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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4대 60년(1)

전향자

여말선초 4대 60년(1)

 

1359년 공민왕 8년

“전하! 홍건적 4만 명이 국경을 넘었습니다!”

“당장 막아라!”

“그런데 홍건적이 이미 서경을 점령했습니다!”

“!!!”

 

1360년 공민왕 9년

“전하! 독로강만호 박의가 난을 일으켰습니다!”

“진압하라!”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

 

1361년 공민왕 10년

“전하! 홍건적 20만 명이 국경을 넘었습니다!”

“당장 막아라!”

“막는 게 아니라 몽진(蒙塵)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개경도 위험합니다.”

“!!!”

 

1362년 공민왕 11년

“전하! 나하추가 대군을 이끌고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막아보라고!”

 

1362년 공민왕 13년

“전하! 최유가 원나라 군사 1만을 이끌고 국경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진짜 미쳤나!”

……

“전하! 삼선이 무리를 이끌고 동북면을 공격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군사가 없나?!”

 

1371년 공민왕(20년)

“전하! 왜적이 예성강을 침입해 전함 40여 척을 불태웠습니다!”

“……예성강이면 개경 바로 앞인데?”

“바로 그렇습니다!”

“…….”

 

1377년 우왕 3년 3월

“전하! 왜적이 강화를 침공했습니다!”

“막아라!”

“가당치도 않습니다!”

“!!!”

 

5월

“전하! 경상도에 왜적이 창궐했습니다!”

“알아서 막을 수 없나?”

“예.”

“…….”

 

8월

“전하! 신주 등에 왜구가 창궐했습니다!”

“…….”

“예?!”

“…….”

 

1360년 우왕 6년 8월

 

“전하! 왜선 500척입니다!”

“그냥 나라 문을 닫읍시다.”

“!!!”

 

9월

“전하! 왜구가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전역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종묘사직이…….”

“홍건적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닙니다.”

“…….”

 

1382년 우왕 8년

“전하!”

“또……?”

“여진족 호발도가 수만의 대군을 이끌고 동북면을 침입했습니다!”

“…….”

 

1385년 우왕 11년

“전하!”

“……이번에는 어딥니까.”

“동해 연안에 왜선 150척입니다.”

“…….”

 

위 내용은 고려 말 공민왕, 우왕 시절의 굵직한 전투만 언급한 것이다.

(이 외에도 고려 말 외세의 공세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중국에서 일어난 홍건적의 규모만 하더라도 수십만 명이었고, 요동의 실력자로 자리매김한 나하추도 수만의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다.

또한, 여진족인 호발도 역시 수만의 대군을 이끌고 고려의 국경을 어지럽혔다.

간략하게 언급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하나가 숨을 턱턱 막히게 할 정도로 강대한 세력이었다.

우선 나하추는 북원과 명나라 사이에서 철저하게 실익을 챙길 정도로 강성한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당시 절정기를 맞이한 주원장조차도 나하추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걸 피하려고 했을 정도였으니 더 말해서 뭐 하겠는가.

또한, 최유는 원의 정규군 1만 명을 이끌고 고려의 국경을 어지럽혔다. 아무리 원의 국세가 기울어져 가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엄연히 대륙을 지배한 강국이라는 점을 볼 때 절대 가볍게 여길 수 없다.

호발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동북면에서 수만 명의 세력을 확보하였을 정도로 세력이 엄청났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 합쳐도 감당하기 어려운 건 왜구 아니, 왜군의 공세였다.

(이때 당시의 왜군에 대해서는 주된 논제가 아니기에 생략.)

1350년 충정왕 시절부터 시작된 왜군의 고려 침탈은 우리가 생각하는 노략질의 수준이 아니었다.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의 수준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한 번의 전투에 많게는 수백 척의 함선을 동원하였을 정도로 엄청난 대군이었다.

 

특히 1370~80년대에 이르러서는 왜군의 전력은 그야말로 절정으로 치달았다.

고려 전역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왜군의 공세는 나라의 시스템을 완벽하게 마비시켰다. 당시 조정의 조세를 운반하는 조운선이 모조리 왜군에게 약탈당했으며 감당하지 못한 고려 조정이 해안가를 사실상 포기하는 선언까지 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 당시에도 조운선은 일정 유지했다는 걸 고려할 때 고려 말 왜군의 공세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1380년에 이르러서는 500척이라는 사상 초유의 대군이 고려를 공격하였고, 이후 고려 남부를 종횡무진 짓밟았다.

 

한 마디로 당시 고려는 망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이는 단지 고려 정치의 문란함과 내정의 어려움을 넘어서 강대한 외세의 공세로 국운이 휘청인 것이다.

 

우습게도 고려는 홍건적, 원, 나하추, 호발도, 왜구 등 동북아시아에서 네임드를 형성한 세력들이 국경을 넘은 것이다.

이를테면 동북아시아의 맛집이라고 불릴 만큼 국운이 위태로웠다.

 

보편적인 국가의 흥망성쇠를 볼 때 이 당시 고려는 외세의 침탈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잘 보려고 해도 당시 고려는 외세 아니, 왜군조차 막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만일 그렇게 무너졌다면 고려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비루하게 막을 내린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고려의 국운이 벼랑 끝으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 한국사 최강의 무장이 등장한다.

 

뇌까지 근육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 흉기.

바로 상승 불패의 명장 이성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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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가볍고, 가독성을 고려하면서 작성했습니다.

구독에 불편함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역사적 관점이라는 점을 명심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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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고려 후기 홍건적의 침입과 안우의 군사 활동 / 박진훈

고려말 이성계의 군사 활동과 조선 건국 주도 세력의 결집 양상 / 윤훈표

고려 말 왜구의 남조-경신년(1380)의 왜구를 중심으로 / 이영

동아시아 삼국 간 연쇄 관계 속의 고려 말 왜구와 대마도 / 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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