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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국의 발전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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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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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4월 1일, 나는 뮌헨 국민재판소에서 금고형을 선고받고 란츠베르크 요새 감옥에 수감되었다. 거기에서 나는 느낀 바가 있어 저작에 착수했다. 우리 운동의 목표와 발전상을 두 권의 책으로 쓰기로 결심했다. 나는 우리 운동에 종사한, 그리고 더욱 철저한 계몽을 바라는 우리 운동의 지지자들을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글보다는 말이 사람을 설득시키는 데는 더욱 효과적이며, 세계의 모든 위대한 운동은 위대한 문필가가 아니라 위대한 연설가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敎說을 일관적,통일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원칙적인 것이 글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두 권의 책을 우리가 함께 수행해 나가는 사업의 초석으로 삼고자 한다.


 


제1부     


 1장. 生家에서


 나는 인 강변의 부라우나우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낀다. 이 작은 도시는 독일인이 이루고 있는 두 개의 국가의 국경에 위치하고, 적어도 이 두 개 국가의 재합병이야말로 우리 청년들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반드시 실현해야 할 일생의 과업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독일-오스트리아는 모국인 大독일로 복귀해야만 한다. 동일한 피는 공통된 국가를 필요로 한다.


 자손을 공통된 국가 안에 살게 하지 못하는 한, 독일민족은 식민정책 활동에 대한 도덕적 권리(?)를 획득할 수 없다. 독일의 영역이 독일인 최후의 한 사람까지 모두 수용하고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지 못할 때 비로소 자국민이 곤궁하다는 이유로 국외의 영토를 획득하는 도덕적 권리(?)가 주어질 것이다.


 혈통은 바이에른이고 국적은 오스트리아인 나의 양친은 지난 세기의 80년대 후반에 이 작은 도시에 살았었다. 아버지는 직무에 충실한 세관관리였고, 당시 오스트리아 세관관리의 운명은 곧잘 방랑자라고 일컬어졌다.


 아버지는 아들도 자기처럼 관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관리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12세 때 아버지는 나의 그림공부를 금지해 버렸다. 나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림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게으름을 부리자, 학교성적은 극과 극을 달렸다. 그러나 지리,세계사 두 과목만은 반에서 단연 으뜸이었다.


 舊오스트리아는 다민족 국가였다. 舊오스트리아에 거주하는 독일인의 언어투쟁에는 투쟁자,기회주의자,반역자 세 부류가 있었다.


 역사교육의 목적은 결코 역사상의 연대나 사건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역사적 사건으로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을 실제에 적응시키는 힘을 발견해 내는 데 있다. 독서나 학습의 기술도 본질적인 것을 취하는 대신 비본질적인 것은 잊어버려

야 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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