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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채용 비리 등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떠오르면서 여권을 중심으로 선관위 개혁론이 분출하고 있다. 독립성 보장을 이유로 감시 사각지대를 넘어 대통령도 건드리지 못한 채 '성역'이 된 선관위에 대한 감시·감독을 제도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차제에 법관이 선거관리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체제를 바꾸는 등 60년 넘게 이어진 낡은 지배구조를 깨부셔야 한다는 지적이 비등하고 있다.
박수민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3일 "(선관위에 대한) 특별감사관법을 당론 추진하기로 했고 '선거 시스템 특별점검법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국민의힘은 법관의 선관위원 겸직 축소, 선관위 사무총장 임명에 대한 인사청문회 도입, 국정조사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는 자체 감사 외에 독립된 심의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 감사위원회'를 작년부터 신설해 감사 업무를 맡겼다. 그러나 이후에도 채용비리 등 논란으로 잡음을 일으키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아울러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7일 '감사원의 선관위 직무 감찰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 앞서 선관위는 감사원이 선관위 전현직 고위직 자녀 고용세습 의혹에 대한 감사에 들어가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는데, 헌재가 선관위 손을 들어준 것이다.
헌재가 방어막을 만들어주는 동안 선관위의 부패 고름은 치유하기 힘들 정도로 깊어졌다.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지난 10년(2013~2023년)간 실시한 경력채용 291회에서 총 878건의 규정·절차 위반이 확인됐다. 선관위 고위직·중간 간부들은 인사담당자에게 거리낌 없이 연락해 채용을 청탁했다. 이른바 '아빠 찬스'와 같은 특혜 채용이 반복됐지만 선관위는 '전통' 이란 명목 하에 묵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가족회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관위에는 '현대판 음서제'가 형성돼 있다.
최근에는 전직 선관위 사무총장이 '세컨드폰'을 통해 정치인들과 연락해 온 사실이 감사 결과로 밝혀지기도 했다. 김세환 전 사무총장은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관위 명의의 '비선 휴대전화'로 정치인들과 소통했다. 그는 대선 당시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에 책임을 지고 그해 3월 사퇴했지만 퇴직 후에도 1년 8개월 동안 이 핸드폰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내에선 "선관위 사무의 독립성·공정성을 심각히 침해한 중대 사안"(주진우 의원), "선관위 예산으로 개통한 비밀 전화로 정치인들과 밀담을 나누고, 퇴직 후에도 선관위가 요금을 대납해준 이 부패한 카르텔을 도대체 어떻게 믿으라는 말인가"(나경원 의원)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부정선거에 대한 의문이 좀처럼 해소되기도 전에 선관위의 추문이 독버섯처럼 뿌리를 내리자 정치권에서는 선관위를 '해체 수준'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일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3일 페이스북을 통해 채용 비리 등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선관위 조직을 축소·분리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나 의원은 "현재 선관위는 상근 직원만 3000명에 이른다. 선거가 없는 해에도 이렇게 방대한 조직을 유지할 이유가 있는가"라며 이같이 밝혔다.
나 의원은 "헌법기구로서의 선관위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선진국들은 선거위원회가 정부에 속해 평소에는 정책 업무만 담당하고, 실제 선거 관리는 지방자치단체가 맡는 효율적 구조로 운영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구극좌세력들의 '내로남불'식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이는 특정 정파의 이익이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한 당연한 개혁"이라며 "썩은 것은 썩은 것이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지어 개헌을 통해 선관위를 개혁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통해 선관위 문제를 들여가 보려 할 정도로 공고하게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만큼, 이를 해결할 방법은 개헌 밖에 없다는 논리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는 "선관위가 가족 기업처럼 운영되고, 감시로부터 치외법권처럼 되어선 안 된다"며 "(선관위의) 독립성은 중시하되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헌법 개정으로 선관위까지 넓히는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87년 체제 때 독재나 선거 개입 논란으로 선관위에 견고한 탑을 쌓아줬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는 기관으로 전락해 썩어 문드러졌다"며 "무소불위 권력 기관이 된 선관위를 조직 해체 수준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첨언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관위 개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선관위가 헌법재판소 만큼이나 좌로 물들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심지어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선관위 독립성 강화를 목적으로 감사원법상 직무 감찰 대상에서 제외되는 기관(국회·법원·헌재)에 선관위를 추가하는 내용의 감사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선관위를 '치외법권'으로 만들자는 주장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태도를 두고 야권에서도 쓴소리가 이어졌다.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입법권을 사실상 독점한 압도적 다수의석의 야당이 이 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는다면, 선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성실하게 노력하며 일자리를 구하는 청년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고 규탄했다.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대표도 "현행 법리상, 특검과 탄핵 외에는 선관위의 적폐를 척결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그럼에도 오히려 민주당은 감사원이 선관위 감찰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인천국제공항 사태가 불공정 이슈의 '재래식 폭탄'이었다면, 이번 선관위의 불공정 비리는 다탄두 집속탄 수준의 대형 참사"라고 지적했다.
한편 민주당은 김 전 사무총장이 지난해 강화군수 보궐선거 당시 국민의힘 내부 경선에 출마한 것을 두고 "국민의힘이 야당에 책임을 전가하려고 한다", "부정선거 문제를 제기하려는 나쁜 의도가 있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나경원 의원은 3일 "몇몇 극좌 편향 언론인과 정치인들이 전 선관위 사무총장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했다는 점만 부각시켜 본질을 흐리려 한다. 이는 혹세무민 물타기 꼼수"라고 주장했다. 나 의원은 "연고지가 강화군이고 국민의힘 우세 지역이라 기회주의적으로 접근했을 뿐, 결국 최종 후보로 선정되지도 못했다"며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선관위 사무총장이 차명폰으로 누구와 통화했는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어떤 타협을 했는지가 문제"고 지적했다.선관위 등에 따르면 김 전 총장은 지난해 8월4일 강화군수 보궐선거에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국민의힘은 당시 선관위의 선거관리 부실 논란, 자녀 특혜 의혹 등을 비판했지만 그를 경선 전 컷오프(공천배제)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김 전 총장은 2차 경선에 진출한 최종 4인에 포함됐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아들이 강화군선관위 8급 공무원으로 채용되도록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김 전 총장을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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