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의 노후화로 입주 상인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상가 내부에서 박원순 전 시장을 향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재개발보다 보존에 방점을 둔 박원순표 세운상가 재생사업은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9년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운상가를 철거하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2011년 박원순 전 시장은 취임한 뒤 오 시장의 철거 계획을 무위로 돌렸다. 이후 박 전 시장은 무리하게 재생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특히 재정비촉진계획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세운상가에 공중보행로와 메이커스 큐브 등을 조성했다.
이용객이 그리 많지 않은 공중보행로는 최근 심각한 상황을 맞았다. 낡은 데크를 보강한 공중보행로에서 철골 산화 문제와 기둥 파손 등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세운상가 입주 상인들은 연일 불안한 표정이다.
12일 박영한 서울시의회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세운상가 인공데크 시설물 정밀점검 결과'에 따르면 세운상가 공중보행로는 안전진단 B등급을 받았다.
책임기술자는 종합의견을 통해 "인공데크 시설물은 경과년수 약 50년에 따른 탄산화 진행으로 철근 부식, 피복박락 등의 결함이 발생됐다"며 "지속적인 점검과 체계적인 유지관리 보수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했다. 또 "건축 구조기능 발휘에는 지장이 없다"면서도 "내구성 증진을 위해 세심한 주의관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기자가 확인한 공중보행로는 B등급이라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세운상가 상인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박 시의원은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도기본)와 중구 도로시설과 측에 공중보행로 안전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시에선 "2023년 1월과 4월 두 차례 보수를 완료했고 유지관리부서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할 것"이라고 답했다.
중구 도로시설과는 "구조물의 방수처리와 도장불량으로 인해 철제 난간의 부식, 도장 탈락 및 산화 문제가 발생했다"며 "신설데크 부분의 강재기둥 대부분에서 복부 팽창이 일어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후속 조치를 요청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43년째 세운상가에서 커피 가게를 운영하는 A사장은 "공중보행로가 만들어지고 나서 오히려 장사에 손해를 봤다"며 "사람들도 오히려 불편하다는 입장이 많다"고 말했다. 왜 시민들이 낸 세금을 들여가면서까지 쓸데없는 공중보행로를 만들었느냐는 비판이다.
A사장은 "상인들의 70~80%는 보행로가 철거되길 희망한다"며 "옥상은 건드리면 안되는데 (박원순 전 시장이) 무턱대고 보행로를 만든다고 무거운 철근과 공사 자재들을 갖고 와 벽에 균열이 가고 바닥도 갈라졌다"고 하소연 했다. 이어 "비가 올 때는 매번 물이 새는데, 배수도 잘 안돼 어려움이 많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건물 노후화 문제도 재생이라는 허울로 덮을 수 없었다.
지난 9월, 세운상가에서 80㎏가 넘는 콘크리트 외벽 일부가 떨어지면서 1층 상인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후 상인들의 우려가 쉬이 사그라들지 않는 분위기다.
20년째 세운상가에서 일한다는 상인 B씨는 "건물에서 벽돌이 떨어지고 있어 상인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며 "과거 삼풍백화점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는 "삶의 터전이라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건물이 워낙 오래돼 조심히 피해다니는 게 최선일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원순표'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이용률 저조… "통행량 예측값의 5%"
박원순 전 시장 재임 시절 건립된 공중보행로는 사업비로 총 1109억원(1단계 480억원, 2단계 629억원)이 소요됐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것과 달리, 이용률은 굉장히 낮은 수준이었다.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통행량 전수조사' 자료에 따르면, 거액의 사업비가 투입된 공중보행로 이용객은 2023년 8월을 기준으로 일 평균 2034명이다.
세운상가의 경우 동측 1층과 3층의 이용객은 각각 476명과 1607명으로, 예측치의 5%와 13% 수준으로 나타났다. 서측의 경우는 이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이 역시 14%, 22% 수준으로 낮은 이용률을 기록했다.
그나마 가장 높은 이용률을 기록한 곳은 삼풍·PJ호텔 보행로다. 이곳의 서측 1층 이용객은 9175명으로 예측치의 63%에 달하는 수치를 보였다. 젊은 사장님들이 모여 형성한 카페촌이 위치한 3층 청계·대림상가 일 평균 이용객 수도 2834명(28%)으로 그 뒤를 이었다.
텅 빈 '세운 메이커스 큐브'… 노후화가 공실률 키웠다
2017년 9월, 세운상가 주변 보행데크에 '세운 메이커스 큐브' 공간이 마련됐다. 박원순 전 시장이 추진한 '세운 재정비 촉진사업' 일환이었다.
'세운 메이커스 큐브'는 컨테이너 형태의 청년 창업지원 공간이다. 박 전 시장의 재정비 촉진계획인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졌다. 당시 이 공간은 젊은 창업자들과 기술 장인들이 모여 협업과 성장의 플랫폼으로 사용되는 것을 목표로 조성됐다.
하지만 '세운상가 거점공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임대큐브 현황은 총 36개소로, 26개소는 입주 중이며 나머지 10개소는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기존 취지와 달리 이 큐브 공간은 노후화로 인한 낙수와 누수 등 기능저하 문제로 인해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운상가 쪽 큐브의 경우, 현재 3곳은 창고로 사용되고 1곳은 공실인 상태다. 7곳 중 절반 이상이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청계상가 쪽 큐브는 2곳 중 1곳이, 대림상가 쪽 큐브도 12곳 중 4곳이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큐브 공실률이 높은 원인에 대해 공공 공간 운영센터 매니저는 "건물 노후화로 인한 누수와 안전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3층보다는 2층에 위치한 큐브 운영이 더 어려운 상황"이라며 "큐브(컨테이너)를 설치할 때 천장과 띄어서 만들었어야 하는데 붙여서 짓다 보니 낙수와 빗물 고임 현상 등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메이커스 큐브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 관계자도 "큐브에 누수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며 "누수를 잡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워낙 건물이 오래돼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2층에 있는 큐브에는 흘러 들어오는 누수가 심각한 편"이라며 "아직 대책은 없고 해결 방안 마련을 위해 검토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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