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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리학/주리파와 주기파의 분류 폐기해야

자유주의 (211.63)

성호 이익의 사단칠정론

《상수설의 계승과 호발설의 폐기》※최천식 서울대학교 박사수료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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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리학에대한 잘못된 분류 주리파/주기파

※본인 필자의 견해

주리파와 주기파의 분류는 조선성리학의 분파에대한

분류기준이되어왔다.

연유는 퇴계 이황선생님과 고봉기대승의  인심과도심 논쟁인 사칠논쟁에 있어인심과 도심이 발생하는 근거에대한  이황과 기대승의설명에 따른 것이라고 알려젔다. 

 

퇴계 이황의 도심을 [ 리가 주도하는 마음 ] 인심을 [ 기가 주도하는 마음] 이라 선행 학자들은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도심이 리가 주도하는 마음이 아닐 뿐더러 인심이 기가 주도하는 마음또한 아니다.  

 

최천식님의 이러한 퇴계 이황선생님의 성리설에대한 오해에 의아스럽다. 

퇴계와 고봉기대승의 사단칠정론인 성리설은 남송 주자의 중용장구에대한 각자의 해석에 바탕하였다. 

 

 中庸章句, 「序」, “心之虛靈知覺, 一而已矣, 而以爲有人心、道心之異者, 則以 其或生於形氣之私、或原於性命之正, 而所以爲知覺者不同。

"주자의 중용에대한 주석서"

마음의 허령한 지각은 하나일 뿐인데, 인심 도심의 분류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어떤 때는 사사로운 형기에서 생기고 어떤 때는 공정한 성명에서 비롯되어 지각함의,근거가 다르기 때문이다.  

 

퇴계이황 四七理氣往復書(上), 「退溪答高峯非四端七情分理氣辨第二書」 40右面, “且四 端, 感物而動, 固不異於七情。但四則理發而氣隨之, 七則氣發而理乘之耳。  퇴계가 고봉에게 답했다. 퇴계제2집에서

40좌측책장에서 "사단은 리가발동할때 모두 칠정에서 다르지 않은 이유로 사단은 리발이기수지 하고, 칠정은

기발이리승지이다.

 

해석 도심은 리발이도심은에 근거하여 비롯되고, 인심은 기발이리승지이 하여 생긴다. 

도심은 리가발동할때 기가 따르고, 인심은 기가 발동할때에 리가 올라탄다. 

이것을 리가 주도하여 도심이, 기가 주도하여 인심이 비롯된다로 해석하는 주리론과 주기론이라 볼수 있는가 하는점입니다.  

즉 사단은 리의 발현이고 칠정은 기의 발현인데  리가 발동할때  기도함께하고 기가 발동할때에 리가 함께하는 현상에서 리와 기중 하나의마음만 나타나는 현상을

주도한다고 볼수 없기때문에 주리론과 주기론의 분류는 도심과 인심이 비롯되는 근게에대해 바르게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서로다른 근거인 리와기가 어떤 때는 리의 도심이 어떤 때는 기의 인심이 나타나는것은 리가 원인이될 경우가 있고 기가 원인이될 경우가 있기때문인데

도심과 인심이 다르다고 분별할때에 도심에 기가 함께하고, 인심이 나타날 때도 리가 함께하기때문입니다. 

리와 기가 절대로 함께 나타나는 경우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원인과 리와기의관계를리어느 하나가 지나치게 많거나 모자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리와 기중어느 하나가 주도한다고 볼수없습니다. 나타나는 마음과 마음이란 현상 저편에 있는 바탕은 전혀 별개입니다. 때에따라 다르게 나타나는것이 처음부터 다르기 때문인것이지 중간에 어느하나가 다른 하나를 주도한 결과가 아니란 것입니다. 

 

때문에 주기와 주리분류는 잘못입니다 또한 퇴계이황선생님의 표현이나 맥락을 보면 이와 동일하고, 

고봉의 이해와 인식또한 이와 동일합니다. 이것이 사단이 리의 발동이 같거나 하기때문이 아닌, 어떤 마음을 사단이라하고 어떤마음을 칠정이라 하는가하는

도심과 인심의 구분 기준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특정한 마음이 나타날때는 이를 인식하는 당사자의 이해와는 관계없는 동일한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리가 주도하여 사단의도심이 마음이 생기고, 기가 주도하여 칠정의 인심이 생긴다고 말하나  또다른 어떤견해를 견해를 가졌다한들  마음의 나타남은 마음을바라보는 그마음이 어떠하든지 해석과 이해가 어떠하든지 관계가 없이 항상 동일한 법칙아래에 있기때문입니다. 

 

조선 성리학의 성리설에서 서로다른차이는 마음이 나타나는 해석과 원인분석의 차이가 아니라 , 어떤 마음을 도심이라 하는가하는것이며 어떤마음을 인심의 칠정이라 하는가입니다. 

사의단의 측은지심, 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이라

하여 모두 도심은 아닌것입니다. 칠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희노애구 애오욕등이 모두 인심은 아닌것입니다.  이것은 실제 일어나는 마음의 실체가 도심이냐 아니냐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 도심 또는 인심이라

착각하는 마음의 착각때문입니다. 

 

성리학에서 도심과 인심이 모두 같은것이고 허렁하다 즉 마음이 허령하다하는것은 불선이거나, 선이거나 하는 말이아닌 그와같이 나타나는마음이 도심/인심구분없이 동일하게 칠정일뿐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그마음의 실체에 있어 사단의 마음은 리가 근본이고, 칠정의 마음은 기가 근본입니다. 

 

때문에  사단을 칠정안에 포함되지 않은 별개의 칠정에 인 것은  매우 중요하다할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단의 도심을 또한 칠정과 나란히하여 일체의 정안에 있다고 보는것은  사람의 마음이 허령하기때문입니다. 

인심과 도심을 이와같이 이해할때에  주자의 성리학적

도심과 인심에 부합합니다. 

마음을 이와같이 이해하는 것은 심성 발전과 수양과도 호응하는 일입니다. 

 

주리와 주기의 도심과 인심으로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이해하는 것이었다면  조선 성리학자와 선비들의 

특징과 근본정신에 매우 심한 부조리와 허망하고 허령한 거짓이 있다는 반증입니다. 

조선 성리학과 유림에는 실제로 주기파와 주리파로 분류할 수 있는 성리설을 주장하거나 그와같이

성리설과 같은 이해에 머무는 사람들도 있는데/

조선 성리학의  퇴계이황 선생님과 고봉,기대승의 성리설은  주리와 주기로 분류할수있는 하열한 인식체계에 머문 선비들이 아닙니다. 더우기 

퇴계와 고봉이 주리론과 주기론을 각갇주장했다고 하는 만큼이나  나라와 국가의 역사를 스스로 천하게 여기고 비하하는 일또한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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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윤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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