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개발과 강남스타일에 넘어진 부산 엑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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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 리야드에 밀려 엑스포 유치에 실패했다. 유치위 관계자들은 자금력에서 밀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스스로 자초한 악조건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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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29일 부산의 2030 엑스포 유치가 실패한 뒤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2022년 이태원 참사 때 이후 13개월 만이다. 2023년 11월29일 “엑스포 유치를 총지휘하고 책임을 진 대통령으로서 부산 시민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드린 것에 대해 정말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와 부산시는 엑스포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대통령과 정부 각료, 대기업 총수가 지구 수백 바퀴를 돌았다고 홍보했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엑스포에 배정한 예산은 5744억원. SOC 조성, 해외 협력 사업, 국내외 홍보 등에 들어갔다. 부산시 곳곳에 홍보대사 이정재씨의 광고물이 붙었다. 언론은 “51:49” “박빙 승부” 따위 유치위 관계자들의 말을 받아썼다. 결과는 119표를 얻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압승. 부산은 29표에 그쳤다. 유치 경쟁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알려진 이탈리아 로마(17표)와 별다른 격차가 없었다. 결과만 봐도 참담한 외교 실패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과정은 그 이상으로 나빴다.
사우디가 어려운 경쟁 상대인 점은 모두 아는 바였다.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갖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가 사우디를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다. 2017년 실권을 잡은 빈 살만 총리는 정적과 언론 자유를 탄압하는 한편,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바꾸고 여성 운전과 참정권을 허용하는 등 사회개혁 프로젝트도 꾀하고 있다. ‘네옴’을 필두로 한 엄청난 규모의 도시 건설 프로젝트도 2030년 완공이 목표다. 사우디로서는 2030년 엑스포가 자국의 번영과 변화를 동시에 선전할 기회인 셈이다. 왕족과 정부 각료들이 적극 유치 활동을 벌였고, 이미 2022년 여름께 사우디 언론은 “리야드가 70개국 이상의 지지를 약속받았다”라고 보도했다.
유치 경쟁 과정에서 부산이 유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권 정치인들은 이전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탓했다. 그러나 유치 실무에 밝은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부산이 ‘후발 주자의 어려움’을 겪었다는 주장은 절반만 사실이다. 전임 정권 때 엑스포 유치 경쟁이 그리 힘을 받지 못한 것은 맞다. 그런데 이 관계자는 원인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기업의 태도에서 찾았다. “2012 여수엑스포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명예 위원장을 맡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적극적으로 뛰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부산엑스포 유치위원장은 김영주 전 무역협회장이 맡았다. 김 회장 선임 자체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주요 대기업에서 맡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유치위의 협조 요청도 원활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들었다. (차기 정부 태도에 따라 엑스포 유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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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29일 2030 엑스포 개최지로 선정된 사우디아라비아 대표단이 환호하고 있다.©AP Photo
윤석열 후보는 부산엑스포 유치 적극 지원을 공약으로 걸었다. 판세가 불리하지만 일단 뛰어들고 역전을 노린다는 게 이 정부의 전략이었다. 당선자 신분이던 2022년 4월22일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30 부산엑스포 유치 기원대회’에서 “부산엑스포 유치를 국정과제로 직접 챙기고, 새 정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정부는 2022년 2516억원, 2023년 3228억원을 예산으로 편성해 합계 5744억원을 엑스포 유치 활동에 썼다.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이 직접 나서는 유치 활동이 시작됐다. 윤 대통령은 2023년 6월2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직접 엑스포 부산 개최를 역설했다. 민간유치위원장을 맡은 최태원 SK회장을 필두로 대기업에서도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각국의 지지를 모으려 했다.
‘돈’뿐 아니라 화제성도 밀렸다
국제박람회기구 총회 투표는 무기명이다. 투표가 끝난 지금도 구체적 표심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한국의 전략이 틀렸는지, 어떤 지점에서 실패했는지 평가하기가 어렵다. 정부와 대기업의 공격적 설득이 역효과를 불렀다는 일각의 주장도 검증할 수 없다. ‘유치 활동 덕에 29표라도 건졌다’는 반론도 마찬가지다.일단 ‘돈에서 밀려서 졌다’는 게 정부와 유치위에서 꾸준히 흘러나오는 해석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리야드가 선정된 후 파리 현지에서 “오일머니를 앞세운 경쟁국의 유치 활동에 대응이 쉽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엑스포 유치위 자문단의 김이태 교수(부산대 관광컨벤션학과)는 이날 “(사우디가) 10조원 이상의 투자를, 저개발 국가에 천문학적 개발 차관과 원조 기금을 주는 역할을 하면서 금전 투표가 이뤄졌다”라고 주장했다. 어떤 이들은 ‘오일머니’라는 말에 외부의 통제 없이 자의적으로 쓰이는 쌈짓돈이라는 뜻까지 넣어 쓴다. 2022년 한 유치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우디는 수십억, 수백억, 수조 원을 어렵지 않게 쓸 수 있다. 우리나라는 단 한 푼도 통제 없이 쓸 수 있는 돈이 없다. 어느 나라 가서 ‘이거 줄게, 이렇게 해줄게’ 쉽게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교섭 과정에 어려움이 있다.”
사우디가 부국이고, 자금 운용이 불투명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면 ‘졌지만 잘 싸웠다’고 평가해도 될까? 유례없는 자금력을 마음껏 휘두르는 독재자가 상대였기에 불운했을 뿐, “경제·문화적으로 발전된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한국경영자총협회의 평가)를 성과로 보고 위안 삼아도 괜찮을까.
금권 선거만 탓하기엔 걸리는 대목이 있다. 부산은 화제성에서도 졌다. 종교가 공통분모인 중동 국가나 자금력이 급한 저개발국뿐만 아니라, 서구 언론의 관심이 리야드에 더 쏠렸다. 유치 경쟁 기간 사우디가 메가 이벤트를 개최하기에 적절한 장소인지, 빈 살만 왕세자의 행보가 어떤 의미인지 등을 두고 외신 보도가 잇따랐다. 하지만 부산의 엑스포 캠페인에 대해서는 보도량 자체가 무척 적었다.
2023년 8월 영국 인터넷 매체 〈디 아티클〉의 ‘세 도시 이야기:2030년 엑스포’는 엑스포 개최 후보지에 대해 상세하게 풀어쓴 몇 안 되는 기사 중 하나다. 리야드·로마·부산이 어떤 도시인지, 각국은 어떤 장단점이 있고 그 지도자들은 어떤 정치적 상황에 놓여 있는지 다뤘다. 〈더타임스〉 편집장 출신인 영국 언론인 대니얼 존슨이 썼다. 기사 논조는 중립적이지 않았고 분량도 세 도시에 불평등하게 할애됐다. 존슨은 리야드에서 개최되는 엑스포는 “재앙”이라며, 11문단에 걸쳐 비판했다. 사우디에 대해 알려진 사실 거의 모두를 도마 위에 올렸다. 세계 5위까지 올라간 국방비 지출은 정권의 불안정성을 의미한다고 썼다. 사형과 고문 등 야만적 사법제도와 2018년 암살된 반정부적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일을 꼬집었다. 사우디 문화는 여전히 여성혐오적이며 네옴 건설 계획은 신기루에 불과하다고 적었다. 반면 부산에 대해서는 단 3문단만 썼다. 모두 잼버리 이야기였다. 파행으로 끝난 2023년 여름 잼버리 사건을 설명한 뒤 이렇게 적었다. “스카우트 단원 4만3000명도 관리하지 못한 한국이 그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막대한 인파를 수용하길 기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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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6일 윤석열 대통령(왼쪽 네 번째)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 두 번째) 등 기업 총수들과 함께 부산 중구 깡통시장을 방문했다. ©연합뉴스
잼버리로 깨진 국제사회의 신뢰를 만회할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로마 역시 최근 쓰레기 처리 시스템이 망가져 도시가 붕괴된 수준이라고 기사는 지적했다. 그럼에도 “독특한 역사를 살려 인문학적 가치의 등불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간다”라고 썼다. 엑스포는 상업적 행사이지만 동시에 “인권과 인간적 가치, 실용적 경험과 기술적 역량, 윤리적 진실성과 미적 상상력 등이 모두 중요하다. (중략) 로마는 리야드·부산과 대조적으로 고대와 근대의 인간성을 대표한다”라고 썼다. 대통령의 영어 연설이나 재벌의 해외 영업 외에, 국가 이미지를 살려 오일머니에 대적할 방법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최근 한국은 소프트파워 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유치 과정에서 문화적 자원은 허비되었다.
“부산에서 하는데 강남스타일 웬 말”
정부와 유치위의 ‘미적 상상력’은 연예인을 동원하는 데 머물렀다. 2023년 11월28일 최종 프레젠테이션 영상의 배경음악은 가수 싸이의 2012년곡 ‘강남스타일’이었다. 아이돌그룹 멤버들과 배우 이정재 등이 돌아가면서 “유일한 선택(Only one choice)”이라고 말하며 영상은 끝난다. 최종 프레젠테이션은 길었다. 연사 5명 중 4명(한덕수 국무총리, 박형준 부산시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60~70대 남성이었다. 사우디는 최종 프레젠테이션 연사 2명을 여성으로 세웠다.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실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영상과 지난 6월 4차 프레젠테이션 영상 제작에 총 53억원을 들였다.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 이보름 간사는 “표 차이가 너무 커서 허탈해하는 사람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런데 결과가 나오기 전 광고 영상을 접할 때부터 ‘부산에서 하는데 강남스타일이 웬 말이며 연예인으로 이렇게 계속 홍보를 하는 게 맞느냐’는 반응들은 꾸준히 나왔다”라고 말했다.
유튜브 등 온라인 일각에서는 ‘연예인이 아니라 부산 홍보를 우선시했어야 한다’고 비판한다. 부산의 현실을 잘 아는 지역 시민단체에서는 냉소적 반응이 나온다. 부산엑스포의 주제는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 부제는 ‘자연과 지속 가능한 삶·인류를 위한 기술, 돌봄과 나눔의 장’이다. 그러나 부산은 ‘엑스포 관광객이 찾을 랜드마크’라는 이유로 개발 계획을 밀어붙여왔다. 황령산 정상 전망대와 케이블카 설치 계획이 일례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엑스포 주제와 부산의 현실이 상충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엑스포 유치위는) 지속 가능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엑스포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그렇지 못하고, 부산도 전혀 그와 일맥상통한 정책이나 사업이 없다. 건축 규제를 풀고 난개발이 이보다 심할 수 없다. 설득력이 안 생긴다.”
12월1일 박형준 부산시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유치 실패를 사과한 뒤 “공론화를 통해 시민 의견을 모으고 2035년 엑스포 재도전을 합리적으로 검토해보겠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월6일 정부·지자체 관계자와 기업인 100여 명과 함께 부산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부산시민의 꿈과 도전 격려 간담회’를 열었다. “이번 유치 경쟁으로 전 세계에 ‘부산 이즈 레디(부산은 준비됐다)’ 구호가 알려졌다. (중략) 부산을 글로벌 거점도시로 키우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은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떡볶이를 먹었다.
상식적으로 부산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