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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녹여주는 따듯한 인생 이야기, 『우동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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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내가 남을 사랑하고 이해하면,

내 가슴이 행복합니다.

내가 남을 보살피고 도와주면,

내가 어른이 되고 주인이 됩니다.

이것은 예쁜 옷을 입는 것보다,

높은 자리에 앉는 것보다,

자신을 더 아름답게 가꾸는 방법입니다.

-법륜 스님의 인생 수업중에서

______

아주 오래전 19892,

일본 국회 예산심의 위원회 회의실에서

질문에 나선 공명당 오오쿠보 나오히코 의원이

난데없이 옷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대정부 질문 중에 일어난 이와 같은 돌출 행동에

멈칫했던 장관들과 의원들은 계속 낭독이 이어지자

그것이 1988년에 출간된

구리 료헤이의 동화 작품 우동 한 그릇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이야기가 반쯤 진행되자

좌석 여기저기에서는

눈물을 훌쩍이며 손수건을 꺼내 드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더니

이윽고 끝나갈 무렵에는 회의실을 온통 울음바다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정책이고 이념이고 파벌이고 모든 것을 초월하는 숙연한 순간이었습니다.

국회를 울리고, 거리를 울리고, 학교를 울리고,

결국에는 일본 전체를 울렸던 눈물의 피리가 바로 우동 한 그릇이란 동화였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날씨마저 싸늘해지는 요즈음,

이 한편의 동화를 통해

살을 에는 북해도의 찬바람같이

꽁꽁 얼어붙은 우리의 온정을 되찾아

따듯한 우동 국물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우동의 김처럼,

나눔과 배려, 그리고 희망과 용기를 되찾는

의미 가득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______  

해마다 1231일 섣달그믐날이 되면

일본의 우동집들은 일 년 중 가장 바쁩니다.

 

삿뽀르에 있는 우동집 <북해정>

이날은 아침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이날은 일 년 중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밤이 깊어가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발걸음도 빨라졌습니다.

그러더니 10시가 지나자 손님도 뜸해졌습니다.

 

무뚝뚝한 성격의 우동집 주인장은

입을 꾹 다문 채 주방에서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는 달리 매우 상냥해서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은 주인 여자는,

이제 두 시간도 채 안 되어 새해가 시작되겠구나.

정말 바쁜 한 해였어라고 혼잣말을 되뇌며

밖에 세워둔 입 간판을 거두기 위해

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출입문이 드르륵~하고 열리더니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섰습니다.

여섯 살과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들은

새로 산 듯한 옷을 입고 있었고,

여자는 남루하고 오래된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주인 여자는 늘 그렇듯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자는 선뜻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말했습니다.

우동1인분만 시켜도 괜찮을까요?”

뒤에서는 두 아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다 늦은 저녁에 우동 한 그릇 때문에

주인 내외를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해서 조심스러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직감으로 알아차린 듯한 여주인은

얼굴을 찡그리기는커녕 아주 환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네. ~ 이쪽으로.”

여주인은 손님들을 난로 바로 옆에 있는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주방 안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여기, 우동 1인분이요!”

 

갑작스레 주문을 받은 주인장은

그릇을 정리하다 말고 놀라서

잠깐 일행 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다가 곧바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우동 1인분!”

그는 아내 모르게 1인분 우동에 반 덩어리를 더 넣어서 삶았습니다.

그는 세 사람의 행색을 보고

우동을 한 그릇밖에 시킬 수 없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여기 우동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가득 담긴 우동 한 그릇을 식탁 한가운데 두고,

이마를 맞대면서 오순도순 먹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계산대 있는 곳까지 들려왔습니다.

 

국물이 참 따뜻하고 맛있네요.”

형이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습니다.

엄마도 잡수세요.”

동생은 젓가락으로 국수를 한 가닥 집어 어머니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비록 한 그릇의 우동이었지만 세 식구는 아주 맛있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윽고 다 먹고 난 뒤,

150엔을 지불하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사람에게

주인 내외는 목청을 한껏 돋워 인사를 건넸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후, 새해를 맞이했던 <북해정>은 변함없이 바쁜 날들 속에서

한 해를 보내고 또다시 1231일을 맞이했습니다.

 

몹시 바쁜 하루를 보내고

10시가 지나서 막 가게 문을 닫으려 할 때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두 명의 사내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주인 여자는 그녀가 입고 있는 체크무늬 반코트를 본 순간,

일 년 전 섣달그믐날

문 닫기 직전에 찾아와서

우동 한 그릇을 시켜 먹고 갔던

그 손님들이라는 걸 직감으로 알아차렸습니다.

 

사내아이들을 데리고 온 여자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고 예의 바르게 말했습니다.

우동1인분입니다만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주인 여자는 작년과 같이 2번 식탁으로 그들을 안내하면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여기 우동 1인분이요!”

 

주방 안에서, 역시 세 사람을 알아차린 주인장도

밖을 향해 크게 외쳤습니다.

네엣! 우동 1인분!”

그리고는 막 꺼버린 가스레인지에 다시 불을 붙였습니다.

 

물을 끓이고 있는 와중에

주인 여자가 주방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속삭였습니다.

저 여보, 그냥 공짜로 3인분 우동을 만들어 줍시다.”

그 말에 남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안 돼요. 그렇게 하면 도리어 부담스러워서

다시는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을 거요.”

그러면서 남편은 지난해처럼 우동 1인분에

반 덩어리를 더 넣어서 삶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보, 매일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어

인정도 없으려니 했는데 이렇게 좋은 면이 있었구려.”

남편은 들은 척도 않고 입을 꾹 다문 채

삶은 우동을 그릇에 담아 세 사람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식탁 위에 놓인 한 그릇의 우동을 둘러싸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주방 안에 있는 두 부부에게 들려왔습니다.

 

참 맛있어요

동생이 우동 가락을 우물거리고 씹으며 말했습니다.

올해도 이 가게의 우동을 먹게 되네요.”

동생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형이 말했습니다.

내년에도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주인 내외는 순식간에 비워진 우동 그릇과

대견스러운 두 아들을 번갈아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이번에도, 우동 값을 내고 나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향해

주인 내외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말은, 그날 내내 되풀이했던 인사였건만

주인 내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따스함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섣달그믐날 밤

<북해정>의 주인 내외는

9시 반이 지날 무렵부터

안절부절못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0시가 지나자 종업원을 귀가시킨 주인장은

벽에 붙어 있는 메뉴를 차례차례 뒤집었습니다.

 

올해 여름부터 우동 값을 올려

<우동 200>이라고 쓰여 있던 메뉴가

150엔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번 식탁 위에는

이미 30분 전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였습니다.

 

이윽고 10시 반이 되자,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와 두 아들이 들어왔습니다.

형은 중학생 교복,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고 있던 점퍼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습니다.

두 형제 모두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는데,

아이들 엄마는 색이 바랜 체크무늬 반코트 차림 그대로였습니다.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며

예전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이들을 맞이하는 주인 여자에게

어머니는 조심스럽고 예의 바르게 물었습니다.

우동2인분인데괜찮을까요?”

어서어서 자, 이쪽으로

 

세 사람을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주인 여자는 식탁 위에 있던 <예약석>이란 팻말을

슬그머니 감추면서 주방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여기 우동 2인분이요!”

 

그 말을 받아 주방 안에서

이미 국물을 끓이며 기다리고 있던 주인장도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 우동 2인분, 금방 나갑니다!”

그는 끓는 국물에 이번에는 우동 세 덩어리를 넣었습니다.

 

두 그릇의 우동을 함께 먹는 세 모자의 밝은 목소리가 주방까지 들려 왔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어느 해보다 활기가 넘쳐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혹여 방해가 될까 봐

조용히 주방 안에서 지켜보던 주인 내외는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서로에게 미소를 보내며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세 사람의 대화는 계속되었습니다.

현아, 그리고 준아,

오늘은 너희들에게 엄마가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구나.”

고맙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너희도 알다시피,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킨 사고로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쳤잖니?

일부는 보험금으로 보상해 줄 수 있었지만,

보상비가 턱없이 모자라 그만큼 빚을 얻어 지급하고

매월 그 빚을 나누어 갚아왔단다.”

저희도 잘 알고 있어요.”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주인 내외는 주방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선 채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빚은 내년 3월이 돼야 다 갚을 수 있었는데,

실은 오늘 다 갚았단다.”

? 정말이에요 엄마?”

두 형제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래, 그동안 현이는 아침저녁으로 신문 배달을 열심히 했고,

준이가 장보기와 저녁 준비를 매일 해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회사 일을 잘 할 수 있었단다.

그것으로 나머지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던 거야.”

 

엄마, , 잘됐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저녁 식사 준비는 제가 계속할 거예요.”

저도 신문 배달을 계속할래요.

준아, 우리 힘을 내자!” 형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어머니는 두 아이의 손을 움켜잡고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이내 형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이제야 비로소 얘긴데요,

준이하고 제가 엄마한테 숨긴 게 하나 있어요.

그것은요

 

지난 11월에 학교에서 준이의 수업을 참관하러 오라는

편지가 왔었어요.

 

그리고 준이가 쓴 작문이 삿뽀르의 대표 작품으로 뽑혀

전국 작문대회에 나가게 돼서,

수업 참관 당일에 그 작문을 준이가 읽기로 했다고요.

 

하지만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편지를 엄마께 보여 드리면

엄마가 무리해서 회사를 쉬고 학교에 가실 것만 같아서

준이가 일부러 엄마한테는 말을 하지 않고 있었데요.

저는 그 사실을 준이의 친구들한테서 듣고서

제가 엄마를 대신해서 수업을 참관하러 학교에 갔었어요.”

 

어머니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다소 놀랐지만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그래그랬었구나그래서?

 

선생님께서 작문 시간에,

나는 장차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쓰게 했는데,

준이는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서 냈대요.

 

지금 그 작문을 읽어 드리려고요.

사실 저는 처음에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만 듣고는,

이곳 <북해정>에서의 일이라는 걸 짐작했기 때문에

준 녀석

무슨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썼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준이의 작문을 읽어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 그럼 지금부터 제가 그 글을 읽어 드릴게요.”

 

현이는 교복 윗옷 주머니에

접어서 넣어 두었던 종이 두 장을 꺼내서 펼쳤습니다.

준이의 작문을 읽어 내려가는 현이의 목소리는

비록 작았지만 낭랑하게 우동 가게에 울려 퍼졌습니다.

 

우리 아빠는 운전하시다가 교통사고를 내서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데 피해자들 모두에게 보상해주기 위해서는

보험금이 턱없이 부족해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셨고,

형은 날마다 조간과 석간신문을 배달해서 돈을 벌었다.

 

아직 나이가 어린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뾰족하게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엄마와 형은 나에게는 아무 일도 못 하게 했다.

대신에, 나는 저녁이면 시장을 봐서 밥을 해놓는 일을 했다.

 

내가 해놓은 밥을 엄마와 형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

나는 행복했다.

나도 우리 식구를 위해 비록 작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빚을 하루라도 빨리 갚기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절약하는 생활을 했다.

엄마의 겨울 코트는 아주 오래되어 낡고 헤어졌지만

해마다 꿰매어 입으셔야 했다.

 

그러던 중 재작년 1231일 밤에

우리 가족은 우연히 어느 우동 가게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안에서 새어 나오는 우동 국물 냄새가 그렇게 맛있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우리 형제의 마음을 알아채셨던지

엄마는 우리에게 우동을 사주시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이 너무나도 반갑고 고마웠지만,

우리 형편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형과 나는 망설이다가

딱 한 그릇만 시켜 셋이서 같이 나눠 먹자고 엄마한테 말했다.

 

한 그릇이라도 우리에게 우동을 먹이고 싶었던 엄마와,

우동 국물 냄새에 마음이 끌린 우리 형제는

우동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문 닫을 시간에 들어와

우동을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는 우리가 귀찮았을 텐데도,

주인 내외분은 우리를 아주 친절하고 반갑게 맞아 주셨다.

 

주인 내외는 양도 많고 따뜻한 우동을 내놓았다.

그러고 나서 가게 문을 나서는 우리에게

고맙습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라며 큰 소리로 말해주는 그 목소리가

마치 우리에게, “지지 말아라! 힘내라! 살아갈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그 후 일 년이 지난 작년 섣달그믐날에도

그 우동 가게를 찾아갔다.

여전히 우리는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서

우동을 한 그릇밖에 시킬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날도 마찬가지로 주인 내외분은

친절하고 따뜻하게 우리에게 우동을 대접해 주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건네는 인사도 여전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힘들어 보이는 손님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일본 최고의 우동 가게 주인이 되겠다고

 

주방 안에서 귀를 기울이던 주인 내외의 모습이

어느새 보이지 않았습니다.

형이 동생의 작문을 읽어 내려가는 사이,

두 사람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한 장의 수건을 서로 잡아당기며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다시 일 년이 지나 섣달그믐날이 되자

<북해정> 주인 내외는 밤 9시가 지나고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을

2번 식탁 위에 올려놓고 세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2번 식탁을 비워 두고 기다렸지만

세 사람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북해정>은 장사가 잘되어,

가게 내부 장식도 멋지게 꾸미고 식탁과 의자도 새로 바꾸었지만

2번 식탁만은 그대로 남겨 두었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해마다 1231일 섣달그믐날 밤이면

이들 모자(母子)가 우동을 먹으러 올 것이라는 희망에

<북해정>은 입소문까지 널리 퍼져

매년 많은 손님으로 들끓고 있었는데

 

1030분이 막 지날 무렵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습니다.

그러자 가게에 꽉 들어차 있던 사람들 시선이

누구 할 것 없이 가게 입구로 향했고,

동시에 그들은 이야기를 멈췄습니다.

 

이윽고 코트를 손에 든 신사복 차림의 청년 두 명이 들어왔습니다.

미안해서 어쩌죠?

이렇게 가게가 꽉 차서 더는 손님을 받기가 어려운데라며

여주인이 거절하려 할 때

기모노 차림의 부인이

머리를 숙인 채 앞으로 나와서 두 청년 사이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우동3인분입니다만괜찮을까요?”

그 말을 들은 여주인의 얼굴색이 이내 놀라움으로 변했습니다.

 

그 순간 1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래전 있었던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들의 모습이

지금 눈앞에 있는 세 사람의 모습과 겹쳤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당황하는 여주인에게

청년 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14년 전 섣달그믐날 밤,

우리 모자(母子) 셋이서 1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때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우리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올해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해서

내년 4월부터 삿뽀르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우동집 주인은 되지 못했지만,

교토에서 은행에 다니고 있는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의 삶 가운데 최고로 사치스러운 일을 계획했습니다.

 

그것은 섣달그믐날 밤 우리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 <북해정>을 다시 찾아와서

3인분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여주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왈칵 흘러넘쳤습니다.

 

테이블에 진을 치고 있던 손님 중 한 사람이

이봐요 주인아줌마, 뭐 하고 있어요?

10여 년 넘게 이날을 위해 준비해놓으며 기다리고 기다린

섣달그믐날 밤 2번 예약석이잖아요, 빨리 안내해요, 안내를!”

 

안주인이 어서 이리로 오세요, 우동 3인분이요! 라고 소리치자,

주방 안에서 눈물로 얼굴을 적시고 있던 주인장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네엣, 우동 3인분!”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던 사람들이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습니다.

 

가게 밖에서는 조금 전까지 흩날리던 거센 눈발도 그치고,

<북해정>이라고 쓰인 천 간판이

이들 모자(母子)을 환영이라도 하듯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에필로그

한 남자가 번화한 도시를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먹을 것을 구걸하는 한 아이를 발견했다.

그 아이는 더러운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남자는 화가 나서 하느님께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왜 이 죄 없는 아이를 도우시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그의 마음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너를 만들지 않았느냐.”

-마이클 린버그(Michael Lynberg)너만의 명작을 그려라중에서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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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이 없습니다.
  • 검은마음흑구<span class=Best" />
    2021.12.26

    좋은 글이네요.

    아주 옛날 독서평설인가 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비교적 최근이었는데 어느덧 80년대가 아주 오래전 일이 되었군요.

  • sosok<span class=Best" />
    sosokBest
    작성자
    2021.12.26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남에게 우동 한 그릇이라도 베풀수 있는

    여유와 따듯한 마음을 갖는다면

    이 세상은 한결 포근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 유가영<span class=Best" />
    유가영Best
    2021.12.26

    각박한 세상에 한줄기 햇빛같은 내용의 글이군요

    우동 한 그릇 해야겠어요

  • 검은마음흑구
    2021.12.26

    좋은 글이네요.

    아주 옛날 독서평설인가 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비교적 최근이었는데 어느덧 80년대가 아주 오래전 일이 되었군요.

  • 유가영
    2021.12.26

    각박한 세상에 한줄기 햇빛같은 내용의 글이군요

    우동 한 그릇 해야겠어요

  • 유가영
    sosok
    작성자
    2021.12.26
    @유가영 님에게 보내는 답글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남에게 우동 한 그릇이라도 베풀수 있는

    여유와 따듯한 마음을 갖는다면

    이 세상은 한결 포근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 2Seconds
    2021.12.28

    ㅊㅊ 

  • 2Seconds
    sosok
    작성자
    2021.12.28
    @2Seconds 님에게 보내는 답글

    관심을 갖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정치중독자
    sosok
    작성자
    2022.01.01
    @정치중독자 님에게 보내는 답글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고맙습니다
    2021.12.30

    좋은 내용 ㅊㅊ.. 사랑입니다요~♡♡♡

  • 고맙습니다
    sosok
    작성자
    2022.01.01
    @고맙습니다 님에게 보내는 답글

    관심을 갖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