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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태국 제9대 군주 푸미폰왕의 탄일(생일)입니다

국가영도위원회 청꿈실세

 

푸미폰왕(King Bhumibol)은 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왕이자 역대 태국의 왕 중 가장 재위기간이 긴 왕으로 70년이나 왕좌에 있었습니다. 또 태국의 초대 왕인 프라 푸타욧파 쭐랄록왕(King Phra Phutthayotfa Chulalok), 태국 근대화의 주역인 쭐랄롱꼰왕(King Chulalongkorn)과 더불어 대왕으로 추대되었고 태국의 왕들 중 유일하게 무궁화대훈장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훈받은 왕입니다.

 

그는 1927년 12월 5일 미국 메사추세스주(Commonwealth of Massachusetts)에서 태어났으며 1946년 6월 9일 친형인 아난다왕(King Ananda)이 총기사고로 비명횡사하자 다음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그의 치세 동안 태국은 1932년에 군부가 일으킨 군사정변으로 전제군주제가 폐지되고 입헌군주제가 들어오면서 왕은 실권을 잃었지만 권위는 잃지 않았습니다. 군부는 이를 악용해 왕의 권위에 기대어 반공독재를 펼쳐 국민들을 탄압했고 70년대에는 월남을 시작으로 인도지나반도에 공산화의 물결이 읾에 따라 군부는 태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국민들에게 더욱 서슬퍼런 탄압을 가했습니다. 물론 태국 국민들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고 유혈을 각오하며 군부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그도 자신에게 주어진 왕권, 군부의 정권유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기에 막후에서 군부와 국민 간에 일어나는 정쟁과 내란의 소용돌이를 중재하며 왕국의 구심점이 되어 태국 현대사를 이끌어왔습니다.

 

게다가 그는 왕좌에 있으면서 왕실의 안위만을 좇지 않았습니다. 물론 태국이 현재까지 봉건왕조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책임을 그도 피할 수 없지만, 그는 진정으로 국민들을 생각했으며 자신이 직접 모은 재산으로 빈농거주지에 대규모 농촌운동을 실시하고 폭력조직에 착취당하는 산악지대 소수민족들에게 카메라를 들고 직접 찾아가 구제사업을 실시한 일이 이를 방증합니다. 덕분에 1988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Magsaysay Award)을, 2006년에는 UN에서 제1회 인간개발 평생업적상을 수상받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국민들은 자신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군부를 증오해도 진정으로 자신들을 생각해준 그를 마음으로 섬겼습니다. 그리고 2016년 10월 13일 그가 붕어하자 전국의 태국 국민들은 진심으로 통곡하며 왕의 마지막을 지켰습니다.

 

붕어 후 왕태자 마하 와치랄롱꼰(Maha Vajiralongkorn)이 왕위를 이었지만 부왕과는 달리 한심한 모습만 보여준데다 최근에는 군부의 민주화 운동 탄압을 편들고 있어 국민들로부터 부왕만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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