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10월까지 수출은 모두 575억달러로, 전년동기대비 4.6% 증가했다.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는 역대 10월 최대인 125억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과 비교하더라도 40%나 늘어난 수치다.
최근 반도체 업황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는 가운데 나온 '반짝' 실적이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선거를 필두로 한 대내외 불확실성이 큰 만큼 긴장의 끈을 조이면서 '변동성 최소화'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누가 승리하더라도 미·중 충돌과 보호무역 장벽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현실은 달라질 것이 없어 보인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우리나라 수출이 최대 450억달러 줄어들 수 있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분석도 있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칩스법(반도체 지원법)을 공격하면서 기존의 보조금 정책을 백지화하고 '관세 폭탄'으로 이를 대체할 것임을 시사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각) 인터뷰에서 "단 10센트의 보조금도 줄 필요가 없었다"며 "관세를 높이면 외국 기업들이 알아서 미국으로 와서 반도체 공장을 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는 외국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바이든 행정부의 칩스법을 '나쁜 거래'라고 비판하면서 '관세 카드'를 꺼내 들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앞서 7월 "대만이 우리 반도체사업의 거의 100%를 가져갔다"면서 TSMC 등을 향한 강경 대응을 예고한 만큼 이번 발언은 TSMC를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이제 한국까지 그 전선이 확대했다고도 풀이된다.
때문에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 약속을 믿고 이미 미국 내에 수십조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공장 건설에 착수한 국내 기업들은 난감해졌다.
삼성전자는 440억달러(약 61조원)를 투자하고 64억달러(약 8조8600억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돼 있다. 4월 텍사스주 테일러에 공장 건설에 들어갔다. SK하이닉스는 투자금 38억7000만달러, 보조금 4억5000만달러가 예정됐다.
반도체는 1997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보기술협정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무관세로 수출입이 이뤄진다. 보조금 정책을 백지화하겠다는 이번 발언은 이러한 글로벌 합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제사기'라는 거친 지적까지 나온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미무역 흑자국인 한국을 수시로 겨냥했다. 9월24일 조지아주 유세에서 한국을 중국, 독일과 함께 거론하면서 "다른 나라의 일자리와 공장을 빼앗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한국이 미국의 많은 산업을 빼앗아갔다"고 약탈론을 제기했다.
1기 집권 시절에도 한국 등 일부 국가에 대해 "무역에서는 동맹이 아니다"라고 압박한 만큼 2기 집권에 성공할 경우 고율 관세 부과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방위비 재협상 등으로 전방위 압박을 가할 공산이 크다.
트럼프 관세의 경우 한국의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유럽이 보복조치로 미국 국채 매수를 줄이면 국채금리가 올라가고 시장금리도 상승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수출품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달러화 약세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강달러'를 유발하는 꼴이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 시기를 보면 미국 국채금리가 들썩이면서 강달러 현상이 두드러진 바 있다.
최근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에 따르면 미국의 재정적자 축소가 쉽지 않을 전망이며 재정적자 증가는 국채발행과 금리상승으로 이어져 강달러가 계속될 수 있다. 이 경우 국내 집값과 가계대출 요인을 차치하더라도 환율방어 차원에서 28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승리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미국 민주당이 2022년 발의한 청정경쟁법(CCA)이 도입될 경우 국내 산업계가 향후 10년간 총 2조7000억원의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한국경제인협회의 분석이 나왔다. 이 법안은 수출품 생산 및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앞서 유럽이 도입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미국판이다.
국내 산업계가 부담할 금액은 미국 의회를 통과해 2025년부터 시행될 경우를 산정한 것이다. 민주당 후보인 해리스 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한다면 해당 법안 시행 역시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대미 수출제품 중 원자재에 1조8000억원, 완제품에 9000억원 등의 추가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됐다. 업종별로는 석유 및 석탄제품(1조1000억원), 화학제조업(6000억원) 등이 영향을 받는 것으로 추정됐다.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와 대체로 유사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와 양자컴퓨팅, AI 등 최첨단 기술과 관련한 미국 자본의 중국 투자를 제한하기로 했다. 미국 자본의 대중 최첨단 기술 투자를 전면 봉쇄하겠다는 방침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는 덜 거칠지만, 해리스 부통령 역시 대중 기술·무역전쟁 지속과 '미국 우선주의' 심화라는 측면에서 경계를 늦출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따른 중국의 보복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중국은 기술자립 속도를 높이면서 희토류 등 반도체와 이차전지 제조에 필요한 핵심 광물의 생산·수출 통제에 고삐를 죄고 있다. AI용 반도체에 사용되는 희토류 디스프로슘의 경우 중국이 세계 생산량의 99%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회사 연례행사에서 "자유무역은 죽었다. 엄중한 도전이 눈앞에 있다"고 말했다. 이는 향후 전개될 관세전쟁, 무역전쟁이 세계 경제에 얼마나 큰 시련을 줄 것인지를 잘 대변한다.
특히나 보호무역과 자국 우선주의로 시장경제의 근간인 자유무역이 흔들리는 것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는 국가적 위협이다. 가뜩이나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 수출마저 위축될 경우 경기 침체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한국은 글로벌 공급 교란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은 지난해 해외 특정국에 의한 공급망 교란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을 측정한 '수입 취약성' 면에서 한국을 세계 1위로 꼽았다. 일본·베트남·태국·인도 등 중국 교역 비중이 높은 나라들도 취약 국가로 지목됐다.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이 험악하게 진행되면 직간접적으로 타격을 입을 리스트인 셈이다.
결국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한국을 비롯한 이해관계국들은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양자택일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격화하는 보호무역 전쟁 속에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재편될 무역질서에 대한 방어와 이를 기회로 삼을 중장기 전략이 동반돼야 한다.
당장 방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제조기술 역량을 높여 첨단기술을 초격차를 유지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과도한 규제와 높은 법인세율 등 글로벌 기준에서 벗어난 법·제도를 정비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수출장벽들을 돌파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지키면서 성장동력을 계속 살려갈 수 있다.
수출 불확실성에 대비해 미·중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고 기술력 강화와 인재 육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 우리 기업들의 투자로 미국의 일자리를 대거 창출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미가 경제·안보·기술 동맹을 토대로 '윈윈'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정교한 외교력도 당연히 수반돼야 한다.
동시에 격변의 시대를 버텨 적어도 10년 이상 생존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각자도생, 약육강식의 쓰나미 앞에서 긴장을 조금이라도 늦추면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국가를 지키는 최고의 덕목은 유비무환이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11/03/202411030005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