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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각수 전 주일대사 "중국에 조용한 외교? 탈북자 북송 역효과 났다"

뉴데일리

항저우 아시안게임 직후인 10월10일 밤 중국 정부가 탈북자를 대규모로 강제 북송한 사건은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다. 북한인권단체들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진 11일, 기자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강연한다는 서울의 한 대학을 찾았다. 싱 대사에게 탈북자 강제북송에 대한 입장을 직접 물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답변을 듣지 못했다.

싱 대사를 초치하지 않은 외교부의 대응도 논란이었다. 박진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탈북자들이 강제북송돼선 안 된다는 점을 카운터파트인 왕이 중국 외교부장에게도 전달했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전·현직 외교부 관계자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대체로 "탈북자 강제북송은 조용한 외교로 다룰 수밖에 없으며, 중국은 탈북민의 난민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 북한 주민 2500만 명이 국경을 넘으면 중국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상 유지(status quo)를 고수할 뿐 대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탈북한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는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 의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중추국가(Global Pivotal State‧GPS)를 표명한 한국이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이유를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외교부 제1차관과 제2차관, 주이스라엘·일본 대사, 조약국장 등을 지내며 양자외교와 다자외교를 두루 섭렵한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떠올랐다. 일본 전문가, 국제법 전문가로 잘 알려진 신 전 대사는 인권 분야에도 활동 이력이 있다. 주유엔 대표부에 근무할 때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과 발전에 기여했고, 유엔 인권위원회(Commission on Human Rights)를 유엔 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uncil)로 업그레이드하는 유엔 개혁 과정에도 관여했다. 퇴직 후에는 북한인권시민연합(NKHR)과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등 북한인권단체에서 고문과 이사 등을 맡아 현장에서 활발히 목소리를 내왔다.

신각수 전 대사는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면서도 가치외교의 '일관성'과 '주인의식(ownership)' 부족에 아쉬움을 표했다. 중국의 신장 자치구 내 위구르족 인권 탄압에 대해 한 달 사이에 입장을 바꾼 것과 탈북민 강제북송 문제에 국제사회에서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 전 대사는 "가치외교를 추구하다 보면 단기적으로는 타국과의 충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트레이드 오프(trade-off)'를 해야 할 경우가 있다. 장기적인 국익을 위해 단기적인 국익의 손해를 감수해야 할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시행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단기적인 비용을 부담할 각오와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강제북송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중국에 직접 항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 전 대사는 "대통령은 외교의 최후 방어선이고 발언을 물릴 수 없기 때문에 중대한 사안이 아니면 직접 전면에 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경우는 가급적 피하되, 사안의 경중에 따라 외교부 장관이나 차관, 차관보, 대변인 등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기자는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신 전 대사를 만나 의견을 들은 뒤 4일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신 전 대사와의 일문일답.

- 지난 1년 반 동안 윤석열 정부가 가치외교를 잘해왔다고 평가하는가?

"가치외교를 내세우며 민주주의나 인권, 특히 북한인권 문제 등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로 나가고 있다. 내년에 개최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를 유치한 것은 가치외교의 성과다. 다만 한 달 사이에 중국의 신장 자치구 내 위구르족 인권탄압에 대해 입장을 바꾼 것은 '옥에 티'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는 결의안에 동의했지만, 유엔총회에서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51개국이 중국의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할 때 불참했다. 필요에 따라 어떤 때는 전진하고 어떤 때는 후진할 거면 처음부터 안 하는 게 낫다.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은 우리를 믿지 못하고, 대상국가인 중국은 계속 압박하려 하기 때문이다. 한중관계의 전체적인 틀 속에서 인권문제를 바라보면 우리의 외교 공간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중국인권 문제에 대한 다자 차원의 접근에 일관되게 참여하면서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이자 책임 있는 중견국가로서 그럴 책무가 있다'는 일관된 포지셔닝을 지속해야 한다."

-가치외교를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가치외교를 추구하다 보면 단기적으로는 타국과의 이익 충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트레이드 오프(trade-off)'를 해야 할 경우가 있다. 장기적인 국익을 위해 단기적인 국익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가치라는 것 자체에는 우리의 장기적인 국익이라는 관념이 있다. 우리가 처한 외교적인 여건 속에서 얼마만큼 가치외교를 추구할지에 대한 사전적인 판단이 있어야 하고, 그 한계(threshold)를 설정한 뒤 이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제사회의 여러 가지 활동에 유사입장국가들과 동참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가치외교 추진에는 시행과정에서 오는 단기적인 비용을 부담할 각오와 의지가 있어야 한다."

-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장기적인 국익은 무엇인가?

"국제사회에서 법치(rule of law)와 인권존중의 기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확산하면 우리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안보·경제적 생존에 유리한 여건이 만들어진다. 우리의 가치외교는 결국은 한미동맹, 한미일 3각협력 체제, 인도태평양 정책, 유럽연합(EU)·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협조를 원활하게 할 '윤활유'가 된다. 다만 장기적인 국익은 빨리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가치외교에 따르는 단기적인 손해와 장기적인 이익에 대해 잘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우리 대외정책 수행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은 국민과의 소통인데, 국민들을 이해시키고 납득시켜서 지지를 얻어내는 일련의 과정이 민주주의 국가의 중요한 대외정책 요소다."

-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중국의 북한이탈주민 강제북송 중단 촉구 결의안(대안)'이 통과됐는데."국회 결의안은 만시지탄이지만 잘 됐다. 북한인권문제에 관한 여야 대립이 이 건에 관해서는 초당적 대처로 완화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중국에 대한 우리 입장을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북한인권문제에 관해 북한의 변화를 촉진한다는 차원에서 초당적으로 협의하면서 진전되는 계기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협의하면 조금씩 공통분모를 넓혀가는 것이 가능하다. 대립이 아닌 대화로 우리 민족의 미래에 관련된 중요이슈에 서로 진지하게 임했으면 한다."

- 결의안에서 국회는 중국 정부에 탈북자를 난민 또는 현장난민으로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국제법상 국제난민법의 적용이라는 차원에서는 북한난민이 탈북자보다는 정확한 표현이다. 그러나 탈북민을 규정하는 것과 난민으로 규정하는 데는 장단점이 있다. 탈북자에게는 우리 헌법상 바로 한국 국적을 부여하고 우리와 외교관계가 있는 제3국에서 외교적인 보호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남북한 모두와 국교를 맺었지만, 기본적으로 '친북'인 중국은 탈북자의 우리 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에 탈북자를 북한난민으로 규정하면 우리 국내법상의 법적 의제(擬制)를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 북한난민이라 하면 '헌법상 우리 국민'이 아닌, '국적이 없는 난민'이기 때문이다. 난민협약상 여러 보호 조치의 대상이 되므로 긍정적인 면도 있다. 난민 지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본국에 귀환했을 경우에 정치적 박해를 받느냐이지만, 중국은 난민에 대한 보호조치를 부인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탈북자를 난민이 아닌 '월경자', 즉 '범법자'라고 규정하며 강제 북송한다. 난민 지위를 주장하는 탈북자에 대한 유엔난민기구(UNHCR)의 접견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 싱하이밍 대사 초치 문제를 비롯해 외교부의 대응이 소극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사안의 성격상 사실 싱 대사를 초치하는 것이 적절했다. 어려운 외교과제는 재외공관보다 본부에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베이징보다는 서울에서 대중(對中) 항의를 하는 것이 좋다. 수백 명에 달하는 탈북자가 국제법상 강제송환금지(non-refoulement)의 원칙에 명백히 위반해 집단적으로 강제 송환됐다는 점에서 중대한 외교 사안이며, 우리가 직접 당사자라는 점에서 항의에 무게가 실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싱 대사가 최근 외교적으로 문제 행동을 했다는 점이 고려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기자 註: 싱 대사는 지난 6월8일 저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성북구 중국 대사관저를 방문하자, A4 5장 분량의 원고를 꺼내 들고 15분 동안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을 비판했다. 싱 대사는 특히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서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이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베팅을 하는 것 같은데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고 역사의 흐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은 아마 반드시 후회(한다)"면서 한미연합훈련 중단까지 주장했다. 외교가에서는 외교부가 싱 대사를 사실상 '외교상 기피인물'(PNG, Persona Non Grata)로 지정하고 일절 상대하지 않는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 한국 정부의 '조용한 대중외교'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모든 외교활동을 공개적으로 할 수는 없지만, 조용한 외교라는 표현 자체가 부적절하다. 조용한 외교는 '중국에 항의하지 않고 중국의 처분을 기다린다'는 식의 결과로 나타났다. 오히려 중국에 '한국이 저자세를 취한다'고 해석할 여지를 줘 의도한 중국 태도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탈북자 문제를 주로 대북관계의 틀 속에서 자국의 이해에 맞춰 행동해온 중국이 우리가 조용히 접근한다고 해서 우리 편을 들어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중국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과 양자 차원에서 부딪히라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국제사회와 함께 다자차원에서 중국의 부당한 행위를 압박할 때 변화의 가능성이 생겨날 것이다."

- 최근 국정원이 문재인 정권 당시 외교부를 해킹한 주체로 중국 국가안전부를 특정했다. 그러자 현 외교부는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명확한 증거가 있다면 우리 입장을 분명히 얘기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게 맞다. 중국의 '내정간섭' 시도에 대해서는 강하게 나가야 한다. 증거가 발견될 때마다 강력히 항의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보다 훨씬 강한 중국 옆에서 살 수 없다. 우리보다 중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호주도 하는데 대한민국이 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물론 중국을 추궁할 만한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증거가 부족할 경우 중국에 우리가 역(逆)으로 당한다."

- 국정원은 또 중국 언론홍보업체가 국내 언론사로 위장한 웹사이트 38개를 개설해 친중반미 콘텐츠를 국내에 무단 유포한 정황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이에 외교부는 "유관기관 관련 보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국정원이 보도자료를 냈을 정도라면 구체적 증거가 확보된 만큼 외교부는 당연히 입장을 밝히고 '내정간섭'에 해당하는 조치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정부 차원에서 취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사실에 입각한 건전한 여론으로 작동하는 만큼, 이를 해하는 행위는 우리 국체를 흔드는 것으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법에 따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고 외교적 조치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 우리는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것 같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대우와는 전혀 비례성이 없다. 만약 일본이 탈북자를 강제북송했다면 매우 강경한 대응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도, 언론들도, 정부도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더블 스탠더드(double standard, 이중잣대)'가 있는 것 같다. 일본이 한국에 잘못된 행동을 하면 우리는 굉장히 강렬하게 반응하는 반면에 중국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일관성을 잃은 대응은 일본과 중국 양쪽 모두에 통하지 않는다. 우리가 강하게 항의하고 경고할 게 있으면 일본에든 중국에든 강하게 대응해야 하고, '이번에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외교적으로 고려한다면 양쪽 다 원만하게 대응하는 일관성이 필요하다."

- 국제사회에서도 외교부가 소극적인 것 같다는 비판이 많다. 황준국 유엔주재 대사도 "제3국에 있는 다수의 탈북자가 송환된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을 '제3국(the third country)'이라고 칭했다.

"정부 훈령에 따랐을 것이다. 원칙적으론 중국을 직접 언급했어야 한다. 중국이 국제법상 강제송환금지(non-refoulement)의 원칙을 대규모로 위반했는데도 너무 미약하게 대응했다. 직접 당사자인 한국이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중국을 직접 거명해 비판하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공론화도 잘 안된다. 지난 11월15일 유엔총회에서 통과된 북한인권결의안 관련 회원국 중에서 중국을 직접적으로 거론한 나라는 한 곳도 없다. 탈북자 문제는 우리 문제이므로 우리가 선도해야 한다. 중국을 거론한다고 해서 우리가 크게 손해 볼 것도 없다. 결국은 의지의 문제다. 북한 인권 문제를 얼마만큼 중시하고 해결에 힘을 쏟을 것인지, 그리고 우리의 자원을 얼마나 사용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 유엔총회에서 지난 11월 '탈북자 강제송환 중단'을 촉구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이 컨센서스(표결 없는 전원합의) 방식으로 통과됐지만, 결의안에는 '중국의 책임'이 명기되지 않았다.

"펜홀더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주도한 결의안이 표결보다는 컨센서스로 채택되는 걸 원하는 경향이 있고, 국가들은 유엔총회에서 상임이사국(P5)에 대해 '이름을 거론해 망신 주기(naming and shaming)'를 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추후 자국이 안보리에 결부됐을 때 피해를 볼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컨센서스를 얻는 것에 집착하다 보니 우리가 실제 결의를 통해 얻고자 하는 내용을 포기하는 것은 본말전도라 할 수 있다. 표결하더라도 북한인권을 개선하려면 중국의 책임을 직접 거론해야 한다. 표결에 의한 결의라고 해서 컨센서스에 의한 결의보다 그 중요성이나 가치가 덜하지 않다. 유엔 사무총장도, 유엔 난민기구(UNHCR)도 중국을 명시하지 않고 '국제사회(international community)', '모든 국가(all states)'라고만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시절에 유엔이 중국을 '이웃국가(neighboring states)'라고 지칭했던 게 제일 앞서 나간 것이다. 간접적이고 추상적인 비판만으로는 중국이 아프다고 느끼지도 않고 행동을 바꿀 동기도 생기지 않는다. 'G2로서 미국을 대체하겠다'는 중국의 이미지에 영향을 주지 않는데 중국이 움직이겠는가. 유엔 내 다양한 장에서 채택되는 결의에 중국을 언급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작용해야 중국의 행태를 바꿀 수 있다."

- 일부 시민단체들은 대통령이 탈북자 강제북송에 대해 직접 중국에 항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우 중대한 외교사안이 아니고서는 '외교의 최후 방어선'인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의 발언은 국가원수로서 무게를 가지기 때문에 모든 변수를 충분히 고려해 신중하게 행해져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경우는 가급적 중대 사안으로 한정하고, 사안의 경중에 따라 외교부 장관이나 차관, 차관보, 대변인이 나서야 한다. 필요하면 총리가 나설 수도 있다.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한정된 범위 내에서 세련된 방식과 정련된 내용으로 이뤄져야 한다."

- 장기적 국익을 위해 단기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면, 대통령이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은가. 대통령이 '일제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과 관련해 모든 화살을 맞은 이유는 국민들이 그 배경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제3자 변제안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국민 소통에 나섰어야 했다. 1965년에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기 전날에 박정희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했던 것처럼,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고 제3자 변제안을 추진하는 배경과 의미에 대해 국민들을 직접 설득한다면 플러스 요소가 됐을 것이다. 국민들은 한일 국교 정상화나 제3자 변제안을 추진하는 배경을 잘 모른 채 눈앞에 나타나는 현상에 반발하기 쉽다. 국민들에게 '이런 점 때문에 결단했으니 이해하고 지지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정책에 대한 집행 여건을 개선하고 결단의 기대효과를 높일 수 있다. 모든 외교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국내 정치적인 부담을 대통령 혼자 지게 해선 안 된다. 외교부 등 관련 부처에서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다만 국내청중을 대상으로 한 것과 해외청중을 대상으로 한 것은 구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내청중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대외적인 영향이 있다면 더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제3자 변제안은 한일관계의 기본 틀에 관련된 사안이므로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 이해를 호소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강제북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유엔,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과 연계 플레이를 해서 중국을 압박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탈북한 사람도 북송해버리는 정권이었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크게 진전되지는 않은 것 같다. 정책 방향은 선명하게 제대로 내세웠지만, 실제 실행 면에서는 여전히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권은 바뀌었고 북한인권정책도 바뀌었지만, 실행을 담당할 실무진 레벨까지 충분히 바뀌었다고 하기는 힘들다. 다시 말해 현실적으로 정부 정책이 바뀌는 단계까지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북한인권결의에 중국을 명기해야 한다. 총회, 안보리, 인권이사회 등 관련 유엔기관에서, 그리고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아동권리위원회(CRC), 고문방지협약, 자유권위원회, 실종자 워킹그룹 등 국제협약 조약기구에서 탈북자 북송문제를 일관되고 강력하게 제기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런 데 소극적이었다. 지금이라도 계기가 있을 때마다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탈북자 북송문제를 포함한 북한인권 이슈를 우리 유엔체제 내 활동에 주류화해야 한다. 매년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계기에도 이 문제를 우리가 제기해야 한다. G7은 우리와 입장이 같은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한미일, 한-EU 대사, 아세안+3 등 다양한 지역‧다자채널에서도 북한인권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한중 대화 채널에서도 중국에 직접 얘기해야 한다. 매번 중국이 뭐라고 해도 탈북자 북송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해야 한다."

- 시민사회나 비정부기구(NGO) 역할도 중요할 것 같다.

"정부가 시민사회나 NGO들과 협업해 국제사회의 여론환기 작업에 공동으로 나서야 한다. 유엔 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이나, 국제형사재판소(ICC),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중재재판소(PCA) 등이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유명 인사들을 중심으로 탈북자에 관한 국제 모의재판을 연다면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하고 관심을 촉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는 결국 중국이 국제인권법과 난민협약, 고문방지협약 등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발생한 것이다. 중국이 난민협약 위반사실을 부인하면 2014년에 발간된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에 담긴 수많은 탈북민의 증언을 모아 책자로 만들어 회의장에서 배포할 수도 있다. 유엔 각국 대표부에 구술서나 비망록 형식으로 이 자료를 보내서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에 계속 관심을 두게 해야 한다. 유엔총회, 인권이사회, 고문방지협약위원회 개최를 계기로 탈북자들을 보내 부대행사를 여는 등 우리가 창의성을 발휘해 시도할 일은 많다."

- 지난 3월 한 북한인권단체 세미나에서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동북아사무소를 서울에 유치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북한인권문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태국 방콕에 있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HCHR) 동남아지역사무소에서 동북아와 동남아를 모두 커버하고 있다. 2010년쯤 OHCHR가 이를 추진할 때 우리가 적극 지지했지만, 중국의 반대로 불발됐다. 지금은 중국이 훨씬 더 반대할 것이다. 기회가 오면 우리가 유치해야 한다. 우선은 OHCHR가 이를 재추진해야 하는데, 문제는 OHCHR 기부금을 미국 다음으로 중국이 가장 많이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엔총회에서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도 중국을 명기하지 않는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을 수 있다.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다. OHCHR이 어떤 내부 계획이 있는지 파악해야 우리가 추진할 수가 있다."

- 중국은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지난달 16~17일 미국, 일본과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브루나이, 피지, 페루, 멕시코와도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한국과는 하지 않았다. 일부 언론은 '우리 정부가 패싱당했다'고 비판한다.

"한미일 3각협력 체제에서 한국을 약한 고리로 보고 공략하려는 중국이 일부러 그런 전술적인 결정을 했다고 본다. 한국과는 정상회담을 하지 않고 한국을 애태우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미중관계 관리에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던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기본 입장('상호존중과 이익에 입각한 관계 증진')을 흩트리지 않고 꾸준히, 차분하게 나가면 된다. 일부 언론은 한중 정상회담이 개최되지 않은 것을 두고 한중관계가 완전히 무너진 것처럼 보도하는데, 왜 우리가 안달을 내는가. 중국의 전술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 한중 정상회담 불발에 대한 국내 비판이 클수록 중국의 의도에 말려들게 된다는 걸 국민들이 인식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대국민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는 한중관계를 관리해 나가고 있다. APEC 계기 한중 정상회담이 개최되지 않은 데 대해 우리가 크게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우리의 원칙과 양국관계의 기본 발전방향에 입각해서 차분하게 나가되 중국의 긍정적 반응을 기다릴 것이고, 우리는 3국 정상회의를 통해 3국뿐만 아니라 한중 양국 간의 대화와 소통의 기회를 모색할 것이다'라고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 지난달 26일 한일중 외교장관회의를 마친 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일정 단축'을 이유로 공동 기자회견과 만찬 불참을 통보했다. 공동 언론발표문도 채택하지 않았다.

"'기본 입장'을 고수하면서 중국과의 대화를 모색해야 한다. 중국은 한미일 3각 체제가 업그레이드돼 본격화하기 전에 한일중 채널을 가동하려고 생각 중이다. 한중관계는 '시간게임'이다. 서두르는 자가 지게 돼 있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우리보다 중국이 더 기다릴 것이다. 한일중 비전그룹 회의에 중국이 적극적이었고,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 이후 중국의 태도를 생각해보라. 우리도 한덕수 국무총리가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석함으로써 한중관계를 잘 관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한 총리를 만나 방한을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화답했다.

한중 정상회담 개최를 무리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 시간게임에 우리가 지면 안 되며, 여건이 무르익어야 하는 만큼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대화 필요성에 관한 원칙적 입장을 꾸준히 발신하고, 양국 현안에 대한 우리 입장을 미리 잘 가다듬어 놓아야 할 것이다. 또한 '외교적 수사(rhetoric)'보다는 행동이 중요한 만큼, 불필요한 발언으로 분위기를 깨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차분히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 쿨하게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레토릭을 강하게 했다고 나아질 건 하나도 없다. 상대방 감정만 상하게 한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누구?1955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1977년 외교부에 입부했고, 일본과장, 조약국장, 주유엔 차석대사, 주이스라엘‧일본 대사, 1‧2차관 등을 역임했다. 서울대에서 법학(국제법)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강대, 서울대 국제대학원, 울산대에서 강의했다. 2014년 이래 법무법인 세종에서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일관계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된 세토포럼의 이사장과 싱크탱크인 니어(NEAR)재단의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현재 북한인권시민연합,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씽크(THINK),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등 북한관련 NGO에서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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