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의 대선 레이스가 초접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승패에 따라 국내 산업계가 받을 과제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산업계의 기민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칫 오판하면 '퍼팩트스톰'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외정책에는 닮은 점이 있다. 보호무역 등 '아메리카 퍼스트'로 대변되는 미국 우선주의다. 하지만 이를 관철하는 강도가 다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을 '관세맨'이라고 칭했던 첫 임기 때처럼 관세를 경제 문제의 '만능열쇠'로 여기고 있고 외교에서 상대국의 양보를 압박하는 무기로 사용할 태세다.
그는 모든 수입품에 10% 보편관세를 물리려 한다. 현재 약 3% 수준인 미국의 평균 관세율이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일명 '트럼프 상호무역법'도 내세우고 있다. 미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에 똑같은 비율로 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각) 위스콘신주 유세에서 "나는 관세 대통령이지, 증세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대통령 당선시) 우리는 관세 국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이 취임하면 동맹국이든, 적성국이든 관계없이 관세를 무기로 한 강력한 보호무역정책을 펼 것을 예고했다.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중심으로 세계 공급망을 재편하겠다는 의욕은 더 노골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면 중국에 60% 이상 관세율을 적용하고 최혜국 대우도 박탈하겠다고 밝혔다.
최혜국 대우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에 따라 두 국가간 무역관계에서 제3국에 부여하는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게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박탈한다는 것은 관세를 자율적으로 늘리겠다는 의미다. 미국은 대규모 무역적자가 만성화된 상황으로, 이 가운데 대중국 무역적자가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한다.
7월 국회 미래연구원에서 발간한 보고서 '트럼프 2.0 시대, 미·중 관계와 국제질서의 미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할 경우 대중국 정책에 집중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신 족적을 남길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분야인 만큼 "트럼프 2기는 중국을 최대 위협,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적국으로 규정하고 미·중 경쟁을 '관리'가 아닌 '승리'해야 하는 게임으로 인식"하면서 정책을 펼칠 것으로 전망했다.
관건은 그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한국에도 FTA 체결 취지를 무시하면서까지 관세를 부과할 것인가다.
바이든 행정부의 공급망 재편으로 한국 기업들이 점점 중국에서 미국으로 눈을 돌리면서 이제 미국이 한국 최대 수출국이 됐기 때문에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한국은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게다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민감하게 여기는 대미 무역흑자(미국 입장에서는 무역적자)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한아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미국의 보호무역조치 대부분은 중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우리 기업도 예상치 못한 영향에 유의해야 한다"며 "중국산 우회 수출 조사 확대로 자칫 한국 수출에까지 고율 관세 부과 가능성이 있는 만큼 수입 규제 동향에 대한 지속적인 대응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리스, 유화책 펼치겠다면서도 '자국 우선주의'는 트럼프와 동일이에 반해 해리스 부통령은 '강한 관세'라는 강압적 수단보다는 유화책을 주장한다.
대미 투자를 유인하되 외교·안보 동맹국에 편의를 제공하며 나라에 따라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겠다는 입장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내 생산기지 건설을 촉진하는 온쇼어링(onshoring) 정책을 펼치면서도 가까운 우방국에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혹은 니어쇼어링(nearshoring)이 혼재한 정책을 펼친 만큼 해리스 부통령도 이를 계승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중국 기업을 견제하되 공산품 수입은 지속하고 핵심 기술물자에 대해서는 수출통제 등으로 미국의 경쟁력 우위를 유지한다는 디리스킹(위험 통제)을 택했다. 전략적으로 손을 잡겠다는 여지를 남긴 셈이다.
트럼프식 관세에 대해서는 대부분 경제학자의 지적처럼 일반 미국인의 물가 부담을 키운다고 보고 부정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그는 최근 토론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제안을 "전국민 부가세, 트럼프 세금"이라고 비판하면서 관세를 부과할 경우 중산층 가정이 지급해야 할 비용이 연간 4000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산업계 지형도 바뀔 전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바이든 행정부의 다양한 지원책에 끌려 미국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태양광 등 청정에너지 산업에 대대적으로 투자한 한국 기업들의 사업환경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보조금 등을 '녹색 사기(green scam)'로 규정하면서 이런 사업을 위해 책정했지만 아직 사용하지 않은 예산을 도로·교량·댐 등의 사업으로 전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기차 보조금 등을 없애려면 의회의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하지 못하더라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통해 지급 요건을 더 까다롭게 바꿀 수 있다.
다만 공화당 강세 지역이 IRA 보조금에 따른 투자 혜택을 적지 않게 보고 있고, 이미 전기차 전환을 시작한 자동차업계가 정책변화를 원치 않을 수 있어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을 완전히 뒤집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훨씬 더 많은 액체 금(석유를 의미)을 발밑에 갖고 있다"면서 석유, 천연가스,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 생산을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반면 해리스 부통령은 IRA의 상원 표결 당시 찬반 표가 같은 상황에서 찬성표를 던져 가결 처리한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청정에너지 확대를 통한 기후변화 대응 기조를 이어갈 태세인 만큼 더 안정적인 사업환경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해리스 부통령의 당선이 마냥 한국 기업에 대한 수혜로 이어지진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해리스 캠프는 최근 전기차 판매 의무 법안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두 후보의 정책적 차이에도 미국 우선주의라는 공통된 기조를 내세우고 있는 만큼 한국이 대비책을 강구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용정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대해선 취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며 "산업이나 기술, 무역 등 다방면에서의 정책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우리의 현실을 파악한 후 외교력을 활용해 최대한 불이익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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