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측의 정계선 헌법재판관에 대한 기피 신청을 전원일치로 기각했다. 그동안 재판관 기피 신청을 인용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 재판관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재판관 등과 함께 진보 성향의 단체에 가입해 활동한 전력 때문에 정치적 편향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게다가 정 재판관의 배우자 황필규 변호사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해당 재단법인의 이사장이 국회 탄핵소추대리인단 공동대표인 김이수 변호사다. 탄핵 재판 논의 상황이 야당 측에 전달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만큼 '이해충돌' 소지가 크다.
앞서 헌재는 국회 탄핵소추단에 내란죄 철회를 권유했다는 '짬짜미' 의혹에 이어 재판에 참여할 자격도 없는 사무처장이 국회에 나와 계엄 포고령이 '위헌'이란 견해를 밝히면서 논란이 됐다.
심지어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며 선동되기 쉬운 여론의 눈치를 보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국가의 헌법적 질서를 수호하는 헌재가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그 존재 이유와 역할에 대해 의구심을 낳고 있다.
◆정계선 재판관, 기피신청 하루만에 기각…왜 서두르나
문 권한대행은 14일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첫 변론기일에서 "어제 재판관 한 분에 대한 기피 신청이 들어왔고 오늘 그 분을 제외한 7분의 일치된 의견으로 기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문 권한대행은 전날 정 재판관에 대해 윤 대통령 측이 재판관 기피 신청을 하자 이날 오전 재판관 회의를 소집해 해당 사안에 대해 논의했다.
헌재법 24조는 재판관에 대한 기피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윤 대통령 측은 정 재판관에 대해 기피 신청을 하면서 공정한 심판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윤 대통령 측은 "정 재판관 배우자인 황필규 변호사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고, 그 재단 법인 이사장이 국회 측 탄핵소추 대리인단 공동대표인 김이수 변호사다"며 "재판관에게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해 기피 신청한다"고 했다.
재판관 기피 신청의 경우 민사소송법을 준용하도록 돼 있고 소송 절차는 일단 중단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기피 신청이 들어온지 하루만에 기각시켜 탄핵 심판을 서두르는 모습까지 보였다.
헌재는 재판관 기피 신청을 인용한 전례가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탄핵심판 과정에서 주심이었던 강일원 재판관에 대해 기피 신청을 했지만, 헌재는 재판관 회의를 열고 "오직 심판 지연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부적합하다"며 각하했다.
◆정 재판관 남편은 국회 탄핵소추대리인단 대표의 부하직원…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다만 정 재판관은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고 있어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실제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이날 정 재판관을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및 직무유기,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해충돌방지법 제5조에 따르면, '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는 직무관련자가 사적이해관계자임을 안 경우 안 날부터 14일 이내에 소속 기관장에게 그 사실을 서면으로 신고하고 회피를 신청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 재판관의 배우자가 직무관련자인 김이수 변호사 법인에서 급여를 받고 근무했으므로 정 재판관과 김 변호사는 명백히 사적 이해관계에 해당한다는 게 이 시의원의 지적이다.
따라서 정 재판관은 이해충돌방지법 제5조에 따라 김 변호사가 사적 이해관계자라는 사실을 신고하고 회피를 신청해야 함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이해충돌방지법을 위반한 것이고 직무유기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 시의원은 "정 재판관이 탄핵 심판에 참여하는 것은 명백히 이해충돌에 해당, 절차의 공정성이 전혀 담보되지 않고 이것으로 인해 결과의 정당성까지 크게 훼손될 수 있다"며 "윤 대통령 측 방어권을 전혀 보장할 수 없어 불공정 편파 심판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헌재가 野 주도 탄핵소추단과 '짬짜미'이와 마찬가지로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준비기일에서 탄핵소추 의결서 상 소추 사유를 4가지 쟁점으로 정리해 준 것에 대해서도 의혹이 일고 있다.
주진우 의원은 "헌재는 소추위원들에게 방대한 탄핵소추문을 간단하게 4개의 쟁점으로 구분해줬다"며 "내란죄가 포함된 탄핵소추문을 헌재가 나서 ▶계엄 선포 ▶포고령 1호 발표 ▶국회 활동 방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불법 압수수색 등으로 쟁점을 정리해 준 것은 사실상 탄핵소추문을 해체해서 새로 써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 의원은 이어 "국회의원들이 언제 헌재에 탄핵소추문을 새로 작성할 권한을 줬나? 이처럼 재판부가 탄핵소추위원을 도우면 '재판'이 아니라 '정치'가 된다"고 직격했다.
앞서 국회 측 대리인은 지난 3일 열린 2차 변론준비기일에서 내란죄 주장을 철회한다며 "헌법재판의 성격에 맞는 주장과 입증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그것이 재판부께서 저희에게 권유하신 바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직 대통령 탄핵심판에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할 헌재가 야권에 '내란죄' 철회를 권유했다는 '짬짜미'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재판 사항에 사무처장 '월권'…탄핵 심판 예단
이 뿐만 아니라 재판에 참여할 자격도 없는 헌재 사무처장이 국회에 나와 계엄 포고령이 '위헌'이란 견해를 밝혀 논란이 됐다. 김정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은 지난 9일 국회 긴급현안질문에 출석해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당시 선포한 계엄 포고령 1호에 대해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정애 민주당 의원이 "포고령 1호는 우리 헌법에 부합하느냐"고 묻자 김 처장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이대로 실행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가 한 의원이 재차 묻자 이렇게 답했다.
포고령 1호는 국회 활동 등 일체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김 처장은 "상당히 이상한 문구"라고도 했다. 김 처장은 언론·출판 통제 등의 내용을 담은 포고령 2~5호에 대해서도 "현 상황에서라면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포고령의 위헌 여부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포함된 내용으로, 재판에 참여할 자격도 없는 사무처장이 '위헌'이란 견해를 밝히면서 예단해 버린 것이다.
헌재 사무처장의 이 같은 답변은 현행법 위반으로 매우 부적절했다는 비판이다. 주진우 의원은 지난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김정원 처장은 어제 국회에서 한정애 의원 질의에 '계엄 포고령 1호를 포함한 모든 포고령 내용은 위헌'이라고 화답했는데, 현행법 위반으로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헌법재판소법 제17조 4항은 '사무처장은 국회 또는 국무회의에 출석해 헌법재판소의 행정에 관해 발언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면서 "중립을 위해 진행 중인 '재판'에 대한 답변은 금지돼 있다”고 꼬집었다.
즉, 헌재 사무처장이 '헌재 행정'에 관해서만 발언해야지, 재판과 관련된 답변을 할 규정이나 권한은 없다는 것. 권성동 국힘 원내대표도 이에 대해 "공정성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라고 경고했다.
◆이미선 재판관과 함께 진보성향 학술단체 출신
정 재판관이 무엇보다 논란이 되는 점은 문 권한대행과 이미선 재판관과 함께 진보성향의 학술단체에 가입해 활동했다는 점이다. 문 재판관과 정 재판관은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이고 이 재판관은 우리법연구회 후신으로 알려진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게다가 문재인이 임명한 문 재판관과 이 재판관의 임기가 오는 4월 18일로 종료돼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그 전에 어떻게든 탄핵심판을 진행하기 위해 속도를 내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이는 결국 헌재의 정치적 중립성 및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이 재판관은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과 협의 없이 5회에 달하는 재판 기일을 잡고 윤 대통령의 검찰 수사 기록 요청해 검찰에 고발당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은 탄핵재판의 절차에 형사소송법을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일을 정할 때는 재판관이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대리인 측과 날짜를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통상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헌재는 공정하고 신중하게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진행해야 하지만 지난 3일 제2차 변론준비기일에서 피청구인인 윤 대통령이 변론기일에 출석하지 않을 것을 대비해 1회(14일) 및 2회(16일) 변론기일을 지정한 바 있다.
2차 변론준비기일이 종료된 후에는 일방적으로 3차례 변론기일(21일, 23일, 2월 4일)을 추가로 지정한 뒤 청구인(국회 탄핵소추위원단)과 피청구인 측에 통보했다. 그만큼 탄핵심판 심리를 빠르게 진행하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현재 헌재는 8명의 헌법재판관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문 재판관과 이 재판관의 임기가 종료되는 4월 18까지 결론을 내지 못하면 헌재는 다시 6인 체제가 된다. 6인 체제에서도 심리를 할 수 있다는 게 헌재의 입장이지만 6인 중 1명이라도 반대 의견을 낼 경우 국회의 탄핵소추안은 기각된다.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국민 여론 눈치
또 헌재가 최근 잇따라 정쟁의 중심에 서고 있는 것은 여야의 신경전도 있겠지만 헌재의 정치적인 언어가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헌법을 수호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헌재가 정치 중립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상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다.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지난 7일 "여야를 떠나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고 발언했다. 탄핵 심판의 편파성 논란에 대한 반박 차원으로 나온 발언이었는데, 오히려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판사 출신이기도 한 김기현 의원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 문제점을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다수 헌법재판관들이 부화뇌동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헌재가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 하는 말을 듣고 매우 경악스러웠다"며 "헌법재판관은 국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헌법을 바라보고 가야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만 바라보겠다고 하는 것은 국민 여론 눈치를 보겠다는 말과 대동소이한 것"이라며 "재판의 독립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로부터의 독립도 있지만 여론으로부터의 독립도 중요한 가치인데 재판관이라는 사람들이 국민을 바라보고 가겠다고 노골적으로 천명하는 이런 사태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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