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가 이렇게 공허했던 적이 있었나. 방통위원장으로서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시작 전부터 예고됐다. 청문회를 앞두고 야권 위원들을 중심으로 후보자에 대한 외모 폄하,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는 망신 주기, 기자로서 일할 때 출입처와 갈등이 있었다는 식의 명예훼손을 서슴지 않았다.
야권 입장에서는 후보자에 대한 탄핵이 답은 정해져있고 상대방은 대답만 하면 되는 ‘답정너’이기 때문이리라. 방통위원장으로서 임기를 시작도 전에 탄핵이라는 결과가 정해졌다. 탄핵 정국을 자처한 것은 야당인데 왜 방통위원장과 후보자가 계속 낙마해야 하는가.
청문회는 후보자 신상을 탈탈 털고, 개인 SNS에 작성한 글과 ‘좋아요’를 검증하며,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했는지 여부에만 초점을 맞춘 겁박과 호통식으로 일관됐다. 탄핵 이전에 ‘자진사퇴’라는 또 하나의 답정너를 요구하는 자리인 것이다. 위원장 임명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고, 청문회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야권은 신경전과 고성으로 얼룩진 청문회를 이틀로도 모자라 사흘째 이어간다. 장장 30시간을 후보자 흠집내기와 꼬투리 잡기로 일관한 후에도 더 해야할 질의가 남았다는 것이다. 자녀 입학과 출입국 기록, 주식 등 자산 매매자료 제출을 요구했는데 아직 받지 못했다는 이유다.
1년간 현 후보자를 포함해 세 명의 방통위원장이 탄핵에 휩쓸리면서 방통위는 식물조직이 됐다. 대통령의 후보자 임명과 인사청문회, 탄핵 추진과 자진사퇴로 이어지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안정한 정국이 지속되면서 현안을 헤쳐나갈 동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야당 위원들은 이상인 부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며 기어코 ‘0인 체제’ 방통위를 만들었다. 직무대행으로 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공영방송 이사선임 관련 행정절차를 진행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 직무대행도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 직전에 자진사퇴 했다.
야당은 방통위법 개정안도 본회의에 상정했다. 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 구성된 2인 체제는 바람직하지는 않아도 위법하지 않으니, 이제는 불법으로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개정 방통위법의 골자는 회의 개의 조건을 4인 이상 위원 출석으로 못 박았다.
야권의 잇따른 탄핵소추와 법안 개정은 방통위 업무를 중단시켜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을 막겠다는 의도다. 공영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을 논의하면서도 ‘내편’이 아닌 ‘네편’을 드는 인사는 못 봐주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여야 정쟁 속에 방통위는 ‘통신’이 빠진 방송위원회로 전락했다. 단통법 폐지는 물론 AI 기본법과 인앱결제 제재 등 시급한 현안은 뒤로하고 방송에만 몰두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일인지 의문이다. 국회 상임위원회인 과방위도 방송과 과학기술을 따로 두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급변하는 IT 시대에 가장 중요한 정책 현안은 뒤로 밀리면서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는 파장이 우려된다. 강대국들은 AI를 선점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에 나서고, EU는 미국 빅테크 AI 종속을 막기 위해 AI 법안을 마련했다. 방통위가 정쟁의 큰 수렁에 빠져 있어 첫 삽조차 못뜨는 상황에 참담한 심정이다. 국가의 미래가 폭주하는 야당과 권력의 제물이 되고있는 셈이다.
막장 청문회와 개점휴업한 방통위를 보며 국민 억장은 무너지고, ICT 업계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소모적 정쟁을 그만두고 화합하기에는 갈등이 너무 깊어진 걸까. 방통위가 본연의 업무를 다 하기 위해서라도 탄핵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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