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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대구경북특별시의 탄생

청년의삶

대학생 시절 우연히 접한 영화 '배트맨 비긴즈'는 아직도 인생 영화로 남아 있다. 배트맨의 활약상보다 인간적 고뇌와 갈등, 서사에 주목한 배트맨 비긴즈는 당시 상업 영화로는 드물게 작품성까지 갖췄다는 호평 속에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을 휩쓸었다. 슈퍼히어로 답지 않은 잦은 패배와 나약함, 그래서 더 인간적인 히어로의 모습은 많은 이들을 더욱 배트맨에 빠지게 만들었다.

대구경북(TK) 행정통합이 다시 본궤도에 올랐다. 아직 최종 합의문 작성과 시·도의회 및 국회 통과 등의 절차가 남았지만, 좀처럼 좁혀지지 않던 핵심 쟁점에서 합의를 이뤄낸 것만으로도 향후 전망을 밝게 한다. 통합 과정은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막판까지 경북도와 의견을 좁히지 못했던 동부청사 문제는 대구시 입장에선 상상도 못한 의제였다고 한다. 소모적인 논쟁이 오갔고, 결국 8월 말 논의가 중단되며 행정통합도 파국을 맞는 듯했다.

누군가는 대구시와 경북도의 불협화음을 탓했고, 어떤 이는 애초에 불가능한 과제였다며 그간의 노력을 폄훼했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한 사실은 지방의 행정통합에 이처럼 전국적인 관심이 모인 게 처음이라는 것이다. 민선 7기 때도 대구경북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통합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다. 코로나 시국이기도 했지만, 중앙정부의 관심을 받지 못한 탓이다. 지금은 어떤가. 좋은 소식이든 나쁜 일이든 대구경북 통합 과정에 전국이 주목한다. 한낱 지방의 의제를 중앙에서 주목받게 만든 데는 역시 보수권 유력 대권 주자인 홍준표 대구시장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대구시와 경북도 간 약간의 투닥거림(?)도 결과적으로는 흥행 요소가 된 모양새다.

홍 시장이 TK 통합에 대해 설명한 말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처음 있는 일" 그렇다. 민선 8기 들어 행정통합, TK신공항 건설, 맑은 물 하이웨이 등 '거대 담론'이 휘몰아친 덕에 무감각해졌지만, 광역단체 간 행정통합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두 단체의 통합으로 탄생하는 '대구경북특별시'도 그렇다. 대한민국 역사상 서울특별시 외 다른 특별시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대효과도 가늠하기 힘든 수준이다. 대구정책연구원은 TK 통합 기대 가치를 1천511조원으로 예상했다. 상상 이상의 액수에 기자들도 여러 번 되물어봤을 정도다.

정부의 열렬한 지원 속에 TK 행정통합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2026년 7월 대구경북특별시가 출범할 때 일련의 과정들은 어떻게 기억될까. 대구시와 경북도가 치열하게 싸웠던 의제들은 결과적으로 특별시에는 '좋은 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배트맨 비긴즈처럼 스펙터클하진 않겠지만, 대구경북특별시 탄생 과정을 복기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을 듯하다. 대구경북특별시 비긴즈를 상상해 본다.

 

[취재수첩] 대구경북특별시의 탄생 | 영남일보 - 사람과 지역의 가치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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