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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세계사> January 22 재정 러시아에서 일어난 '피의 일요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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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재정 러시아에서 일어난 '피의 일요일' 사건

 

1905년 1월 22일. 재정 러시아의 당시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노동자들 6만여 명이 모여 탄원 집회를 열었다. 노동 자들이 원하는 것은 노동자의 법적 보호, 러일전쟁의 중지, 헌법제정, 기본적 인권 확립 등 이었다. 

 

당시에 러시아에는 헌법도 의회도 없었으며 '차르'로 일컫는 황제와 소수의 귀족이 농민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니콜라이 2세에게 탄원하기 위해 게오르기 가폰 신부의 인솔 하에 <겨울궁전>으로 찬송가를 부르며 행진을 하였으나 근위군이 발포하였다. 

 

심지어 대포까지 쏘았으며 황제의 기병대도 돌진하며 칼을 휘둘렀다. 사망자만 1천 명[4천 명이 넘었다는 주당도 있다.]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수 천 명이 부상당하는 유혈사태가 됐다. 

 

사건은 모스크바 시내로 빠르게 퍼졌으며, 시내 곳곳에서 폭동과 약탈이 이루어졌다. 이름하여 '피의 일요일' 사건이다.

 

'피의 일요일'사건의 결과로 황제 숭배의 환상이 깨졌다. 신처럼 섬겨온 차르의 명령으로 수많은 동료들이 죽어가자 차르에 대한 적대감을 품게 되었다. 

 

또 전국 규모의 반정부 운동이 발발했다. 일본과 전쟁 중이던 러시아는 글자 그대로 내우외환의 위기를 맞은 셈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전권대사로 파견된 비테는 의회 구성을 약속하며 민중을 설득하려 했으나 제국의 붕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아이오닐 코찬과 같은 사회학자들은 피의 일요일 사건을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이끈 도화선으로 간주했다. 

 

성난 민중들이 사회주의 혁명인 10월 혁명을 주도함으로써 로마노프 왕조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내가 알기로 차르라는 러시아 황제 얘도 골때리는 녀석으로 알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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