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장외투쟁 흥행 실패로 민주당이 탄핵이냐 개헌이냐를 두고 머리를 싸매는 사이 여권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재판 승복 선언'이 먼저라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조만간 있을 이 대표의 1심 선고를 생중계로 진행하는 것을 이 대표가 스스로 받아들여 사법부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논리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가) 유죄라고 생각한다면 판사 겁박 무력시위를 하는 것이고, 무죄라고 생각한다면 생중계 무력시위를 하는 것이 맞다"면서 "이 대표 재판 선고의 생중계를 바라는 여론이 굉장히 높다. 무죄라면 못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어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대선의 민의를 바꾸려고 하고 일정 부분 효과를 거뒀기에 죄질이 나쁘다"며 "대한민국 사법부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법대로만, 우리 국민과 똑같이 판단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여당의 이런 공세에도 이 대표와 민주당은 재판 결과에 승복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민주당은 이미 강성 지지층을 향해 '재판 불복' 군불을 때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5일 출범한 사법정의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강성 지지층에게 이 대표 재판과 관련한 자신들의 법리 설파에 나섰다. 전현희 민주당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대장동 변호사로 불리는 현역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 7일에는 친명(친이재명) 성향 유튜버들을 대거 민주당사로 초청해 자신들의 관점으로 점철된 법 이론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정치권에서는 친야 스피커를 통해 재판 결과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고 재판 불복에 대한 명분을 쌓기 위한 일종의 여론전으로 해석됐다.
민주당은 장외투쟁도 두 차례 진행하며 '방탄집회'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하지만 지난 9일 2차 장외 투쟁에 기대만큼 인원이 몰리지 않으면서 장외투쟁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비명(비이재명)계로 꼽히는 민주당 소속의 한 의원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두 번의 집회가 정국 방향의 가늠자로서 기능하지 않겠느냐"면서 "김건희특검법에 대한 국민 수요와 윤석열 탄핵을 향한 수요가 다르다는 점이 명확해지지 않았느냐"고 밝혔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2일 서울 숭례문 인근 첫 장외 투쟁에 이어 9일 서울시청 근처에서 두 번째 집회를 열었다. 민주당은 첫 집회에서 30만 명, 두 번째 집회에서 20만 명이 참석했다고 추산했다. 자체 추산으로도 숫자가 줄었다.
경찰은 민주당 추산보다 훨씬 적은 숫자가 모였다고 집계했다. 경찰은 2일 1만7000명, 9일 1만5000명이 운집했다고 분석했다. 첫 집회에 모인 인원이 예상을 밑돌았다고 생각한 민주당은 일주일간 총력전을 펼친 것을 치고 실망스러운 성적을 받은 것이다. 이 대표도 직접 지역구(인천 계양을) 당원들에게 참석을 독려하는 문자를 뿌렸으나 오히려 참여 인원이 더 줄었다.
같은 장소에서 민주당의 장외 우군으로 불리는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과 촛불행동 집회가 연이어 열린 점을 고려하면 더욱 뼈아픈 결과다. 앞선 집회 참여 인파가 민주당 집회로 유입될 가능성이 컸지만 이런 이점도 별로 활용되지 못했다.
민주당은 오는 16일에도 장외투쟁에 나설 예정이지만 분위기는 좋지 않다. 당내에서는 향후 탄핵 또는 개헌 등 윤 대통령 임기 단축을 위한 노선 정립에만 몰두하는 상황이다.
탄핵 대신 윤 대통령 탄핵 대신 개헌이 안정적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미 민주당 친명(친이재명)계 인사들은 조국혁신당과 사회민주당 등과 지난 8일 '대통령 파면 국민투표 개헌연대'를 출범시켰다. 윤 대통령 임기 단축과 4년 중임제 개헌 등이 이들이 내세우는 뼈대다.
이 대표도 개헌을 좋은 카드로 보고 있다는 것이 당내 전언이다. 내부 분위기만 무르익으면 이 대표가 한동훈 대표에게 직접 타진을 하는 등 선언적인 제안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개헌 과정에 윤 대통령이 끼어들 틈이 없어 이 대표에게도 효율적이라는 것이 민주당 의원들의 설명이다. 윤 대통령을 고립시키고 국회에서 정국을 풀어내는 리더십을 보일 수 있는 데다, 탄핵 절차보다 변수가 크지 않아 안정성이 높다는 것이 장점으로 거론된다.
실제로 9일 집회에서 민주당 지도부는 탄핵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두 글자로 된 말을 차마 할 수 없어서 이렇게 말한다"며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것은 민중, 국민이었다. 국민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우리 앞에 무릎 꿇게 만들어 보자"고 말했다.
애초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 퇴진'을 연설에 담을 예정이었지만, 이를 빼고 '윤석열 심판'으로 방향을 수정했다. 집회에서 연사로 나선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인사들이 '탄핵'을 외친 것보다는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민주당이 대정부 공세의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김건희특검법으로 탄핵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개헌론 증폭의 이유다. 민주당 지도부가 김건희특검법만 바라보며 이 법을 '만능키'처럼 인식하고 있지만, 대통령 거부권이라는 벽을 넘기는 벅찬 상황이다. 김건희특검법 관철을 외치는 장외투쟁이 오히려 정부·여당과 여권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의원은 "김건희특검법만 믿고 있다가 이를 제대로 돌파하지 못한다면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고 힘은 힘대로 빼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며 "개헌연대가 전국을 돌며 분위기를 띄우고 어느 정도 여론이 형성되면 이 대표가 이를 수용하고 제안하는 방식을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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