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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은 비겁하다··· 한동훈에 '뉴 국힘' 맡기고 전권 줘라 [이양승 칼럼]

뉴데일리

<한동훈에게 맡길 거면 모든 걸 맡겨라!>

총선을 앞둔 상황이다. 지금 한국 우파 진영에 꼭 필요한 게 뭘까? 바로 ‘전략’이다.

무조건 덩치를 키우는 게 ‘필승공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 어리석음에 아연할 뿐이다. 전투는 머릿수로 하는 게 아니다. 투지로 하는 거다. 투지가 있고 난 다음 기세가 있어야 한다. 그다음 수적으로 우세하면 그게 ‘필승공식’인 것이다. 투지를 다지려면, 싸울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그래서 명분을 찾는 것이다.

국민의힘에 묻자. 무엇을 위해 싸우고자 하는지.

■ 조선시대 노비제도가 남긴 못된 문화 DNA

누가 봐도 지금 한국 좌파는 입에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정상이라면 명분 면에서 우파가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다.

그런데 우파는 왜 고전할까? 좌파는 ‘조자룡의 헌 창’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선동]이다.

뻔한 술수이지만 "못 살겠다 갈아엎자!"고 외치면, 무조건 반은 먹고 들어간다. 궁핍에 따른 [피해의식]과 [증오심] 때문이다. 좌파를 살찌우는 두 영양소다.

우파는 그 ‘헌 창’조차 없다.

가난은 상대적이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부자를 보면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낀다. 상대적 박탈감이다. 이론화 해보면, 그 나라의 가장 큰 부자 빼고 어느 누구도 그 박탈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좌파의 선동이 먹히는 이유다.

특히 한국 민심은 좌파지향적이다. 좌파는 그 이유를 식민지 경험에서 찾는 것 같은데, 실은 한국인 DNA다.

그 DNA는 조선 시대 노비제도 때문에 만들어졌다. 그 사실을 외면하는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은 비겁하다. 그리고 사치스럽다.

■ 게임이론에서 본 한국정치 판

게임이론 시각에선, 선거전이 다가오면 각 정당은 ‘안 하던’ 짓을 하게 된다. 바로 ‘중간 따라잡기’ 즉, ‘중도’를 지향하는 전략이다. 게임이론에 ‘중위 투표자 정리’가 등장한 이유다.

총선을 앞두고 한국 우파는 자중지란에 빠진 모습이다. 바로 ‘중도’를 외치는 이들 때문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 법하다. 하지만 그 ‘말’을 외치는 이들의 ‘행동’을 봐야 한다. 우연 같아도 대부분 ‘내부총질’을 해오던 이들이다. 배신 전력까지 있다.

그런 이들이 말하는 ‘중도’ 전략은 허구다. 차라리 허구면 다행이다. 실은 기만술이 아닐 수 없다.

동서고금 진리다. 간신들은 제 잇속만 생각한다. 그 잇속을 영원히 누리려면, 권력의 ‘항상성’이 필요하다. 나라를 팔아먹는 한이 있더라도 그 누군가에게 내부총질 유인이 ‘항상’ 존재하는 이유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 손권의 육손, 윤석열의 한동훈·지금 난국을 돌파하려면, 국힘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오나라 손권은 젊은 나이에 아버지와 형이 일군 나라를 물려받고 고민이 깊었다. 특히 노신들의 투정질은 치매만큼 고약했다. 대개 제 밥 위에 콩이 작다는 이유였다.

나라를 걱정했던 이들은 젊은 육손을 제갈량처럼 높이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만한 인물이 없었다. 손권이 육손을 불러 일을 맡기자, 그는 거절했다. 그러더니 자신에게 맡기려면 전부를 맡겨달라고 손권에게 말했다. 육손은 그만큼 총명했다.

정치판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으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유인체계로 돌아간다. 그 체계를 돌리려면 어쩔 수 없다. 때로는 본 것도 못 본 척해야 하고, 들은 것도 못 들은 척해야 한다.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손권은 젊어 혈기왕성했지만 다스리는 법을 알았다. 육손의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손권은 노신들 보는 앞에서 보검을 빼 들더니 탁자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그리고 누구든지 말을 듣지 않으면, 그 보검으로 목을 먼저 치고 사후 보고해도 좋다며 육손 손에 보검을 쥐어 줬다.

인사는 만사다. 그 후 오나라는 육손 덕분에 전성기를 맞게 됐다. 오나라는 위나라의 백만대군을 맞아 화공을 통해 대승을 거두었다. 특히 육손의 지략이 빛났다.

■ 한동훈 반대하는 김웅의 속내는?

‘한동훈 비대위원장’ 말이 나오자 격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있다. 불을 비추면 벌레들이 움직이듯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는 격이다. 그게 바로 ‘판별법’이다.

어떤 이들은 한사코 정체를 숨긴다. 정체를 숨길수록 이윤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세작들이다.

내부총질도 괜히 하는 게 아니다. 얻어지는 정치이윤이 있기 때문이다. 얄팍한 구실로 포장하고 있지만, 그건 부당이윤이다. 노름판 개평보다 못하다.

게임이론은 정체를 밝혀내는데 기여할 수 있다. ‘메카니즘’을 통해서다. 즉, 어떠한 상황을 만들어 제시하면, 그 경기자는 최적 반응(best response)을 하게 된다.

김웅 의원(이하 존칭 생략)의 반응이 좋은 예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소리가 나오자 그는 ‘아바타’, ‘북한의 김주애’ 등 극언을 쏟아냈다. 누가 봐도 ‘오버’다. 언어도단이다.

김웅의 속내는 둘 중 하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 때처럼 권력 거간꾼 모리배들 중심으로 자유우파 진영 전부를 팔아먹기 위해 뭔가를 기획하고 있거나, 아니면 패배 공포감에 질려 있거나.

김웅은 후자인 척하겠지만, 실은 전자일 것이다. 정말 패배를 우려하고 있다면, 언론에 대고 그렇게 자극적인 단어들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어떨까? 그 모습은 처연해 보이지만, 이 경우에도 역시 결단이 필요하다.

명량 대첩을 생각해보자. 당시에도 겁에 질린 병사들은 많았을 것이다. <명량>영화를 보면, 적군의 규모를 보고 혼비백산한 한 병졸이 이순신 장군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떨며 넋두리 하는 장면이 나온다. 충무공은 그를 단칼에 참수했다. 사기 진작과 심리적 분발을 노렸다고 해석하는데, 실은 그 과감함엔 과학적 원리가 숨겨져 있다.

경제이론에서 말하는 ‘기대의 자기 실현성’ 때문이다. 말 그대로 기대는 스스로 실현될 수 있다. 모두가 패전을 예상하면 패전이 실현되고, 모두가 승리를 예상하면 승리가 실현된다. 둘 중에 하나다.

충무공이 병사들 보는 데서 그 겁에 질린 병졸을 참수한 건 인간애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이기기 위해서였다. 그런 게 전략이다.

■ 좌파에겐 관대, 우파에겐 앙칼진 그들

앞으로, 언론에 대고 패배를 쉽게 입에 올리는 이들은 패배를 바라고 있는 세작으로 규정해야 한다.

김웅은 비겁하다. 그는 땅 짚고 헤엄치는 방식의 선거전 빼고 좌파를 상대로 이렇다 할 전투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좌파에겐 관대하고 우파에겐 앙칼졌다. 정체감에 의문이 이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게 껌 씹듯 ‘패배’를 들먹이며 내부총질 할 만큼 한가한지 묻고 싶다.

정녕 당을 위한다면, 김웅 자신부터 ‘험지 출마’를 실천해보기 바란다. 자신의 고향 전남 여수 또는 순천에 가서 ‘바보 김웅’의 존재를 알리라는 것이다.비아냥이 아니다. 김웅 의원은 전주에서의 ‘바보 정운천’의 도전 정신을 배울 필요도 있다. 그게 명분에도 부합하고, 김웅 의원의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비대위 맡기고, 공관위 구성도 한동훈 주도로

현실을 말한다. 한국의 자유 우파를 이끌 인재는 한동훈 장관(이하 존칭 생략)밖에 없다. 이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 지지율을 보더라도 그렇다. 현실인 것이다.

한동훈도 각오를 다져야 한다. 정치 참여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면, 지략에 더해 담력도 필요하다. 꽃길만 기대하면 안 된다. 그 길은 가시밭길일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을 가야 한다.

문제는 유인체계다. 지금 ‘한동훈 비대위원장’ 말이 나오는 가운데 포인트는 이거다.

그에게 맡기려면 전부를 맡기라는 것이다. 비대위원장을 맡길 거면, 차후에 한동훈 주도로 공관위를 만들어 공관위원장까지 맡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라면, 총선 국면에서 집중력을 통해 최대한 역량을 발휘하게끔 한동훈 스스로 유인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연속성과 일관성을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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