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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 강원대 교수] |
1. 머리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미국 경제는 세계 2차대전 후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1960~1980년간 인플레는 2%에서 14%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실업은 4%에서 점점 증가하여 거의 10%에 육박했다. 미국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이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 시민에게는 공산주의 국가가 자본주의를 능가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냉전 때의 적이었던 소련은 아시아와 중남미, 그 밖의 지역으로 그 세력을 확장했다. 레이건 정부의 과제는 국내외의 이런 도전을 극복하고 미국 시민에게 자존심을 살리는 것이었다.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국정철학으로 그 과제를 수행하려고 했다.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베트남전쟁의 패배를 만회하고 소련의 팽창을 막으면서 사회주의에 대항하여 자본주의의 강력한 기반을 닦았다. 미국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살려냈고 생산적이고 평화적인 미국의 역량을 키웠다.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두 자리 수의 인플레를 5% 이내로 줄였다. 8년의 재임 기간에 2,0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2% 내외였던 경제성장률도 연평균 4%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꺼져가던 미국 경제를 살리면서 번영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그럼에도 레이건 정부의 개혁 정책에 대한 비판은 끊임이 없다. 비판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첫째로 레이건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서민에게는 큰 혜택이 없었고 부자만을 위한 정책이었다고 한다. 자본가의 탐욕만을 키워 준 결과였다고도 한다.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해도 저임금 일자리일 뿐, 빈익빈 부익부만을 야기한 ‘레이거노믹스’는 성공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성공적이라 해도 언젠가는 새로운 위기가 잉태된다는 것이다. 이 비판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두 번째 비판은 아주 최근에 새로이 생겨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서 촉발된 미국의 금융 위기가 그것이다. 이것은 1980년대부터 레이건 정부가 주도해 온 신자유주의 탓이라고 한다. 이런 위기를 잉태한 신자유주의는 이제 종언을 고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한국 경제도 이제는 시장에 맡기지 말고 정부가 나서서 금융시장을 규제하는 큰 정부로 가야 한다고 한다. 레이거노믹스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그 같은 비판은 옳은가? 신자유주의를 버리고 ‘큰 정부, 작은 시장’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레이건 정부의 개혁 정책은 성공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미국의 금융 위기는 정부의 간섭에서 비롯된 것이지, 결코 ‘작은 정부, 큰 시장’의 레이거노믹스 탓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금융 위기는 레이거노믹스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신자유주의가 옳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중요한 사례이고, 한국 경제의 길도 큰 정부가 아니라 ‘작은 정부, 큰 시장’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선 레이건 정부가 등장한 사상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2. 레이건 정부 등장의 사상사적 배경 1981년 레이건 정부가 등장하기 전에 정치계나 학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사조思潮는 번영의 원천은 정부라고 보는 다양한 형태의 간섭주의였다. 시장경제는 대량 실업을 야기하고 분배 정의를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의 논리였다. 공정한 기회의 균등을 위해서도 교육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고, 가격과 수량 규제 등과 같은 기업의 활동에 대한 규제도 필요하다고 믿었다. 이런 믿음의 배후에는 데카르트(R. Descartes) 이래 서구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였다. 이것은 하이에크가 분명하게 지적했듯이 정부는 국가 목적에 합당하게 사회경제를 합리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무한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말하자면 인간 이성을 무제한 신뢰하는 사상이다.(Hayek, 1973년) 이런 사상을 가장 잘 구현한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미국의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의 건설’이었다. 시민의 복지와 건강과 노후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책임지는 평등주의 복지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케인스주의’였다.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막대한 지출과 공공사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의해서 총수요를 자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이 잘못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정부 지출로 실업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업이 증가했다. 더구나 실업이 증가하면서 동시에 인플레도 상승했다. 그럼에도 간섭주의자들은 실업과 인플레의 공존을 시장경제의 탓으로 보면서 정부 개입의 중요성을 더욱더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은 경제를 더욱 악화시켰을 뿐이었다. 생산성 증가는 정체되었고, 성장도 멈추었다. 실업도, 빈곤층도 모두 증가했다. 환율 시장과 증권 시장은 붕괴 일보 직전이었다. 경제에 대한 정부의 자의적인 개입은 ‘이성의 남용’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이성의 악용’이었다. 이런 구성주의적 합리주의 대신에 ‘비판적 합리주의’를 내걸고 레이건 정부가 등장했다. 이 정부는 위기의 근본 원인을 시장경제의 탓이 아니라 정부의 잘못된 개입이라고 믿었다. 경제 위기는 이성에 대한 자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았다. 미국 경제를 구출할 수 있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라고 믿었다. “정부는 문제이지, 해결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레이건 정부의 등장으로 오랫동안 잊힌 ‘자유의 이념’이 되살아났다. 개인의 자유와 법의 지배, 그리고 자유 시장과 같은 자유주의 가치를 둘러싸고 있던 먹구름이 사라지는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3. 레이건 정부의 국정철학: 자유주의 세계 제2차대전 후 최악이었던 경제 침체에서 미국 경제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정부들이 채용하고 있었던 복지국가의 국정철학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야 했다. 어떤 국정철학이었는가? 그것은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라고도 부르는 자유주의였다. 이런 국정철학을 내세웠을 때 수많은 사람은 ‘이제 미국 경제는 끝났다.’라고 생각했다. 인플레와 실업은 더욱더 악화될 것이고, 경제 침체와 빈곤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측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 자유의 이념은 미국 경제의 위기적 상황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를 지속적으로 번영의 길을 이끌었던 것이다. 자유주의 국정철학은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경제 성장이다. 두 번째로 성장의 원동력으로서 기업가적 정신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인간 이성의 한계에 대한 인식론적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기업가 정신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고, 그리고 지식의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조건으로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실현하려는 일련의 제도적 개혁이다. 1) 성장제일주의 레이건 정부의 국정 목표는 경제 성장이었다. 이것은 경제 성장만이 미국 시민의 복지를 증진하는 것으로 보았다. 실업과 빈곤을 구제하는 최선의 방책으로 여겼다. 성장하는 경제만이 ‘아메리칸 드림’도 가능하고, 성장하는 경제만이 도덕과 공동체 정신도 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레이건 정부는 과거의 역대 정부가 펼쳤던 재분배 정책은 빈곤을 퇴치하기보다는 오히려 빈곤을 강화하고 확대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복지 정책을 확대하는 데에 대단히 인색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냉전의 승리와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경제적 번영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경제적으로 강할 경우에만이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레이건 정부는 경제적 번영은 한계가 없다고 믿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성장의 핵심을 이루는 새로운 지식과 혁신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부존자원이 점차 고갈되기 때문에 성장을 멈추어야 한다는 1970년대 이후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를 풍미하던 성장의 종말론도 믿지 않았다. 레이건 정부는 인류의 미래, 특히 미국의 미래에 대하여 대단히 낙관적이었다. 인간 개개인의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힘,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지속적이고 끝없는 번영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레이건 정부의 성장제일주의는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고전적 자유주의의 전통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경제 성장은 무한적으로 늘릴 수 있고 서민층까지도 성장으로부터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던 것도,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도 매우 낙관적이었던 것도 모두 자유주의의 전통이다. 그래서 레이건 정부의 등장은 오랜 기간 잊었던 고전적 자유주의의 정치적 부활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2) 인간관: 혁신적·적극적 인간 성장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성장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장의 핵심은 부존자원도 아니고, 주어진 기술도 아니었다. 레이건 정부는 성장의 원동력을 인간의 혁신과 적극성에서 찾았다. 그 인간은 다음과 같이 기술할 수 있다. -경제를 하려는 의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정신 -스스로 힘으로 잘살아보겠다는 태도 레이건 정부가 미국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 이유와 ‘성장은 한없이 가능하다.’라는 믿음의 기반은 이런 인간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이건 정부에 있어 인간이란 주어진 여건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소극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 행동이 전적으로 본능에 의해 미리 정해진 것도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환경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 대신에 적극적·창조적 인간, 스스로 문제를 찾고 이를 해결하는 능력의 인간이었다. 이런 인간은 ‘기업가 정신’이라고 말하는 기독교 전통의 인간관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인의 독특한 인간관도 아니다. 현대적인 ‘진화적 인식론(evolutionary epistemology)’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기업가 정신은 정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기업가 정신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활성화하기 위한 조건이다. 이것이 뒤에 가서 논할 재산권과 개인의 자유이다. 3) 인식론적 입장 “정부는 문제이지, 해결이 아니다.”라는 말은 레이건의 유명한 말이다. 이것은 대단히 심오한 인식론적 입장을 전제한 것이다. 왜 정부가 해결사가 아니라 문제의 주범인가? 정부(정부 사람들)가 규제와 간섭을 계획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지식은 각처에 흩어져 생업에 종사하는 수백만, 수천만 사람의 각자 고유한 두뇌 속에 들어 있거나 그들의 두뇌 속에서 새로이 창출되는데, 이런 지식을 전부 수집하고 가공하는 것은 인간의 인식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동유럽이나 옛 소련의 사회주의가 망한 이유도 미제스-하이에크가 입증하듯이 이런 지식의 문제 때문인 것처럼, 경제에 대한 정부의 부분적인 계획과 간섭도 지식의 문제 때문에 실패의 운명에 처해 있다. 정부는 문제이지, 해결이 아니라는 레이건 대통령의 말이 정곡을 찌르는 것은 이런 인식론적 입장 때문이다. 정부가 국부의 원천이 될 수 없는 것은 극복이 불가능한 지식의 문제 때문이다. 정부가 지식의 문제 때문에 간섭할 수 없다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각처에 분산되어 있는 개인이 제각기 자신의 지식을 자유로이 사용하게 하는 조건을 창출하는 일이다. 그것이 시장경제의 확립이다. 4) 작은 정부, 큰 시장 위에서 말한 국정철학의 세 가지 구성 요소로부터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도출할 수 있다. 레이거노믹스는 기업가 정신을 생산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이 애덤 스미스 이후 전수되어 온 고전적 자유주의의 시장관이다. 이에 따르면, 언제 어디에서나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적 에너지가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사유재산과 개인적 자유가 허용되는 사회에서만이 그 생산적 발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레이거노믹스가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것도 시장경제는 각처에 분산되어 존재하거나 각처에 분산되어 새로이 창출되기 때문에 그 어떤 정부나 정신도 전부 수집해 가공할 수 없는 지식의 사용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이에크가 그의 1952년 논문집 『개인주의와 경제질서』에서 입증하듯이, 시장경제는 수백만, 수천만, 아니 수억의 인간이 지식과 정보를 주고받는, 그 어떤 인간도 흉내 낼 수도 없는 ‘거대한 소통 체계’이다. 시장경제는 문제의 해결에서 정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명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이같이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중심으로 한 레이건 정부의 국정철학은 단순한 아젠더의 나열이 아니라 확고한 철학적 이론적 바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확인되는 것이다. 4. 레이건 정부의 개혁 정책의 경제적 성과 레이건 정부의 국정철학은 다음과 같은 개혁 정책으로 구체화되었다. -조세 삭감 -건전한 통화 -규제 철폐 레이거노믹스를 구성하는 이런 개혁 정책은 번영의 원동력으로서 기업가적 정신을 활성화시키고 거대한 의사소통 체계로서 시장경제를 확립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반대파는 레이건의 개혁 정책은 실업의 증가와 인플레만 조장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개혁 정책이 성공했음이 또렷하다. 그 성과가 이를 입증해준다. 레이건 정부 이전에는 겨우 2% 내외의 경제성장률이 레이건 정부 이래 8년간(1982~1989년) 연평균 4%로, 미국 역사상 가장 긴 기간 붐이 지속되었다. 고용 창출도 눈부실 정도였다. 1980년에서 1990년까지 2,000만 개, 연평균 2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10%에 육박하던 실업률도 1989년까지 연간 실업률을 5% 이내로 하락시켰다.(Ferrara, 1998) 미국 시민을 괴롭혔던 두 자리 수의 인플레도 5% 이내로 잡았던 것, 그리고 오늘날까지 인플레 없는 경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레이거노믹스의 성공을 말해주는 좋은 증거이다. 1) 조세 삭감 미국 경제를 구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개혁은 당시 케인스주의자들이 인플레를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하여 집요하게 반대하던 조세 삭감이었다. 나중에 노벨경제학상 수상까지 한, 당시 명성이 쟁쟁하던 제임스 토빈(J. Tobin)까지도 인플레를 조장하기 때문에 조세 삭감을 반대했다. 그 대신에 그는 임금 인상을 규제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레이건 정부는 70%였던 소득세의 한계세율을 28%로, 법인세를 48%에서 34%로 삭감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저소득층을 소득세 부담에서 면제했다. 흥미로운 것은 조세 삭감의 이론적 배경이다. 레이건 정부는 인플레는 화폐적 요인 때문에, 그리고 경제 침체는 과도한 조세 부담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보았다. 과도한 조세 부담은 기업가적 정신을 위축시킨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생산에 종사하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이기 때문에 인센티브가 없으면 아무리 소비가 늘어나도 생산을 증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레이건 정부의 이런 인식은 적실성을 가진 것이라고 믿어도 무방하다. 이런 조세 감면 정책은 일자리 창출과 성장률의 증가를 통한 번영의 길로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흥미롭게도 이 기간 창출된 새로운 일자리 대부분이 경쟁력이 있는 고임금의 좋은 일자리였다. 2) 규제 개혁 실업 감소와 소득 증대, 그리고 일자리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또 있다. 규제 개혁이 그것이다. 상품을 어떻게 생산하고 어떻게 포장하며 어떻게 광고하여 판매해야 하는가에 관한 규제는 물론, 가격 규제와 노임 규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규제는 경제에 막중한 부담을 준다. 레이거노믹스의 중요한 공로는 경제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조세와 똑같이 경제활동에 부담을 준다는 것을, 그래서 규제는 ‘숨겨진 조세’와 동일하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는 점이다. 규제 개혁의 예를 들면 항공 산업의 규제를 없앴다. 기업가 정신의 활성화로 새로운 항공 회사의 설립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새로운 경쟁이 촉진되어 항공 서비스도 대폭 개선되었다. 특히 항공 회사의 경쟁으로 항공료가 싸졌다. 항공 서비스 수요자들이 매년 100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었다.(Mitchell, 2002) 이런 절약은 다른 상품의 수요를 증대시키는 구매력의 증가를 의미한다. 구매력의 증가는 신규 기업의 증가 또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물론이다. 전신 산업의 규제를 개혁함으로써 전화 사용 비용이 대폭 감소되었다. 트럭운수 산업의 규제를 해제함으로써 운수 비용도 감소되었다. 규제가 철폐된 직후 2년 동안 1만 개의 새로운 트럭운수 회사가 설립되었던 것은 이런 규제 개혁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규제 해제가 운송 비용의 하락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 다른 중요한 경제적 효과도 발생시켰다. 즉, 트럭으로 운반되는 식품이나 그 밖의 상품 가격의 하락이다. 이 밖에도 레이건 대통령 재임 시기에 규제 개혁을 단행한 분야는 석유와 천연가스 부문이다. 그의 전임 정부였던 카터 정부가 인플레를 막기 위해서 석유와 천연가스의 가격을 규제했는데, 레이건 정부는 가격 규제를 해제했다. 환율의 시장 자율화 길을 터놓은 점도 레이건 정부의 공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자유 무역을 방해하는 관세를 낮추려는 노력도 간과할 수 없다. 3) 통화 정책 통화 정책을 통하여 두 자리 수의 물가를 억제하고 건전한 통화 가치의 안정을 기한 것,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인플레 없는 성장의 기틀을 확립한 것은 레이건 정부의 공로이다. 흥미로운 것은 1970년대 미국 경제를 경제 침체와 인플레의 공존에 대한 경제전문가들의 입장이었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인플레의 원인을 실물경제의 탓으로 보고, 경제 침체와 인플레의 공존을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현상이라고 믿었다. 실업의 증가 없이는 물가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미국의 인플레는 중앙은행이 돈을 풀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믿었다. 물가와 실업의 충돌관계는 정책 잘못이지, 결코 시장 탓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런 인식에 따라 레이건 정부는 실질 경제 성장의 유지에 필요한 수준으로 통화 증가를 억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돈줄을 묶었기 때문에 실업도 증가했고, 불경기도 악화되었다. 돈줄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레이건 정부는 일관되게, 그리고 단호하게 통화 억제 정책을 밀고 나갔다. 그 결과는 1979~1981년 10% 이상의 악성 인플레가 1982년 6.2%로, 1983년에는 3.2%로 감소했다. <표 1>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 이후에도 통화 가치는 지속적으로 안정되었다. 미국 경제를 위협하고 해결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인플레 문제는 다시 생겨나지 않았다. 인플레 없는 고용과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레이건 정부의 자유주의 정책이었다. 5. 자유주의 개혁 정책에 대한 비판의 허와 실 레이건 정부의 개혁은 성공적이었다.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이 괄목할 만했다. 동시에 물가도 안정적이었다. 미국의 저명한 교수 매켄지는 1980년대를 “미국 역사상 가장 크게 번창한 시기다.”라고 격찬하고 있다.(McKenzie, 1994) 시민이 자유와 번영을 가장 많이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레이건 정부의 개혁 정책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거나 또는 폄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크다. 그들의 반대 논리가 옳은가? 1) 조세 삭감으로 부유층은 세금을 덜 내고 그 밖의 사람들은 더 많이 세금을 내는가? 레이건 정부의 자유주의 정책에 대하여 폄하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의하면 조세 삭감으로 부유층의 세금은 줄어들고 그 밖의 계층은 더 많은 세금을 내기 때문에 조세 삭감은 부유층을 위한 정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옳지 않다. 레이건 정부의 자문위원이었던 니스캐넌(W.A. Niskanen)의 1996년 보고에 의하면 전체 납세액 대비 최상층 1%의 납세액은 1981년 18%였으나 1990년에는 25%로 급증했다. 1981년 최상위 계층 5%가 납입한 납세액 비중은 35%였지만 1990년에는 44%로 급증했다. 그러나 하위 50%의 납세 비중은 1981년 7%에서 1990년 6%로 감소했다. 상위 계층의 조세 부담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즉, 부유층의 조세 삭감은 그 계층 사람들에게 경제활동의 확장을 위한 중요한 인센티브로 작용했다. 그 결과로 일할 의욕과 저축, 투자가 증가했기 때문에 과세할 소득도 증가하고 조세 납부액도 증가한 것이다. 2) 레이건 정부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야기되었는가? 레이건 정부의 자유주의 정책으로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더 가난해졌다고 비판한다. 부자들의 소득만 증가시켰을 뿐, 저소득층에게는 경제적 번영의 결실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판도 옳지 않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미첼(D.J. Mitchell)의 1991년 보고서는 레이건 정부가 집권하여 조세 삭감 정책 등 자유주의 정책이 실시되던 1982년부터 퇴임되던 다음해 1989년까지 모든 소득 계층의 소득이 증가되었음을 보여준다. (<표 2> 참조) 최하위 20%의 소득이 12.6%나 증가하는 등, 모든 계층의 소득이 10% 이상 증가했다. 이처럼 조세 삭감을 비롯한 자유주의 정책에 의한 경제적 번영의 결실은 서민층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케네디 대통령의 말대로 밀물 때에는 모든 배가 뜨는 것과 같이, 성장하는 경제에서는 가난한 계층도 고소득층과 함께 성장의 이익을 얻는다. 흥미로운 것은 레이건 대통령 이전 시기인 1978~1982년 각 계층의 소득 변화이다. <표 2>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 기간은 카터 정부의 반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극심한 인플레와 실업, 소득 불안정으로 미국의 시민들이 고통스러웠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모든 계층의 평균 소득이 감소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계층이 최하층 20%로, 소득이 8.2%나 감소했다. 흥미로운 것은 니스캐넌의 1996년 보고서다.(Niskanen, 1996년) 그에 의하면 1980년 최하위 20%에 속해 있는 가난한 자 가운데 85%가 1990년에는 상위 계층으로 상승했다. 14.2%만이 1990년에도 최하위 20%에 속했다. 중산층의 47.3%가 상위 계층으로 신분 상승이 이루어졌다. 10%만이 하위 계층으로 전락했다. 최상위 소득 계층의 35.3%가 하위 계층으로 전락했다. 이 보고서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도 부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그 때문이다. 3) 레이건 정부에서는 저임금의 일자리만 창출했나? 레이건 정부의 정책을 폄하하는 사람들은 레이건 정부의 개혁으로 일자리는 많이 창출되기는 했지만 주로 값싼 일자리만을 창출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도 결코 옳은 비판이 될 수 없다. 레이건 정부는 1982~1989년 약 2,0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브래클(L.V. Braekel)의 보고에 의하면, 가장 많이 창출된 분야는 연소득 3만 3,000달러 이상의 전문직종이다. 이 부문의 일자리는 33.1%나 증가했다. 그리고 연소득 2만 6,000달러의 생산직 부문의 일자리는 19%, 연소득 2만 1,000달러의 기술직에서는 21.8%나 증가했다. 연소득 1만 5,000달러의 비교적 값싼 서비스직의 일자리는 16.8%가 증가한 반면, 1만 3,000달러의 농업 일자리는 4%나 줄었다. 따라서 시장에 일자리 창출을 맡기면 값싼 일자리만을 창출한다는 주장은 결코 옳지 않다. 레이거노믹스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만이 생산적이고 경쟁력이 있는 고급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4) 레이건 정부 시대에 인간의 탐욕이 증가했나? 사회의 일각에서는 1980년대를 ‘탐욕의 시대’라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는 인간을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변형하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이런 탐욕 시대에는 공동체 정신도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1980년대 등장한 것이 공동체주의의 철학이다. 이런 비판이 옳은가? 1980년대는 자선기금이 기록적으로 성장한 시기라는 것을 보여주는 보고가 있다. 1994년 발표한 저서 『1980년대 제대로 된 것이 무엇인가』에서 매켄지(R.B. McKenzie)는 1980년에서 1989년까지 연평균 자선기금 성장률이 5.1%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국가의 개입과 복지 정책이 번창하던 시기였던 1955~1979년의 연평균 성장률은 겨우 3.3%였다. 1980년대를 탐욕의 시대라는 비판은 결코 옳지 않다. 그리고 탐욕의 시대라고 전제하고 생겨난 공동체주의 이념은 현실적 바탕이 없이 생겨난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6. 미국의 금융 위기는 레이거노믹스의 종언인가? 우리가 확인한 것은 자유주의에 기초한 레이건 정부의 경제 개혁은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 성과가 그 성공을 입증한다. 그러나 레이건 정부의 처방은 세계적인 불경기에서 미국 경제만을 구출한 것이 아니었다. 지구적 경제까지도 구출했다. 그의 개혁은 아일랜드를 비롯하여 많은 유럽 대륙의 국가들에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옛 소련연방에 속했던 나라들과 동유럽 국가의 친시장적 개혁의 성공도 레이건의 영향이다. 그러나 최근 이런 레이거노믹스의 자유주의가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발단이 되어 수천억 달러의 공적 자금을 투입할 상황으로까지 치달은 미국의 금융 위기 때문이다. 사회의 일각에서는 금융 위기는 시장만능주의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두고 레이건 전통의 신자유주의의 종언이라고까지 말하면서, 큰 정부의 도래를 자축하고 있는 듯하다. 금융 규제 완화가 위기의 주범이기 때문에 금융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금융 위기의 주범을 월가의 탐욕적인 투자가들의 파생상품 시장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의 금융 위기는 주택 시장의 문제가 파생금융 시장으로 파급되어 생겨난 것임에도 주택 시장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파생상품 시장만 보고 있다. 1) 미국 주택 시장의 버블의 원인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정부의 주택 시장 간섭이다. 주택 시장의 버블이 야기되고, 급기야는 이 버블이 꺼지면서 금융 위기가 닥친 것이다. 따라서 왜 주택 시장의 버블이 생겼다가 꺼졌는가를 물어야 한다. 위기의 근본 원인은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주택 정책 때문이다. 상환 능력이 없는 서민층이나 소수민족에게 내 집 마련을 정부가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을 돕기 위한 방법이 주택 담보 대출이었다. 그러나 이런 대출의 성공 조건은 담보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기 때문에 부동산 담보 대출은 애초부터 부실화의 위험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고위험에도 담보 대출을 가능하게 한 이유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닷컴의 붕괴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2000년부터 시행한 금리 인하 정책이었다. 값싼 돈으로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정부의 인위적인 금리 인하는 경제 주체들을 왜곡된 방향으로 안내했다.(O’Driscoll, 2008년) 여기에 가세한 것이 금융기관의 대출 심사 기준 완화, 초기 납입금에 대한 정부 보조 등으로 상환 능력과 관계없이 담보 대출을 용이하게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부나 정치권, 그리고 준정부기관도 금융기관들이 그런 담보 대출을 하도록 유도하는 데 적극적이었다.(Liebowitz, 2008년) 이 모든 것이 ‘공짜 점심’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택 시장 버블의 결정적 이유였다. 그러나 시장에는 공짜 점심이 없는 법이다. 점심값이 금융 위기이다. 2006년 모기지 대출의 원금 상환 개시가 시작되자 연체와 상환 불능이 생겨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연체율이 증가했으며, 상환 불능 사태가 점차 심화되었다.(여기에다 2004년 고금리 정책이 그 심화에 큰 몫을 했다) 그것이 주택 가격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가 금융 시장 위기이다. 이 위기로 공짜 점심의 시대가 끝난 것이다.(좌승희, 2008년) 따라서 금융 위기의 본질적 원인은 파생상품 시장이 아니라 정부의 통화 정책 잘못과 주택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 때문이다. 이런 반(反)시장 정책은 레이거노믹스와 전혀 관련이 없다. 금융 위기는 “정부는 문제이지, 해결이 아니다.”라는 레이건 대통령의 유명한 말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2) 미국의 금융 위기는 치명적 자만의 결과 금융 위기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몰락과 동일하다. 그것은 통화에 대한 정부 계획, 주택 수급에 대한 정부 계획의 실패이다. 정부는 소망스러운 결과를 얻기 위해 경제를 계획하고 규제하는 데 필요한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만한 결과가 금융 위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하이에크의 ‘치명적 자만(fatal conceit)’이 그래서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Hayek, 1988년) 각국 정부는 위기 해소책으로 정책금융을 투입하면서 장차 있을지도 모를, 또 다른 금융 위기를 막기 위한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금융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가 없다. 그것은 조만간 갚아야 할, 또 하나의 공짜 점심일 가능성이 크다. 장래의 금융 위기를 예방하기 위한 대표적인 제안이 투자은행에 대한 규제이다. 그러나 이것도 새로운 규제의 시대로 들어가는 단초일 뿐이다. 이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근원적인 해결책은 주택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의 억제와 중앙은행의 자의적인 통화 정책을 막는 일이다. 따라서 레이거노믹스가 그 해결책이다. 레이거노믹스는 살아 있다. 시장경제의 원칙을 지키는 일, 이것만이 위기 극복과 위기 발생 억제를 위한 최선의 정책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7. 레이건 정부의 개혁 정책이 한국 경제에 주는 시사점 미국의 금융 위기의 본질적인 원인에 대한 우리의 분석을 통하여 이제 레이거노믹스의 종언 또는 자유주의의 종언이라는 반시장주의자들의 주장이 근거가 없음을 또렷하게 확인했다. 우리의 갈 길은 자유주의가 살길이라는 것을 말하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레이건 정부의 개혁 정책의 성공을 마음 놓고 말해도 좋다. 그런데 레이건 정부가 성공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그 성공 이유다. 첫 번째 이유는 이념의 힘 덕택이다. 자유주의 이념이 없이는 레이건 정부의 개혁은 성공할 수 없었다. 이것이 밀턴 프리드먼, 윌리엄 니스캐넌 등 명성이 쟁쟁한 자유주의 이념가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들은 일관되게 자유주의 개혁 프로그램을 작성하여 레이건 대통령을 보좌했다. 그러나 자유주의 이념의 존재 그 자체는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이런 이념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용기와 결단, 그리고 리더십이다. 이것이 레이건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요소이다. 개혁에 대한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용기와 결단을 가지고 일관되게 시장경제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물가와 환율은 높고, 성장과 고용은 말할 수 없이 저조하다. 경제에 대한 불안심리가 심각하다. 레이건 정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교훈은 시장경제를 위한 개혁, 시장경제의 원칙을 실현하는 것, 이것이 경제 문제의 해법이라는 것이다. 경제가 정말로 어렵다. 레이건 정부가 성공한 이유는 어려운 때에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어려운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레이건 정부의 개혁에 따라 시장경제 원칙을 지킨 나라는 성공했다. 마거릿 대처 정부가 영국 경제를 구출한 것도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성공, 동유럽 국가의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경제도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했다. 언제 편한 날이 있었던가. 그래도 극복에 성공했던 이유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실현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10년간 좌파가 다져놓은 각종 법과 제도를 뜯어고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런 원칙에 따른 개혁을 위해서는 전두환 정부 시대의 고故 김재익 수석과 같은 자유주의에 헌신적인 훌륭한 참모도 필요하다. 지금 이 어려운 시기가 우리의 제한된 지적 능력을 대신해주는 것은 시장경제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절호의 기회로 보인다. ■ 참고문헌 부르스 E. 헨더슨 저, 김정환 옮김, 『서브프라임 크라이시스』, 랜덤하우스(2008). 민경국, 『자유주의의 지혜』, 아카넷(2007). 민경국, 『하이에크의 자유의 길: 하이에크의 자유주의 사상 연구』, 한울아카데미(2007a). 좌승희,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 그리고 MB노믹스, 금융쓰나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경기개발연구원 CEO Report(2008). Braekel, L.V. “Reaganomics, A Success Story”, The Brussel Journal(2005). Ferrara, P.J. “What Realy Happened in the 1980s”, Mises Institute(1998). Hayek, F.A. 『The Fatal Conceit: the Errors of Socialism』, Oxford(1988). Hayek, F.A. 『Law, Legislaton and Liberty: Vol. I』, Rule and Order(London, 1973) Hayek, F.A. 『Individualism and Economic Order』, Oxford(1952). Liebowitz, S.J. “Anatomy of a Train Wrek: Causes of the Mortgage Meltdown”, The Independent Institute(October 3, 2008). McKenzie, R.B. “What Went Right in 1980s”, (San Francisco, 1994). Mitchell, D/Olin, J. “Tax Rate, Fairness, and Economic Growth: Lesson from the 1980”, In Jack Rabin, Glenn L. Stevens(ed) Handbook of Fiscal Policy(New York, 2002). O’Driscoll, G.P. “Asset Bubbles and Their Consequences”, Cato Institute Briefing Papers No. 103(2008). Niskanen, W.A. Supply-Side Tax Cut and the Truthn about the Reagan Economic Record www.cato.org(October 22, 1996). |
ㅊㅊ
이런거 재미지다
충분히 재밌음ㅋㅋ
저걸 하기전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갔을 거라 생각한다면
그리고 경제는 참으로 어려움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기힘든데
하나만 하려면 꼭 망하지
혹자는 그걸보고 영원히 잘되는건 없다고하지만서도.
경제학 이론자체는 완벽하다봄
다만 인간의 탐욕을 이론에 넣을수없어서 ㅋㅋㅋㅋ
좋은 글 감사 ㅊㅊ
퍼왔어유
스압이지만 이제 더 안 올라오니 이제라도 읽어야겠다 ㅠ
좋은글 감사합니다
쪽지보내기가 안되네요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