓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충분하지만, 사실과 진실을 통해 그걸 뒤집기 위해서는 무려 6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우리의 현실을 봐도 너무 잘 알 수 있다.

■ 오로지 사실을 위해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의 의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돈을 벌기 위한 목적, 이름을 날리기 위한 목적,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전파하고 싶은 욕망까지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분열의 프로파간다가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적어도 영화 <건국전쟁>은 목적이 단지 개인의 이기적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거대한 거짓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사실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기를 희망했다. 그 중심에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이승만이라는 위대한 존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승만의 부활은 곧 거대한 거짓 이데올로기의 극복을 의미했다. 그건 사실이라는 돌멩이 하나 들고 거짓과 맞짱이라도 떠보겠다는 심정과도 같은 것이었다.

​● '대한민국 영화평론가들은 <건국전쟁> 사보타지, 태업 중?'

​2월 1일 영화 <건국전쟁>이 개봉된 이후 지금까지 한 달이 넘었지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대한민국의 영화평론가들 중에 <건국전쟁>을 봤다는 이가 없다. 영화를 보고 좋든 싫든, 비난을 하든 칭찬을 하든, 뭐라고 한 줄 글이라도 쓰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감독 입장에선 수많은 영화에 달리는 그 흔한 '한 줄 평'이라는 것도 이젠 부러울 정도다.

​<건국전쟁>이 나온 뒤에 무슨 서로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영화평론가들이 단 한 줄의 영화평도 쓰지 않는 이 괴이한 현상을 뭐라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정상적인 한 나라의 영화평론가들이 해야 할 일인가. 그게 그저 개인의 자유이고 선택의 문제로만 보이는가.

■ 평론은 그저 진영논리 홍보수단인가

사회에서 '평론'의 역할은 무엇이고, '평론'은 왜 필요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 영국의 정치가 처칠은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상징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훗날 화가로 유명세를 날렸던 윈스턴 처칠이었기에 그 말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나는 한 번도 달걀을 낳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달걀이 상한 것인지 싱싱한 것인지 가려낼 수 있다."

​이 말은 미술계에서 평론가는 반드시 화가여야 한다는 주장에 반기를 들면서 한 말이다. 직업적 평론가 이전에 상식과 풍부한 경험을 지닌 이성적 인간의 존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상한 달걀과 싱싱한 달걀을 먼저 입으로 먹어보고 그걸 통해 '이것이 먹을 수 있는 달걀이다'라고 먼저 외칠 수 있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평론이 필요한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달걀을 먹어 보지도 않거나, 아예 모두가 눈을 돌려 외면하는 것, 지금 <건국전쟁>을 둘러싼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영화평론가들의 사보타지를 단지 개인의 선택이나 자유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0만 명 이상이 먹은 달걀, 그 달걀은 상하지 않았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03/10/20240310000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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