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0월 8일, 전두환 대통령을 비롯해 핵심 참모 및 관료들 일행은 양곤으로 향했다. 양곤에 도착하고, 공항에서 당시 미얀마 대통령인 우 산유의 영접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영빈관에서 양국 정상간 대담도 나누는 등 첫날 순방 일정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평범한 해외순방으로 잘 마무리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의 미얀마 순방 이틀 째인 10월 9일의 공식 일정은, 오전 10시 30분에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 산 장군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이었다. 미얀마를 방문하는 해외 주요 인사들은 다 하는 의례행사로, 쉽게 말해 한국을 방문하는 해외 정상들이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
위의 사진은 대한민국 정부 수행원들이 참배를 위해 도열한 모습을 담은 것으로, 테러가 발생하기 불과 몇 초 전에 촬영된 사진이다. 즉 이것이 희생된 수행원들의 마지막 모습이다.
여러 모로 명백히 전두환을 노린 폭탄 테러였으나 정말 우연히도 현장에 없어서 살았는데 이유는 여러가지다. 종합적으로 보면 정말 천운이 따랐다고 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이유가 겹쳐져 살아남았다.
원래 일정에 따르면 10월 9일 오전 10시 15분에 미얀마 외무장관이 전두환 대통령 숙소인 영빈관에 도착해서 대통령을 잠시 접견한 후 10시 20분에 묘소로 함께 출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영빈관으로 향하던 외무장관의 승용차가 운행 도중에 길바닥에서 고장났다.
당시 미얀마는 대한민국의 1960년대 수준의 교통 인프라를 가진 나라여서 길바닥에 지나가는 택시가 드물었다는 것이다. 운전기사는 주변을 사방팔방 뛰어다녀 간신히 대체차량으로 택시 1대를 끌고 와 다시 출발하게 되었다. 이 때가 이미 도착 예정 시각이었던 10시 15분이고 당연히 지각은 불가피했다.
그렇기에 전두환은 무사했다.
저때 장관, 청와대수석 등 주요인사들 희생당하고 군 수뇌부들도 많이 다쳤는데 전두환성격에 보복안했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