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를 '흉기'에 비유했다. 범죄 의혹에 대한 해명에 앞서 검찰 수사를 '정치 보복'으로 규정한 것이다. '잊힌 삶'을 살겠다던 문 전 대통령이 좁혀오는 수사망에 이 대표와 '방탄 동맹'을 맺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전날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을 예방한 이 대표와 함께 "검찰 수사가 흉기가 되고 정치 보복 수단이 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대표는 "문 전 대통령의 가족에 대한 현 정부의 태도는 정치적으로도, 법리적으로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했고, 문 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나나 가족이 감당할 일이나 당에 고맙게 생각하고 당당하게 강하게 임하겠다"고 답했다.
앞서 검찰은 문 전 대통령 딸 다혜 씨의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 문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피의자'로 적시했다. 검찰은 타이이스타젯 실소유주인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이 문재인 정부 시절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되는 대가로 다혜 씨의 전 남편인 서모 씨를 임원으로 취업시켰다고 의심하고 있다.
서 씨가 타이이스타젯 임원으로 근무하며 받은 급여 등 약 2억 원은 문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로 보고 있다. 문 전 대통령 부부가 딸 부부의 생계비 일부를 부담했던 상황에서 서 씨의 취업으로 문 전 대통령은 생계비 지원 부담을 없앴고, 이에 따라 문 전 대통령 모녀는 '경제공동체'에 해당한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서 씨의 취업 특혜 의혹은 2019년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처음 제기했고, 2년 뒤 한 시민단체의 고발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문재인 청와대는 의혹 제기 당시 제대로 해명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 전 대통령 압수수색 영장에 '피의자'로 적시되고 나서야 뒤늦게 이 대표를 만나 민주당에 기대는 모양새가 됐다. 민주당은 '전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문 전 대통령을 향한 검찰 수사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검찰이 문 전 대통령 전 사위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이자 다혜씨는 지난 3일 "이제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혜 씨는 SNS에 "경제공동체라는 말을 만들어서 성공했던지라 다시금 추억의 용어를 소환해서 오더(?)를 준 건가"라고 적었다.
이어 "그런데 우리는 경제공동체 NOPE(아니다)! 운명공동체인 가족인데요"라며 "가족은 건드리는 거 아닌데 (문 전 대통령과 일가족은) 엄연히 자연인 신분이신데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죠"라고 되물었다.
다혜 씨가 문 전 대통령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을 펴낸 출판사로부터 받은 2억5000만 원도 논란이다. 출판사는 디자인 편집 등에 참여한 명목으로 다혜 씨에게 2억 원을 줬고, 5000만 원은 빌려줬다고 했다. 출판사가 외부 디자이너에게 돈을 빌려준 점, 전문가가 아닌데도 거액을 지급한 점 등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의 측근인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인세로 책정된 돈) 1억 원은 문다혜 씨가 아니라 (저자인) 문 전 대통령이 받은 돈"이라며 "이 돈은 문다혜 씨 통장으로 입금된 후, 문 전 대통령께 다시 송금됐다"고 해명했다.
이어 "전체 금액 중 상당 액수는 문다혜 씨와 출판사 측 관계자 사이에 발생한 사인 간 채무"라고 했으나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았다. 다혜 씨가 굳이 1억 원의 인세를 받아 문 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을 두고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퇴임 후 잊힌 삶을 살겠다"고 공언한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평산마을에 책방을 열겠다고 밝혔을 때부터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선 것이라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해양수산부 공무원 월북 조작 사건,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등에 대한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는 상황에서 책방을 구심으로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됐다.
실제로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SNS를 통해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문 전 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두고 '관종 정치', '훈수 정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5년간의 실정으로 비판받은 전직 대통령이 현 정부를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이에 대해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문 전 대통령은 '나라 혼란' 운운하며 윤석열 정부를 비판할 자격조차 없다"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사람이 무슨 낯짝으로 '정치 보복'을 운운하는 것인가. 양심이 마비됐더라도 최소한의 염치라도 있어야 한다. 국민 앞에 엎드려 사죄하고 반성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 대표가 문 전 대통령을 예방한 것에 대해 "여러 의혹에 수사와 재판으로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그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불복하기 위한 사법리스크 '방탄 동맹' 빌드업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며 "과거 문 전 대통령께서 한 말 그대로, 그냥 법대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도 문 전 대통령을 향해 "소득주도성장을 통한 경제 파탄, 원전 생태계 파괴, 그리고 외교 파탄, 재정 파탄을 냈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문 전 대통령이 전날 이 대표를 만나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 집권해 나라를 엄청나게 혼란으로 몰고 가고 국민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고 말한 데 대해 대통령실이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단 그런 공격을 하기에 앞서 전 정권 스스로가 자신을 좀 되돌아봐야 하지 않나 생각을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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