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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조선사> 053 대호大虎 김종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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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제4대 세종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난 김종서(1383~1453년)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학문 실력을 보여주었다. 

 

16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오른 김종서는 주로 외지에서 백성을 돌보고 나라의 안위를 지켰다. 

 

무엇보다도 김종서의 가장 큰 업적은 1433년(세종15년)에 이루어진 6진 개척이다.

 

세종은 여진족에 내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영토를 확장할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토 개척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김종서에게 맡겼다.

 

무인이 아니었던 김종서에게 6진 개척을 맡긴 것은 그에 대한 세종의 믿음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세종의 기대에 김종서는 결과로 답했다. 

 

김종서는 6진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여진족이 쏜 화살이 바로 앞 책상에 꽂혀도 앞으로 나아가는 데 두려움이 없었다. 

 

독이 든 음식으로 생명에 위협을 받아도 자신이 맡은 책무를 다하기 위해 물러서지 않았다. 

 

그 결과 김종서는 함길도도관찰사로 종성 / 온성 / 회령 / 경원 / 경흥 / 부령 6진을 개척해 조선의 영토를 두만강까지 넓혔다. 

 

개척 이후에도 7년 동안 함길도 병마도절제사를 겸직하면서 두만강 유역에 조선인 정착을 도왔다.

 

김종서는 문인으로서도 큰 업적을 세웠다. 1395년(태조(4년)에 편찬된 <고려사> 미흡하다는 세종의 지적에 <고려사>의 재간행 총책임자가 되어 1415년 (문종1년), <고려사>를 재편찬했다. 

 

이어 고려 왕조에서 본받을 만한 내용을 담은 <고려사절요>를 편찬했다.

 

문무에 걸쳐 모든 방면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며 큰 호랑이라는 뜻의 '대호'라 불린 김종서는 세종과 문종의 신뢰를 받으며 국정을 이끌어나갔다. 

 

문종은 김종서에 대한 신뢰가 대단해 죽기 직전, 그에게 어린 단종의 보필을 간곡히 부탁할 정도였다. 

 

김종서는 문종의 유훈에 따라 황보인과 함께 단종을 보필했으나, 수양대군(훗날 세조)은 김종서가 왕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했다.

 

수양대군 계유정난 과정에서 직접 김종서의 집을 찾아가, 그를 갓끈을 빌리러 왔다는 거짓말로 안심시킨 뒤 철퇴로 때려 죽였다.

 

김종서는 철퇴를 맞고도 살아났지만, 혹시라도 그가 살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수양대군이 보낸 부하에게 다시 붙잡혀 죽임을 당했다. 

 

수양대군은 김종서가 역모를 일으킨 대역죄인이라며 백성들이 볼 수 있게 저잣거리에 김종서의 잘린 머리를 걸어두었다. 

 

수양대군에게 죽은 김종서의 명예가 회복된 것은 이로부터 200여 년이 훌쩍 지난 1746년(영조 22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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