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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분의 크리스마스> -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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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영

  “나한테 화난거 다 알아, 다 이해하고, 하지만 말 못한 진심이 있어, 그걸 알아줬으면 해, 그리고 예전처럼 지내지는 못하더라도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해, 평범한 친구들처럼 대해줘

 

  “? 이제 와서 그게 할 소리야? 말 못할 사정이 있었으니 이해해달라고? 네가 최소한의 예의라도 지켰으면 이해했을거야. 그런데 네 맘대로 떠나놓고 뜬금없이 나타나서 이해해 달라고? 넌 대체 무슨 낯짝으로 그런 말을 하냐, 정치인들도 너처럼 뻔뻔하진 않아, 그리고 웃기지마, 이제 너랑 아는 척할 일 절대 없을 테니깐 자리로 돌아가!”

 

하지만...”

 

네가 안가면 내가 갈게!”

 

  나는 자리를 박차고 무작정 복도로 나왔다. 다른 애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쳐다보는 것이 느껴지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정말 화가 났다.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내 이성을 잃게 했다. 나는 운동장으로 가서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축구하는 것을 구경했다. 페널티킥 상황... 덕배가 놀라운 다이빙으로 상대의 슛을 막아냈다. 애들은 마치 집안에 큰 경사가 난 것처럼 모두가 환호하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저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 빼고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

 

 

그래 개학 첫날부터 수고들 많았고 딴 데 새서 사고치지 마라, 웬만하면 집으로 바로가라! 이상!”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말 많고 탈 많았던 개학 첫날이 마무리되었다. 점심시간 이후로는 큰 일이 없었다. 그냥 무난히 수업을 들었고 무난하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단은비도 그 이후로는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덕배와 함께 교문을 나왔다.

 

야 한썬, 그냥 알바 째고 같이 피씨방이나 가는게 어때?”

 

뭔 개소리야 임마, 그러다 알바 짤리면 난 어떻게 살라고

 

그런가... 네가 참 고생이 많긴 하다.”

 

그래, 알면 됐다, 내일보자

 

그래 잘가라

 

  덕배와 인사를 하고 나는 곧장 집으로 갔다. 집은 고요했다. 아직 선영이는 오지 않은 것 같다. 아버지도 일을 하러 가신 것 같다. 지금 시각 440, 알바는 530분 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쉴 시간이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늦어도 20분 전에는 출발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사실 이것 때문에 오늘 하루종일 집중이 안됐다.

 

  단은비는 왜 돌아온걸까? 그리고 내가 화나 있을 것이 뻔한데 왜 나에게 말을 건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나는 속 시원히 내 할 말을 했다. 내가 한 말이 심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 정도면 상냥하게 말한 것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후련하게 할 말을 다했는데 왜 이렇게 가슴 한 켠이 아픈걸까? 별 목걸이를 걸고 있는 단은비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

 

 

안녕하세요!”

! 그래 선우 어서와라!

 

나는 내가 알바를 하고 있는 새마을 감자탕집으로 가서 카운테에 앉아 있는 사장님, 조리실 이모들에게 차례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홀서빙을 준비했다. 홀에는 이미 선미 누나가 먼저 와 있었다.

 

누나, 안녕하세요

 

응 선우 안녕, 학교 잘 갔다 왔니? 방학이라 늘 놀다가 학교 갔다와서 피곤하겠다.”

 

아니에요, 집에서 잠깐 쉬다 와서 괜찮아요.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선미누나는 나와 같은 시간대에 서빙을 하는 대학생이다. 나이는 22, 대학교 3학년이다. 20세부터 이 일을 시작해 아직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작년에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정말 친절하게 이것저것 가르쳐줬다. 나에게 있어서 덕배와 함께 몇 안되는 친한 사람이고 진심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너 근데 오늘 표정이 안 좋아보인다? 안 피곤하다면서 왜 그래?”

 

한창 같이 그릇을 정리하고 있는데 선미누나가 말을 걸어왔다.

 

, 아무것도 아니에요, 말은 아까 그렇게 했는데 사실 피곤 한가봐요.”

그래? 내가 보기에 그게 아닌데? 뭐 말하기 싫으면 안해도 상관없어, 난 언제라도 들어 줄 수 있으니깐 마음이 바뀌면 말해, 혼자 그러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랑 얘기를 하면서 해결책도 찾고 기분도 푸는게 좋을걸?

 

  선미 누나는 예리했다. 선미 누나는 저런 사람이다. 눈치가 정말 빨라서 내가 고민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바로 눈치 챘었다. 오늘도 티를 안내려 해도 안낼수가 없었나보다.

 

나중에 마음의 준비가 되면 말씀드릴게요

 

  아직은 누구에게 얘기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짧게 대답했다. 선미 누나는 나를 내내 걱정스런 눈빛으로 봤다. 정말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괜히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일을 마치고 집으로 왔다. 956... 거의 10시가 다 되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선영이가 방에서 나왔다.

 

오빠 왔어? 피곤하겠다. 빨리 씻고 쉬어

 

, 아버진 아직 안오셨어?

 

, 오늘도 늦게까지 일하시나봐, 아참 오빠 근데 아까 저녁에...”

 

왜 무슨일인데?”

 

은비 언니가 찾아왔었어, 은비 언니네 이사갔다고 하지 않았어? 다시 돌아온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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