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 사마소 믿었다가 홀로 단두대 오른 성제
피의자, 배후설 사실이라면 고백해 광명 찾길
성제(成濟)는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무장이자 ‘황제 테러범’이다. 역신(逆臣)의 주구(走狗)가 돼 천자(天子)를 시해하고서 출세의 꿈에 부풀었으나 깔끔히 토사구팽(兔死狗烹) 당한 한심한 인물이다.
성제가 활동하던 무렵 위나라 조정은 마치 오늘날의 여야처럼 조씨(曹氏)와 사마씨(司馬氏)가 대립하고 있었다. 힘은 황가(皇家)인 조씨보다 역성혁명파(易姓革命派)인 사마씨가 더 컸다. 때문에 황제 조모(曹髦)는 조씨 천하를 되찾고자 서기 260년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다.
여소야대 형국이니 조모가 그러모을 수 있는 병력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조모는 굴하지 않고 친히 북을 울리며 출병했다. 조모 측 밀고자를 통해 사전에 쿠데타 정보를 입수한 대장군 사마소(司馬懿)는 심복 가충(賈充)을 보내 막게 했다. 허나 천자가 앞장서서 검을 휘두르니 가충의 병사들은 옥체(玉體)가 상할까봐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이 때 조모에게 린치 가한 게 성제였다. 성제가 제 상전에게 “어찌 할깝쇼?” 묻자 가충은 “대장군의 은혜를 잊었나” 다그쳤다. 은혜도 갚고 출세가도도 달릴 꿈에 젖은 성제는 사마소를 믿고서 주저 없이 황제에게 덤볐다. 조모는 “국법(國法)이 살아있거늘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꾸짖었으나 소용없었다. 조모는 성제가 휘두른 흉기에 맞아 그대로 쓰러졌다.
성제는 황제의 수급(首級)을 베어 상을 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삼족(三族) 멸족이었다. 그 모든 것을 배후에서 지시했던 사마소는 짐짓 놀란 척 연기하며 “저 역적 놈이 감히 천자를 시해했다. 난 저 놈 모른다” 처형을 명했다. 기가 막힌 성제는 살려 달라 울부짖었으나 홀로 모든 죄를 다 덮어쓰고 목이 달아났다.
흑막(黑幕) 사마소는 황제 피습사건에 깊은 유감을 표하고 조모를 애도했다. 그리곤 기다렸다는 듯 새 허수아비 황제를 겁박해 스스로를 진왕(晋王)에 봉했다. 왕위(王位)는 대권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결국 사마씨는 사마소의 아들 대에 이르러 위나라를 멸하고 진나라를 개창(開創)했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피습사건이 ‘배후설’에 휩싸였다. 당초 ‘촉법소년’임을 자신했던 A군은 형사처벌 가능성에 현재 적잖이 당혹스러우리라 짐작된다. 성제의 고사에서 보듯 주구는 결국 사냥 후 삶겨지게 된다. 이득 보는 건 배후일 뿐이다. 만에 하나라도 배 의원 사건 배후가 있다면 이제라도 A군은 이실직고(以實直告)해서 살 길을 도모해야하지 않을까.
※ 금일부터 전국일간 스카이데일리에 매주 연재되는 '오주한의 중국 고전' 첫 회 원문입니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세상에서 제일 싫은 부류는 정신병 걸린 줄 모르거나 알면서 자신들이 깨끗하다고 선민사상을 가진 부류입니다.
딱 저렇게 배카나 테러하는 놈들 말이죠.
어디
건드릴 사람이 없어서...
최고 저질에 악질이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부류는 정신병 걸린 줄 모르거나 알면서 자신들이 깨끗하다고 선민사상을 가진 부류입니다.
딱 저렇게 배카나 테러하는 놈들 말이죠.
어디
건드릴 사람이 없어서...
최고 저질에 악질이다.
누가 범인이든 테러는 정당화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근래 단정적 5.18 기사로 인천이 난리났다 합니다만.. 해당 기사에 저는 개입한 적 일절 없습니다.
하다못해 삼국지까지 입갤하노 ㅋㅋㅋㅋㅋㅋㅋ
가충이 성제를 시켜 조모를 살해한 시점에는 사마씨가 그냥 나라 장악한 상태에요. 208년 이후의 조조 - 헌제 관계와 다를 것이 없음. 그 때는 야당이라는것 자체를 볼 수가 없었어요. 그냥 따지자면 민주당 280석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물론 배현진 의원 테러당한 것에 대해서는 매우 분개하고 있습니다.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