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을 담은 담론
‘야폭’ 지지할 유권자 없어… 상식공천해야
동서고금 막론하고 음서(蔭敍) 즉 부모찬스에 의한 낙하산 인사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해당 인물이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폭주족이나 즐기고 풍기문란(風紀紊亂)한 야설이나 쓰는 한량(閑良) 출신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러한 사람에게 큰 벼슬을 주는 집단은 반드시 화를 면치 못하며, 평생 놀고먹다가 갑자기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당사자도 패가망신하기 일쑤다.
하후무(夏侯楙‧생몰연도 ?~?)는 정사삼국지(正史三國志) 및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부모찬스 벼락출세 문제아다.
하후무의 아비는 훗날 위(魏)나라 대장군에까지 오르는 하후돈(夏侯惇)이다. 하후돈은 화살에 맞은 한쪽 안구를 꺼내 “이 눈알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 포효하며 씹어 먹었다는 각색으로 유명하다. 허나 그도 실은 혈연(血緣)에 의해 요직을 꿰찬 낙하산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조조(曹操)는 환관 조등(曹騰) 집안에 입적(入籍)되기 전까지는 원래 하후씨였다.
정사에서의 하후돈은 용맹함과는 거리가 매우 멀었다. 하후돈은 이른바 애꾸가 된 자신의 모습을 호탕하게 자랑하기는커녕 거울을 볼 때마다 화를 내며 집어던질 정도로 ‘미모’를 중시했다. 전장(戰場)에서의 공적은 없다시피 해서 조조가 출정할 때마다 거의 늘 열외 돼 안방만 지켰다.
실전 경험이 두어 번 있었지만 예외 없이 패하거나 요행수로 이겼다. 실례로 서기 202년 유비(劉備)가 유표(劉表)의 명으로 북진(北進)하자 하후돈은 모처럼 대장에 임명돼 군사를 끌고 출진했다. 그러나 부장 이전(李典)의 경고를 무시하고서 퇴각하는 유비를 추격했다가 매복에 걸려 황천길 문턱까지 갔다.
215년에는 한중(漢中)에 고립된 병사들을 수습하러 허저(許褚)와 함께 출정했다. 지도도 제대로 못 읽어서 어리버리하던 하후돈은 그만 야영 중이던 장로(張魯) 측 대군 사이로 들어갔다. 알아서 포위섬멸 당하러 간 꼴이었지만 놀란 적군이 달아남에 따라 정말 ‘운빨’로 임무에 성공했다.
이전부터 하후돈의 군재(軍才)를 의심하던 조조는 이후에는 일절 그를 전선(戰線)에 내보내지 않았다. 하후돈은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가 위왕(魏王)에 오를 때까지 잘 살다가 집에서 편안히 눈감았다. 명색이 장수라면 “전장에서 싸우다 영예롭게 죽어 말(馬)가죽에 시신이 싸여 돌아오는 게” 미덕이던 시대였는데 말이다.
그런 아비를 둔 하후무는 더더욱 한심한 종자였다. 하후돈은 위나라 창업공신(創業功臣)으로서 조조를 따라 구르는 척이라도 했지 전형적 ‘금수저’였던 하후무는 그딴 것도 없었다.
하후무의 안하무인(眼下無人) 성품을 보여주는 정사 기록은 다음과 같다. “하후무는 무략(武略)이 없고 치생(治生‧경제활동 즉 부정축재)을 좋아했다. 기첩(伎妾‧기생과 첩)을 여럿 두어서 (아내인) 청하공주(淸河公主)와의 관계도 험악했다”
즉 하후무는 무능한 주제에 ‘여색(女色)’만 밝히는 호색한이었던 셈이다. 색정(色情)에는 부(富)의 과시가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붙기에 하후무가 초호화 기마(騎馬)사냥 즉 ‘폭주 레이싱’을 즐겨했을 가능성도 100%에 수렴한다. 현대의 비슷한 사례로는 ‘야타족(부모가 선물한 고급승용차 타고서 신호‧안전 모조리 무시한 채 내달리며 마음에 드는 길거리 여성을 헌팅하던 부류)’이 있다.
그런 주제에 하후무는 스스로를 사회적 리더로 착각하고서 ‘자뻑’했다. 그에게는 하후자장(夏侯子臧)‧하후자강(夏侯子江) 등 그와 똑 닮은 동생들이 있었다. 뭐 묻은 견이 뭐 나무란다고 하후무는 두 아우에게 “감히 낙양 한복판에서 마차 드리프트나 하고 야시시한 문학이나 퍼뜨리다니 이런 상놈들” 꾸짖었다. 앙심 품은 동생들은 친형을 ‘탄핵’했다. 조비의 아들 조예(曹叡)는 기다렸다는 듯 하후무를 참하려 했다.
이러한 총체적 난국의 하후무에게 부마(駙馬‧임금의 사위) 자리 및 관중(關中) 지역구 수성이라는 중임(重任)이 주어졌으니 사달은 불 보듯 뻔했다.
연의에 의하면 촉한(蜀漢)이 관중을 뺏으러 오자 하후무는 “육도삼략(六韜三略)에 통달한 이 몸이 대적하겠다” 나섰다. 폭주장군‧야설장군의 이 기막힌 작태에 기겁한 노신(老臣) 왕랑(王朗) 등은 급히 제지했다. 그러자 하후무는 “감히 이 몸을 막아 종묘사직(宗廟社稷)을 위태롭게 하다니. 지금 제갈량(諸葛亮)과 내통이라도 하는 것이오?!” 멱살 잡았다.
하후무는 기어이 안서장군(安西將軍)에 임명돼 관중에 출마했다. 촉장(蜀將) 위연(魏延)은 제갈량에게 “저 야폭장군은 고생이라곤 모르고 자라 머리가 텅 비었고 입만 살았습니다. 제게 소수 정병(精兵)을 주시면 자오곡(子午谷)을 돌아 단숨에 장안(長安)을 취하겠습니다” 호언했다.
하후무는 제갈량의 간단한 공격 앞에 일격에 박살나 강족(羌族)의 땅으로 달아난 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관중을 넘어 관서(關西) 백성들까지도 쌍수 들어 제갈량을 맞았다. 하후무가 출마하기 전까지만 해도 철통 같이 사수되던 ‘양지’ 관중에는 일거에 촉한의 깃발이 나부끼게 됐다. 관중을 빼앗긴 위나라는 수도 낙양(洛陽)까지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국민의힘에서 연일 단수공천 명단이 발표되고 있다. ‘양지’ 부산‧울산‧경남(PK) 공천심사 결과도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정치권 눈길은 부산 모처로 쏠리고 있다. 이곳에 도전장 내민 A씨가 컷오프(공천배제)될지, 경선을 치르게 될지, ‘백’ 업고 본선에 직행할지 여부가 최대 궁금사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갑자기 승승장구하기 이전까지 대체 뭘 하고 살았는지 모를 A씨는 ‘엄카(엄마카드)‧낙하산‧폭주족‧야설’ 등 총체적 난국의 의혹을 사고 있다. 그로 인해 양지 수성 여부에 의문을 표하는 시선은 물론 A씨가 단수공천될 시 전체 총선 판도에도 악영향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영남에서 최대 규모 컷오프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고한 상태다. 유권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듣자 하니 야권은 ‘야폭장군’ 본선 직행을 크게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당이 정말로 ‘시스템 공천’ ‘국민 눈높이 공천’을 한다면 현대판 하후무는 잘라내야 맞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A씨와 같은 부류가 아닌 이상 누구도 엄카‧낙하산‧폭주족‧야설 의혹에 열광하고 지지할 사람은 없다.
유권자는 그들과 호흡할 대표자를 원한다. 이건 상식(common sense)이다. 상식공천을 하자.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사실이라면 당연히 컷오프해야죠 그런데 한동훈이나 공천관리위원회에서 그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인가요?
오늘 공관위 발표 보니 A씨가 단수공천은 못 받았더군요. 그렇다고 컷오프되지도 않았고요. 경선 결과를 지켜봐야 할 듯 싶습니다. 의혹도 그 수위가 있지 폭주족에 야설이라니.. 골 때립니다 정말. 그러고도 버젓이 출마하다니 부산시민들을 바보로 아는 것도 아니고.
한나라당 때까지가 인재영입 잘했다고 생각. 새누리당 때부터 뭔가 맛이 가도 너무 한참 가게된듯.
야권 일각에선 A씨가 만약 본선에 진출하면 선거 때까지 주구장창 의혹의 영상, 글들만 스크린에 틀어놔도 전국적으로 상당한 효과를 거둘 거라는 계획이 나오는 줄 압니다. 이게 무슨 참... 쪽팔려서 얼굴도 못 들겠습니다. 그래도 굳이 아주 미친 척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모르지요. 상대 당의 뭘 찢는다는 사람의 훌륭한 맞수가 될 수 있을지도요. 나라망신은 차치하고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