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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 조직원들이 '구시대 유물' 삐삐·워키토키 선택한 이유는

뉴데일리

이스라엘과 무력 분쟁 중인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조직원들이 지닌 무선호출기(삐삐) 수천개가 동시 폭발하는 전례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17일(현지시각) 15시30분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쪽 교외, 이스라엘 접경지인 남부, 동부 베카벨리 등 헤즈볼라 거점을 중심으로 무선호출기 수십대가 동시다발로 터졌다.

어린이 2명을 포함해 12명이 사망하고 약 2800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접경국 시리아에서도 무선호출기 폭발로 헤즈볼라 대원 등 14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부상자 중에는 모즈타바 아마니 주레바논 이란대사도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한쪽 눈을 실명했다고 보도했지만, 이란 외교부는 이를 부인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모든 시민에게 소지한 무선호출기를 즉각 폐기하라고 요청했지만, 이튿날에도 의문의 폭발이 이어졌다.

18일에도 레바논 동부 베카밸리와 베이루트 외곽 다히예 등지에서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휴대용 무전기(워키토키)가 연쇄 폭발하면서 최소 14명이 숨지고 450명이 다쳤다. 전날 숨진 헤즈볼라 대원의 장례식에서도 무전기가 터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레바논 안보 소식통은 헤즈볼라가 수입한 무선호출기 5000개에 이스라엘 대외 정보기관 모사드가 폭발물을 심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의혹과 관련, 이스라엘은 이번에도 타국 영토 내에서 이뤄지는 군사작전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NCND)' 입장이다.

지난해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해 가자전쟁이 발발한 이래 하마스의 편을 들어 이스라엘 북부 국경지대를 공격해온 헤즈볼라는 조직원들에게 무선호출기 사용을 장려했다.

휴대전화가 해킹돼 공격계획이 사전에 노출되거나 이스라엘의 표적공습에 주요 인사가 암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휴대전화의 카메라와 마이크는 스파이웨어를 심을 수만 있다면 원격 도·감청 수단이 될 수 있다. 위성항법장치(GPS)를 활용해 사용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 이스라엘 보안기업 NSO그룹이 개발해 세계 각국에 수출한 휴대전화 도·감청용 스파이웨어 '페가수스'는 민간인 불법사찰 등에 광범위하게 악용돼 국제적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헤즈볼라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2월 헤즈볼라 무장대원들에게 휴대전화를 쓰지 말라고 경고했다. 일부 외신은 헤즈볼라가 전투지역에서의 휴대전화를 아예 금지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후 헤즈볼라는 최근 몇달간 통신보안을 위해 무선호출기를 도입했으며 무전기도 비슷한 시기에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선호출기의 경우 카메라와 마이크 등이 없어 도·감청 위험이 적고, 전파 음영지역에서는 통신이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도 휴대전화보다 덜한 까닭에 상당히 권장됐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이를 역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급망 뚫고 폭발물 설치 가능성…국제사회 '민간인 피해' 비난NYT는 미국과 서방국가 당국자들을 인용, 이스라엘이 이번 사건의 배후라고 전하면서 이스라엘 측이 헤즈볼라가 수입한 무선호출기 등에 소량의 폭발물을 심었다고 보도했다. 헤즈볼라가 대만기업에 주문해 납품받은 무선호출기 배터리 옆에 1~2온스(28~56g)의 폭발물과 원격기폭장치가 달려있었다는 것이다.

이 무선호출기들에는 폭발 직전 신호음을 내 사용자가 호출기를 집어 들도록 만드는 프로그램도 삽입됐다고 NYT는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SNS에는 무선호출기가 별다른 전조 없이 곧장 폭발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들이 공유되고 있다.

정상적인 기기를 해킹해 리튬-이온 배터리를 과열시키는 등 방식으로 폭발을 유도했다면 폭발에 앞서 연기가 치솟거나 불이 붙어야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이스라엘 전직 당국자들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무선호출기에 탑재되는 배터리는 너무 작아서 이번 사건에서처럼 심각한 부상을 초래하거나 사망자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 사이버보안기업 에라타 시큐리티의 로버트 그레이엄 CEO도 악성코드로 배터리를 터뜨릴 수는 있지만, 영상에 잡힌 것처럼 강한 폭발을 일으킬 수는 없다면서 무선호출기가 레바논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누군가 폭발물을 심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해당 무선호출기에는 대만 업체 골드아폴로의 상표가 붙어있지만, 골드아폴로는 해당 기기들이 대만이 아닌 헝가리 부다페스트 'BAC 컨설팅 KFT'가 상표 사용권을 받아 기기를 제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헝가리 정부는 BAC가 무역중개회사일 뿐 자국 내 제조시설이 없다면서 "문제 기기들이 헝가리에 있었던 덕이 없다"고 반박했다.

현재로서는 공급사슬이 뚫려 제조·유통과정에서 해당 기기들에 폭발물이 설치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레바논의 한 고위 안보 소식통도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기관 모사드가 수개월 전 헤즈볼라에서 구입한 무선호출기에 폭발물을 심었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번 사건이 이스라엘의 소행이라면 12개월째 국경 너머에서 로켓과 미사일을 쏴대는 헤즈볼라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일 수 있다.

헤즈볼라는 베이루트에서 최고위급 지휘관이 암살된 것에 대한 보복이라면서 지난달 이스라엘을 향해 320여발의 로켓과 자폭 드론을 날린 바 있다. 이에 대한 보복의 의미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이스라엘의 또 다른 국제법 위반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천대의 무선호출기 등을 터뜨리는 것은 전례가 없는 공격방식으로, 분쟁과 관계없는 민간인까지도 해칠 수 있는 무차별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한때 IDF 법률고문이었던 히브리대 소속 국제법 전문가 탈 밈란은 "무선호출기 공격은 새로운 유형의 공격이고, 지금껏 본 적이 없는 것"이라며 "그 공격에 누가 다칠지,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부수적 피해로 간주할지 적절히 평가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레바논에서 발생한 폭발사건과 관련해 20일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폭발사건은 충격적이며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 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간 갈등이 더 확산하지 않도록 즉각적 조처를 하고 민간인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09/19/20240919000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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