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ID/PW 찾기
아직 회원이 아니신가요? 회원가입 하기

‘잉어배미’ 없앤 충북도청, 그 자리에 주차타워?

profile
설윤수호

‘잉어배미’ 없앤 충북도청, 그 자리에 주차타워? [전국 인사이드]

n.news.naver.com

한국은 서울보다 큽니다. 전국 곳곳에서 뉴스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지역 언론인들이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소식을 들려드립니다. ‘전국 인사이드’에서 대한민국의 가장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나무를 베거나 옮겨 심고 연못을 메운 충북도청의 서쪽 정원. 잔디를 깐 광장이 됐다. ©이재표 <미디어 날> 공동대표원본보기

나무를 베거나 옮겨 심고 연못을 메운 충북도청의 서쪽 정원. 잔디를 깐 광장이 됐다. ©이재표 <미디어 날> 공동대표

“그런다고 그 물이 맑아지나? 여기가 원래 아무리 가물어도 논바닥이 마르지 않는 ‘잉어배미’였다니까. 이게 연못이 아니라 옛날 논에 있던 둠벙(웅덩이)이야.”

충북도청 본관 앞 동서 정원에 있는 연못을 두고 ‘문화동 터줏대감’들이 입에 달고 사는 소리다. ‘배미’는 논을 일컫는 말이니 잉어배미는 잉어라는 이름을 가진 논이다.

이원종 전 충북도지사(민선 2·3기)는 이 연못의 수질을 관리하기 위해 측근들에게 특명을 내렸다. 황토를 뿌리고 수초도 심었다. 그것도 모자라 바닥에 커다란 천을 깔았지만 뿌연 흙탕은 가시지 않았다. 이시종 전 충북도지사(민선 4·5·6기)는 동쪽 정원 연못에 ‘영충호(嶺忠湖)’라는 거창한 이름을 짓고 푯말까지 세웠다. 중의법을 써서 이름이라도 호수로 격상시킨 건데, 충청 인구가 호남을 앞섰다는 자부심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다.

1937년에 지은 충북도청 본관은 2003년 6월 등록문화재 55호로 지정됐다. 무논을 메우고 도청 터를 닦기 위해 청주향교 앞 우암산 자락을 깎아 흙을 퍼왔다. 산을 절개한 자리에는 2년 뒤 도지사 관사를 지었다. 그러니 그때 논에 있던 둠벙 두 개가 그대로 연못이 된 셈이다. 말이 연못이지 동쪽 연못은 222㎡, 서쪽 연못은 149㎡ 크기로 그리 넓지 않다.그런데 지난해 9월 서쪽 연못이 사라졌다. 충북도가 청주 상당구의 서문대교와 삼겹살 거리, 성안길을 건너서 충북도청, 당산, 청주향교, 우암산에 이르는 원도심 축을 느닷없이 ‘문화의 바다, 항로(航路)’라고 부르더니 일어난 일이다. 도청은 항구이되, 긴 세월을 거치며 울창해진 도청 앞의 숲은 암초라고 생각한 걸까? 도청 주변을 둘러싼 향나무 울타리를 베어내고 도청 전체를 하나의 광장으로 만들더니 정문과 진입로로 양분돼 있던 동쪽 정원(2440㎡)과 서쪽 정원(1480㎡)를 합치는 정비사업이 향후 몇 년간 계획돼 있다. 그 과정에서, 먼저 서쪽 정원의 나무들을 뽑거나 옮겨 심고, 서쪽 연못도 메운 것이다.

사라진 것은 무궁화·향나무·수수꽃다리 등 잡목·관목으로 분류한 수십 그루의 나무와 연못만이 아니다. 숲이 변해서 생긴 잔디가 듬성듬성한 광장에는 새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범찬 충북도 회계과장은 “도청 내 차량이 엉키지 않도록 정문을 동쪽 귀퉁이로 옮기고, 일방통행 등으로 차량 흐름을 개선한 뒤 350면 주차타워를 겸한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의 후생관을 짓겠다”라고 밝혔다.
 

도민에게 도청을 돌려주는 방식



도청 정문을 옮기는 과정에서 이제 동쪽 정원도 웬만한 나무들을 옮겨 심고 관목·잡목으로 분류한 것들은 베어낼 계획이다. 이범찬 과장은 “기념식수 등으로 무분별하게 심은 나무들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령이 100년 정도로 보이는 느티나무는 베어서도 안 되고 옮겨 심을 수도 없어서 정문 진입로가 조금 굽게 됐다. 그래서 동쪽 연못도 면적이 조금 줄어들 수밖에 없다.”

1937년에 세운 도청 본관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연못도 검토했지만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드시 보존할 필요는 없다는 이유도 댔다. 이 과장은 “동쪽 연못은 도청 건립 당시부터 있었던 듯한데 모양은 변형됐을 가능성이 크고, 이미 메운 서쪽 연못은 1972년 서관을 지을 때 팠다는 설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김영환 지사는 도민에게 도청을 돌려준다고 했다. 돌려준다니 고마운 일인데, 소통 방식은 낯설고 거칠다. 나무 그늘과 새소리, 그리고 문화동을 흐르던 ‘잉어배미의 구전(口傳)’도 돌려받을 수 있으려나.

 

댓글
0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