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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토닉 러브로 끝난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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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내 진짜 첫사랑 이야기(난영에게) 


내가 시골서 다닌 중학교는 남녀 공학이었다. 때는 1988년의 일이다. 

88올림픽 무렵이구나. 

나 중3학 때 난영이는 중1이었다. 

단발머리에 보이시하고 시크했다. 

그냥 나를 설레이게 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이성으로 관심을 가졌던 여자 사람이다. 

진정한 플라토닉 러브였다. 


그런데 문제는 난영이는 내 동창 현주의 동생이다. 

정말 있는집이었다. 

난영이네 아버지는 내고향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분인데 결국 명예훼복은 못하고 돌아가셨단 이야기는 바람소리에 전해 들었다. 


난 중학교 때 또래 여자들이 인기투표 하면 3등 안에 들었다. 

인기 투표결과를 귀뜸해 주는 여자동창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나 좋다는 여자들도 많았는데... 


어느 날 소설 소나기의 반대이야기인가? 

청천병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난영이네 아버지 사업이 잘못되어 가세가 기울어 대구로 식구들 모두 이사를 간다는 것이었다. 


난 어렵게 난영이를 불러내서 어디가던 건강하고 잘살아 보고 싶을거다. 

내가 꼭 너를 다시 만나러가마 약속을 했다. 

중3 남학생과 중1 여학생이 얼마나 애뜻한 얘기를 했겠나! 

암튼 그렇게 이별아닌 이별을 하게 되었다. 

난영이네 대구 집 주소는 알지만 편지를 할 수도 없었다. 

동창 현주때문에 좀 그랬다. 

당시는 집전화로 전화하는 건데 대구 집으로 전화를 하면 난영이네 엄마가 받으면 좋은데 꼭 현주가 받는다. 

별다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뜸하게 지낼수 밖에 없었다. 


세월이 조금 흘러 나도 1989년 고1을 시골에서 마치고 서울 상도동으로 이사하고 근처에 있는 영등포고등학교로 전학을 하였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난 1990년 고2때 똘래들보다 피지컬이 좋았다. 

용돈을 벌고자 일명 건설 노가다 현장에 잡부로 나가서 일했다. 

당시 일당이 30,000원인가 했다. 

난 운동삼아 열심히하면 10,000원을 더주는 고용주 기술자 아저씨도 있었다. 

그리고 일 끝나고 삼겹살에 소주도 한잔 같이 하기도 했다. 

하여간 용돈이 필요하면 토요일, 일요일을 이용해서 노가다를 하면 6~7만원을 벌었다. 

고등학생한테는 당시 돈으로 큰돈이었다. 


우리집도 내가 고3 무렵 가세가 기울었다. 

아버지가 동업자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나는 고3이니 하숙집을 잡아주고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 시골로 다시 내려갔다. 


고 3때 혼자 서울에 남겨져 있던 중 문득 잊고 지내던 난영이가 떠올라 그녀집으로 전화를 하여 여름방학 때 내가 대구로 내려가 만나기로 약속하고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3년만에 재회했다. 


난영이를 만나려면 돈이 필요했기에 노가다를 며칠하여 수중에 수 십만원을 만들어 가지고 내려갔다. 


고삐리인 고 3과 고 1이 만나 무엇을 할지 고민거리 였다. 

일단 어색함과 서먹함을 풀기위해 영화를 보기로 했다. 

당시 "장군의 아들 1탄"이 상영중이어서 나란히 앉아 영화를 봤는데 참 난감했다. 

박상민과 오연수의 러브신이 좀 오래 나오는데 사실 고교생이 보기엔 민망했다. 

난영이와 나는 서로 어찌하지 못할 난감한 순간을 보냈다. 

러브신이 왜 그렇게 길며 신음소리도 리얼했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는데 서로 눈을 처다보니 좀 그랬다. 

우리는 요기를 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 같은데 들어가서 음식과 음료를 주문했다. 

내가 엉큼한 놈이었다면 치킨집에 가서 치맥을 먹자고 했을 수도 있었지만 난영이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냥 지켜주고 아끼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설레이는...그런 사람 


내가 난영이에게 약속을 했다. 

오빠가 대구에 있는 대학에 입시를 봐서 유학오겠다고 해 놓고서 난 서울에 있는 숭실대(전기)와 한양대(후기)에 응시하여 장열히 낙방했는데... 아마 대구에 있는 전문대를 응시했으면 난영이랑 잘되었을 수도 있지만.... 


이후 나는 방황을 좀 하다가 입대를 했는데 이상하게 난영이에게 했던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았고 대구로 유학도 못가는 처지라 다시 만나자고 할 명분이 없이 세월은 한참이 흘렀다. 나는 계속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고 여러 여성들과 교제를 하다보니 난영이를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2006년 인가 어렵게 수소문 하여 난영이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서 전화를 했다. 

가벼운 인사를 서로 나누었는데 난영이의 목소리는 나를 반갑게 맞는 목소리 톤은 아니었다.  나의 착각인지 모르지만 나에 대한 원망의 표현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난영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빠 나 곧 시집가요 이제 연락 안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행복하게 잘 살아라라고 끝 인사를 한 후 그날 이후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난영이가 가끔씩 나의 기억에서 소환되어 그 순박했던 고1 시절의 그녀 얼굴이 나를 괴롭게 한다. 

내가 아는 난영이라면 의사정도는 될수 있는 실력이었는데 치위생사가 되었다고 들었다. 지금도 그일을 할런지는 모르지만 난영이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 


유복한 집안의 막내 딸로 귀여움 받다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집안이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셔서 외로웠을텐데 착한남편 만나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는 그녀에게서 그냥 잊혀진 존재가 되기로 하였다. 

하지만 내가 죽기 전 한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 고 3때 손 한번 잡아본 것이 전부지만... 나는 플라토닉 러브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너도 48살이구나! 

한 인간의 질풍노도의 시기 그래도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위안이었다.


20220110_001746.jpg

상단 제일 우측이 필자임

1991년 여름 고3 때서울 보라매 공원에서 찍은 사진

나를 제외한 전원은 재수파들임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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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이 없습니다.
  • 태식이
    2022.01.10

    images.jpeg

    어느 작은 산골소년의 슬픈 사랑 얘기~~

  • 태식이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작성자
    2022.01.10
    @태식이 님에게 보내는 답글

    한 인간의 순박했던 소중한 기억이지요

  • 무플방지위원회

    추억이네요 ㅇㅇ

  • 무플방지위원회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작성자
    2022.01.10
    @무플방지위원회 님에게 보내는 답글

    저는 고등학교 2~3 학년 때 노동을 해봐서 어른이 되면 노동일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 무플방지위원회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작성자
    2022.01.10
    @무플방지위원회 님에게 보내는 답글

    마음한구석에 아련히 남아있는 사람 약속도 지키지 못한 사람이라 죄인인거죠 어린 추억속의 난영이는 내가 대구로 오기를 바랬을지도 몰랐을텐데...

  • 와이낫
    2022.01.10

    와~~ 경험담이셨군요! 사진보니깐 여자들에게 인기쫌 있으셨겠어요.

  • 와이낫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작성자
    2022.01.10
    @와이낫 님에게 보내는 답글

    네, 그러나 여심을 악용하진 않았죠 살면서 약 50명의 여성과 교제는 했지만 여자의 마음을 우롱하지 않았죠 양다리 걸친적도 없었고 항상 여인과의 만남과 헤어짐은 깔끔했었지요.

  •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작성자
    2022.01.10

    진짜 살아서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

    살아서 못 만난다면 죽어서라도 한 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

    다들 그런 사람 한 명씩 있지 않나요?

  •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와이낫
    2022.01.10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님에게 보내는 답글

    ㅎㅎ 네 전 있는데 하늘나라로 너무 이른 나이에 가버려서

    꿈에도 안나타나네요^^

  • 와이낫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작성자
    2022.01.10
    @와이낫 님에게 보내는 답글

    우째요......이 세상에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데....

  •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와이낫
    2022.01.10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님에게 보내는 답글

    ㅎ ㅎ 7년정도 지나서 이젠 쫌 무덤덤해졌습니다.정말 시간이 약인가봐요. 가슴 한켠에 묻어두고 살고있죠 뭐^^ 그런데 새로운 이들을 만나면 저두 모르게 자꾸 비교가되어서 잘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비혼주의자로 살기로 결정했어요ㅎ

  • 와이낫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작성자
    2022.01.10
    @와이낫 님에게 보내는 답글

    정말 결혼은 비지니스가 아닌 내가 죽고 니가 살수 있을 것 같은 사람과 해야죠

  •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와이낫
    2022.01.10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님에게 보내는 답글

    네 ㅎ ㅎ 그런 사람이였기땜에 더 그런것 같아요. 근데 제 지인말에 의하면 정말 사랑해서 결혼한 커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않다고 하더군요. 사랑과 결혼도 현실과 타협하느냐마느냐의 세상인듯합니다^^

  • 와이낫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작성자
    2022.01.10
    @와이낫 님에게 보내는 답글

    오죽하면 요즘 혼테크라는 말이 있을까요?

    준표형의 결혼이 혼테크 였나요?

    윤ㅇㅇ 후보는 결혼당시 수중에 2,000만원 있었다죠.

    혼테크가 만연한 세상에서...플라톤이 주창한 플리토닉 러브를 꿈꿉니다.

    "다른 여자의 살을 탐하지 않았다."는 준표형의 어록이 떠 오릅니다.

  • Moses
    2022.01.10

    ㅊ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