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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순국선열의 날 맞아 양일석 선생 등 67명 독립유공자 포상

뉴데일리

국가보훈부는 17일 '제84주년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독립유공자 67명을 포상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선정된 포상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11명(애족장), 건국포장 3명, 대통령표창 53명이다. 생존애국지사는 없고, 여성은 7명이다. 건국훈장·포장과 대통령표창은 제84주년 순국선열의 날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후손에게 수여된다.

독립유공자인 양일석 선생은 1921년 11월 전남 목포에서 사립 영흥학교 재학 중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군비 축소 관련 국제회의인 '워싱턴 회의'가 열리자 한국 독립 문제의 상정을 촉구하기 위해 만세 시위를 벌였다.

경찰에 체포돼 들어선 그는 법정에서 "조선의 청년으로 독립을 희망하는 마음은 이전부터 있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소신을 밝힌 사실이 1921년 12월24일 매일신보에 실리기도 했다.

민병구 선생은 식민지하의 억압적 교육 환경 속에서 국내와 일본을 넘나들며 학생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1933년 부산에서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선총독부의 민족 차별적 학교 교육에 반대하는 동맹휴고에 참가했다가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1939년에는 일본 야마구치 고등학교 재학 중 비밀결사인 '여우회' 활동을 하며 일본의 식민통치를 비판했다가 체포됐다. 여우회는 '고려의 벗'이라는 의미다. 민 선생은 해방 후 국제경제학의 권위자로 성장해 서울대학교 부총장 및 부산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최인규 선생은 1940년, 강원 삼척군에서 천곡교회 권사로 재직 중 조선총독부의 신사참배‧동방요배 등 황국신민화 정책에 반대하다 체포돼 징역 2년을 받고 옥중 순국했다.

최 선생은 일제 말기 신사참배‧동방요배 등 황국신민화 정책에 반대하다가 옥중 순국한 분에 대한 새로운 포상기준에 따라 첫 번째 서훈 사례로 기록된다.

신문 배달로 생계와 학업을 이어가면서도 동료 유학생들에게 독립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운동 실현 방안을 협의한 강재은 선생(애족장), 영‧호남을 누비며 의병운동을 확산시킨 이양호 선생(건국포장), 예산군 3.1운동의 단초를 제공한 전혁규 선생(대통령표창), 고령에도 임시정부를 돕고자 발로 뛰며 군자금을 모집한 안청숙 선생(대통령표창) 등도 독립유공자 포상이 이뤄진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금으로부터 118년 전인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직후 오직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온몸을 바친 선열들의 고귀한 생애와 정신을 기억하고,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우리 후손들에게도 온전히 계승될 수 있도록 한 분의 독립운동가라도 더 발굴하고 포상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포상된 1949년부터 이번 순국선열의 날까지 1만 7915명이 독립유공자로 포상되며, 이 중 건국훈장 1만 1721명, 건국포장 1519명, 대통령표창 4675명이고, 여성은 660명이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3/11/15/20231115000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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