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국가들의 과도한 '친환경 이상주의' 정책이 역내 굴지의 기업들마저 궁지로 내몰고 있다. 각국 정부가 재정 적자에 친환경 보조금을 줄이거나 폐지하자, 정부 정책 지원 의지를 믿고 친환경 전환 드라이브를 걸었던 기업들이 낭패를 본 것이다.
세계 2위 자동차 제조사 폭스바겐그룹은 87년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 내 일부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볼보도 '2030년 100% 전기차 전환' 목표를 불가피하게 연기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두 유력 후보 모두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 전기차뿐 아니라 친환경 스타트업들도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으면서 도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 정책에 기업들이 휘둘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기 지도부 비전으로 '재생에너지 투자 카드'를 꺼내 들었다. 외국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 상황에서 오롯이 포퓰리즘에 갇혀 미국과 EU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전국을 '파업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며 경제계가 반대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과 재정 적자를 유발할 수 있는 양곡법 개정안 등도 의석수를 앞세워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현실을 무시한 '반시장 정책'이 한국의 성장 동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7일 외신 등에 따르면, 지난 2일(현지시각)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CEO는 성명을 통해 "자동차 산업이 몹시 어렵고 심각한 상황에 부딪혔다"고 밝혔다.
폭스바겐은 독일 내 완성차·부품공장을 각 1곳씩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룹 경영진은 인력 구조조정도 시사했다. 현재 폭스바겐의 독일 직원 수는 30만 명에 달한다. 현지 매체 '슈피겔'은 이번 결정으로 독일에서 약 2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폭스바겐이 내놓은 이번 강경 조치는 독일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보조금 정책에 기인한다.
독일은 전기차 보조금을 5625~9000유로에서 지난해 4500~6750유로로 축소했다. 올해에는 4만유로 이하 전기차만 4500유로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예산 부족'을 이유로 업계 전망보다 약 1년 이른 지난해 말부터 보조금 제도가 전격적으로 폐지됐다.
보조금 제도가 유지됐을 당시만 하더라도 폭스바겐은 글로벌 톱티어 제조사 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전기차 전환 정책을 선언한 업체였다.
2030년까지 유럽 판매량의 80%를 전기차로 채우고, 북미에서도 전기차 비중을 55%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배터리 자회사 '파워코'를 설립하는 등 전기차 플랫폼과 배터리 사업에 대규모 투자도 강행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시장 전환은 빠르지 않았다. 전기차 보급이 빠른 중국에서는 폭스바겐 대신 자국 브랜드를 선택했다. 코로나19 이후 수입차를 배척하는 중국의 '애국 소비' 경향이 뚜렷해진 영향도 작용했다.
폭스바겐의 중국 판매량은 2019년 연 420만 대를 정점으로, 2023년에는 320만 대까지 하락했다. 올 상반기에는 이보다 7.4% 줄어든 134만 대가 팔렸다. 하반기에는 상반기와 비슷한 수준의 판매량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전년 대비 15% 이상 감소가 예상된다.
스웨덴 자동차 제조업체 볼보도 2030년까지 모든 차종을 배터리로 구동되는 순수전기차(BEV)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철회했다. 2021년 목표를 제시한 이후 약 3년 만이다. 대신 자사 차량의 10%는 하이브리드(가솔린+배터리) 차량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볼보 측은 "시장과 인프라, 고객의 인식이 이를 따르지 못한다면 (계획을) 몇 년 더 미룰 수 있다"고 밝혔다. 전기차 수요 위축으로 당장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드러낸 것이다. 스웨덴도 지난해부터 보조금 지급을 폐지했다.
미국의 포드도 지난달 21일 애초 예정했던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개발을 취소하고, BEV에 대한 연간 자본 지출 비율을 40%에서 30%로 축소하기로 했다.
◆美 대선 레이스서도 친환경 정책 '거리두기'
미국 대선 레이스에서도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 모두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에 선을 긋고 있다.
지난 4일 폭스뉴스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측은 "전기차 의무화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냈다.
2019년 상원의원 시절 '2040년까지 미국 내 신규 자동차 100%를 온실가스 배출 없는 차량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공동 발의한 해리스 부통령으로서는 일종의 정책 후퇴를 발표한 것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도전했을 때도 2035년을 목표로 '탄소 배출 제로 차량 100%' 공약도 냈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계속해서 전기차 확대 정책에 대한 비관적인 견해를 내고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내가 당선되면 폐기할 것"이라는 공약도 발표했다. 특히 지난 6월에는 기자들에게 "전기차 의무화는 미친 정책이다. 미국을 망칠 것"이라며 직설적인 비판을 이어갔다.
전기차만 문제가 아니다. 미국 친환경 기술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파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고금리와 업계 내 경쟁 심화, 정부 지원 지연 등이 한꺼번에 작용하면서 타격을 받은 것이다.
블룸버그통신 집계 결과, 부채 5000만 달러 이상 기업 가운데, 올해 들어 지금까지 파산 신청한 재생에너지 기업은 4곳이다. 2014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많은 수준이다. 파산 신청은 하지 않았지만 경영이 어려운 기업도 많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3년만 하더라도 벤처기업 등으로부터 쉽게 자금을 조달받은 신생 친환경 기술기업들이 최근에는 현금 확보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엘리스'의 친환경 분야 공동책임자인 아라쉬 나자드는 "초기 창업 단계 기업이 민간기금 모금 과정에서 대규모로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기후 관련 기술이나 에너지 전환 분야가 자본 부족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금 흐름을 조달할 분명한 방법도 없이 수입보다 비용을 많이 지출하는 한계 기업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제 정세 무시한 이재명표 '재생에너지 집중 투자'
이처럼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 정책이 오히려 기업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나타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에 대한 국내 정치권과 재계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앞서 이 대표는 "경기 침체인 지금이 바로 국가가 투자할 때"라며 "시급한 재생에너지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해당 발언은 지난 7월 대표 연임에 도전하면서 내세운 '먹사니즘'(먹고사는 민생 문제 해결)의 연장선상으로 나온 것이다.
그는 지난달 당 대표 2기 수락 연설에서 '멈춰 선 성장'의 원인을 기후변화와 글로벌 경기 침체, 국가 간 대립 격화, AI(인공지능)와 에너지 전환 등 '대전환의 시대'를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지속 성장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겨울에 밀짚모자를 사는 것처럼 '재생에너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RE100(재생 에너지 100%) 보편화 등 재생에너지 투자를 국가가 집중하면 지방 소멸과 지방 공동화에 대응하는 신산업, 신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앞선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 바통을 물려받은 모습이다.
극심한 기후 변화로 인해 재생에너지 투자 필요성은 시대적 흐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상주의'에 매몰된 친환경 정책의 역효과가 드러나는 현시점에서, 재생에너지 투자만으로 '장기 저성장의 돌파구'를 찾는다는 것은 안이한 발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1당의 대표가 제시한 '비전'을 경제적 의미만으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이 대표가 포퓰리즘에 몰두하며 뻔히 보이는 결과의 쓰나미를 모른 채 넘어갈 수 없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크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앞선 문재인 정부에서는 탈원전 등 재생에너지에 몰두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국제적으로 재생에너지 전환의 물결이 크게 일고 있었다"며 "하지만 결국 문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물며 국제적으로 리세션(recession·경기 침체)으로 인한 친환경 정책의 후퇴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 대표의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정책은 더욱 우려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뿐만 아니라 야당에서는 제21대 국회에서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양곡법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양곡법 개정안은 쌀값이 폭락하면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사들이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전 개정안보다 다소 완화됐지만, 농촌 발전의 근본적 대책 마련이라기보단 '현금 퍼주기'에 초점을 둔 포퓰리즘이라는 우려가 크다.
야당은 쌀값 안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양곡법 개정안으로 농가에 현금을 지원하면 이미 공급 과잉을 겪는 쌀의 생산을 부추기면서 '재정 악화'를 유발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고물가 상황에서 내수 경기를 살리겠다며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을 제22대 국회에서 처리할 1호 법안으로 공언한 상태다. 해당 지원법을 실현하기 위해선 최소 13조 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이미 대한민국의 국가 채무는 1000조 원을 돌파했다.
이에 대해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민주당의) 포퓰리즘 법안과 각종 규제 악법은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며 "(여야 모두) 시장경제에 입각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09/06/20240906002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